제가 회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국부 이승만을 공부하며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인도하신 국부 이승만의 개인적인 신앙체험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기록이 많지 않아 회심과정과 개인적인 신앙간증은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었으나 2009년 작성한 감리교 신학대 이덕주 교수의 “이승만의 기독교 신앙과 국가건설론”에 그나마 개인적인 신앙체험으로 볼 수 있는 어느정도 자료를 모아 논문을 작성하여 논문을 통해 유추해 볼 정도 이더군요
저는 학문이 일천하고 고등학교도 간신히 자습해서 검정고시 본 수준이라 학문적 깊은 분석은 어려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인용하는 수준입니다. 이덕주 교수의 위 논문은 “네이버 학술정보”에서 무료로 다운이 가능합니다. 다운 받으셔서 학식과 경륜을 갖추신 안티다원님께서 분석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부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외교를 선택하였고, 미국을 움직이는 실제적인 힘은 개신교와 교회에 있다는 것을 알고 미국의 숱한 교회를 수백 수천번 다니며 개인적인 간증과 강연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이를테면 교회 목사와 친해지고 목사를 통해 지역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 정치인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이었다고 하더군요, 국부 이승만은 상원의 원목인 프레데릭 해리스 목사와 각별하게 지냈다고 하더군요. 국부 이승만은 해리스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파운드리 교회에서 여러번 강연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리스 목사를 움직여 상원에게 압력을 넣고요, 미국에서 표가 목마른 상원이나 하원의원 정치인이 지역교회는 고양이 앞에 쥐 잖아요. 트루먼에게 파병을 요구하는 전보를 보낸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국부 이승만의 관계는 기록을 찾지 못하겠더군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은 중국으로 파송된 선교사의 딸이었고 평양의 국제학교를 다녀 친한파 중의 친한파라고 하더군요.. 라디오 설교의 스타로 미국 대륙을 움직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게 부인이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불행인 것은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미국 사회에 알려지고 영향력을 가진 것은 Japan Inside Out 출간이후이고 개인적인 간증은 도미 초창기 또는 무명시절에 이루어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시대 교회 간증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거나 또는 속기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으로 보여 안타깝습니다.
이승만을 연구한 학자들은 한결 같이 국부 이승만이 미국에서의 활동은 교회를 다니며 간증과 강연을 통해 인맥을 쌓은 것은 이구동성으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부 이승만의 간증은 미국 교회를 울리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배가 아파 천하의 등신 도올이 질투를 하며 폄하 하더군요 “간증을 기가 막히게 하며 예수를 팔았다며 염병지랄을 하더군요... 하여간 도올 그 등신이라니 ㅋㅋㅋㅋ
국부 이승만의 명성이 알려진 후에는 외교독립운동과 정무적인 행보로 인해 교회에 간증을 다닐 시간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개인적인 간증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 됩니다.
대통령 이승만의 비서와 고문으로 활약한 올리버 박사의 이승만 전기에 신앙간증으로 보일만한 것이 있습니다. 올리버 박사는 국부 이승만의 구술이나 평상시 나눈 대화를 모아 놓은 것으로 추정 됩니다.
또한, 당시 미주 동포를 위해 발간 된 주간신문 신한민보에 국부 이승만이 개인적인 신앙간증으로 보이는 글을 투고 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
나머지는 학식과 경륜이 높으신 안티다원님께서 논문을 분석하셨으면 합니다.
내게 가장 이상했던 것은 어떻게 1900년 전에 죽은 사람이 나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문하기를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하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과연 그런 어리석은 교리를 믿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도 믿지 못하는 그런 것을 어리석은 우리 백성들에게 전하기 위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만 교회에 가는 것 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자님의 지혜나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는 학 자들이라면 그런 교리를 믿을 리가 없다.’ 이런 결론에 이르러 나는 어느 정 도 마음이 놓이면서 그 동안 숨겨왔던 배재학당에 다닌다는 사실을 어머니에 게 고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가, 너도 천주학군이 되려는 게냐?’ 하셨다. 나는 ‘저들의 속셈을 다 알 만큼 똑똑해요. 어디 학자들이 저들의 종교를 믿 는 것 보았어요?’ 하였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안심하였지만 완 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하셨다.
내가 선교사 학교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영어, 오직 영어 공부에 있었다. 그 야망은 곧 채워졌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영어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 는 그 무엇을 배우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치적 평등과 자유라는 개념들을 깨우치고 있었다. 한국 백성들이 당한 정치적 박해가 어느 정도였 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기독교 국가에서 백성들이 통치자의 독재에 항거하여 자신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 젊은 양반의 가슴 속에 혁명에 대 한 불길이 솟아올랐을 것은 쉽게 집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말하 기를, ‘이런 정치 원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 같이 짓밟혀 사는 백성들 에겐 큰 복이다’ 하였다.
그 젼에 내가 저 예수교학교에서 듯던 니약이들을 생각하엿나니 그 니야 기를 드를 그 때에는 내가 그 니야기로 말미암아 나의 맘을 영향 쥬지 못하 게 하려 하엿으나 그러나 그것들은 다 나의 긔억에 인샹되여 있었도다. 나의 목에는 무거운 칼이 나려누르고 발은 착고에 끼우고 내가 그 곧에 매달려 안졋을 때에 예수교의 원만한 의미가 내게 도라와 나에게 새 희망을 쥬니 내가 그 졔는 하눌님께 긔도하여 나의 령혼과 우리 국가를 건지리라고 하여 그 모 양으로 나는 령혼샹 위안을 얻엇으니 비록 이 셰샹의 희망으로 나에게 희망 이 업섯지마는 다음 셰샹의 희망으로 나에게 무한한 위로가 되더라. 그 졔는 악형을 곤란을 견대기에 일층 만흔 능력을 얻엇노라.
그졔는 내가 예수교 신앙에 귀복한 날로 내가 다른 죄인들 다려 그 니야 기를 하기 시작하니 졀도ㆍ강도ㆍ살인, 그 이외 여러 가지 죄인들은 나 잇는 옥에 잡아넣어 나를 직히게 하는데 그들은 나와 같히 악형을 당하지 안이하 는지라. 내가 그들에게 예수교를 전도한즉 그들은 성경 한권을 모르게 드려 다가 내가 쓰고 있는 칼판 우에 그들의 성경을 들고 그 속에 포함된 희망과 위로의 신기한 복음을 닑으니 그들도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평화와 위로를 얻고 나죵에는 옥사쟝이가 그들의 신교를 알고 신긔하게 생각하여 자긔도 예 수교로 귀화하엿으니 내가 필경 그 사람의 힘을 닙어 좀 나은 간으로 옮기고 칼을 벗게 되엿셧노라.
작년[1902년] 예수 탄일에 우리도 다행히 구속하심을 엇은 사람이 되어 깃 분 정성도 칙량업거니와 만국만민의 영광시러온 명일을 옥중에서도 처음 경 축하는 거시 또한 용이치 안은 긔회인 고로 관원과 죄수들이 우연히 수합한 돈이 뜻밧게 수백 양이 된지라. 다과를 예비하고 관민 사십여 명이 모여 저 녁에 즐거히 경축할 새 그 지낸 례식은 다 말할 수 업스며 이날 오전에 뻥가 [벙커] 목사끠서 례물을 후히 가저오고 위로차로 오셧다가 모힌 아해들을 보 고 대단히 깃버하야 매주일 에 와서 가라치기를 작정하매 관원들이 다 감사 치하하엿스며 서적실을 설시하야 죄수들로 하여금 임의로 책을 엇어보게 하 려 하매 성서공회에서 깃거히 찬조하야 지폐 오십원을 위한하고 보조하기를 허락하매 사백 양 돈을 들여 책장을 만들고 각처에 청구하야 서책을 수합하 매 지어일본과 상해에 외국교사들이 듯고 서책을 연조한 자 무수한지라.
리승만 박사의 경력담 「신한민보」
그 때로부터 나는 정치 개혁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법률과 규 칙의 문제로만 볼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백성들, 특히 지도자 계층의 사람들 마음과 영혼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을 알았다. 그 후로부터 아침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는데, 예수는 사후구원 이상 의 상징적 인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위대한 스승으로서 형제간 사랑과 봉사의 복음을 가르쳤다. 그 때부터 외국 종교 가르침에 경의를 표하기 시작 했고 예수를 공자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이상 나가지 못했고 나가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다시 들어가기란 죽기보다 싫었다. 저들 은 마치 성난 짐승처럼 내게 악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착고와 수갑 을 채우고 칼을 씌우는 등…감옥 안에 몰래 들여온 신문을 어떤 노인 죄수가 읽어 주는데 이승만이 지난밤에 처형되었다는 등…아버지가 내 시체를 찾아 묻으려고 감옥을 찾아 왔다는 등…나는 내가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어머님 이 먼저 돌아가신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과연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생각뿐이었다. 그 때 [배재학당] 예배당에서 들었던 설교가 생각했다. 그 때부터 칼 위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내 영혼과 내 나라를 구해 주소서.’ 성경책 한 권을 몰래 지 수 한 명이 간수가 오는지 감시하고 다른 한 명은 나를 위해 넘겨주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평안을 찾았다. 그것은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에게 기독교 개종은 기독교 원리에 대한 지성적 성찰의 결과 이상의 심 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수는 그에게 살아 있는 영감이 되었다. 그리스도 의 무한한 자비심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신으로 임한 것이, 그 역시 하나님의 보살피심 아래 있음과 아무리 어려운 형편이라도 그의 남은 생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었 다. 그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고 바랐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위해 뭔가 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그 때부터 이 박사는 자신을 도구로 삼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도록 내맡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올리버 박사의 이승만 전기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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