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셔우드 홀은 풍토병으로 고열에 신음하는 5살의 여자 아이 곁을 밤새 지키며 수시로 체온을 재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딸 에디스 마가렛 홀은 하나님 곁으로 갔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그날 밤을 일기에 남겼다.
“체온 41도 숨이 가쁘고 힘들어 했다. 잠시 후 호홉의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바라 본 채 작은 영혼이 서서히 빠져 나갔다. 그렇게 그 아이는 세상에 보내주신 그분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그녀는 고통스런 가슴을 부여 잡으며 그분의 이해할 수 없는 뜻을 받아들였다.
“밤이 찾아오면 쓸쓸함도 함께 온다. 간절한 그리움이다. 재잘대던 어린아이의 입맞춤과 작은 손이 없어진 지금 그 아이가 없는 삶은 너무도 힘겹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데려가셨으리라”
마국에서 무디 부흥이 한창일 때 세계 최초로 설립된 필라델피아 드렉셜 여자의과 대학을 다니고 있는 로제타 셔우드는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의대를 졸업하고 뉴욕의 빈민가 병원에서 근무하다 같은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윌리암 제임스 홀을 만난다. 윌리암 제임스 홀은 인도 선교를 계획하고 있었다.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는 인도선교를 약속하고 약혼을 하였다.
그러나 한양의 유일한 여성전문병원이었던 보구녀관의 한명 뿐인 여의사 메타 하워드가 과로로 인해 병을 얻어 갑자기 귀국하였고, 의료 공백이 생기게 되면서 북감리교 해외선교부는 로제타 셔우드를 보구녀관으로 급하게 파송 하게 되었다. 당시 인도선교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조선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경로를 바꾸어 보내어진다. 인도선교를 계획하고 있는 로제타 셔우드 홀을 조선에서 사역을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렇게 보내어진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한 가장 유능하며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선교사(宣敎史)에 있어 입을 모아 조선으로 간 선교사가 가장 유능하며 헌신적이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 땅을 하나님이 돌보시고 있었음이다.
윌리엄 제임스 홀은 인도 선교를 포기하고 약혼자 로제타 셔우드를 따라 이듬해 조선으로 건너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윌리엄 제임스 홀은 스크랜튼 대부인의 요청에 따라 선교를 준비를 위해 평양에 다녀 온 후 선교위원에게 조선 내륙의 선교기지로서 평양은 최적지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1. 조선에서 가장 더럽고 문란한 도시이며 사람들이 거칠어 돌을 때리는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기 때문에 최적의 선교 도전지이다.
2. 인구가 10만을 넘으며 사람들이 적극적이고 기업적이라 번성할 여지가 있다.
3. 서울과 북경 간을 연결하는 육로이며, 해상교통도 용이하다.
가장 거칠며, 문란하며, 폭력이 난무하는 평양을 선택하는 선교사의 사명, 스스로 시련과 고난, 죽음을 자처하여 선택하는 하나님의 사명. 그는 자신의 피를 평양에 뿌릴 각오를 했다. 거친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졌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많았음이다.
윌리엄 제임스 홀은 결혼식을 올린지 두달만에 아내를 서울에 두고 홀로 평양에 첫발을 디디며 기도했다.
“만일 하나님이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기를 피하지 않겠어요.”
감리교 평양주재 선교사로 부임한 윌리암 제임스 홀은 의료사역을 시작으로 선교에 나섰으나 이듬해 청일전쟁의 평양전투가 일어나게 되면서 잠시 전장을 피하여 있다가 부상병을 치료하는 중에 발진티푸스에 걸려 서울로 후송 되어 죽음을 기다리며 아내 로제타 셔우드 홀을 위로하며 하나님 곁으로 갔다. 그 때 로제타 셔우드 홀의 태중에는 에디스 마가렛 홀이 자라고 있었다.
“내가 평양으로 간 것을 후회하지 말아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 일을 했어요. 하나님이 내게 갚으실 거예요.”
어머니와 같이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 본 셔우드 홀은 그날을 자신의 일기에 남겨 놓았다.
“불쌍한 엄마, 엄마는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엄마의 베개는 눈물로 젖었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하나님께 사랑하는 아빠를 남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그리고 나서 이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빠는 오늘 아침 눈에 뜨게 위중 해졌으며 한 마디 말씀 하기도 힘들어 하셨고 하는 말을 알아듣기도 이미 어려워졌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아빠의 눈을 감겨 드리고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안고 와서 하나님께 아들을 위해 자신이 더 용감하고 강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복중에 있는 어린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 때 엄마의 심장 아래 있던 그 아이의 작은 심장도 요동쳤다. 하나님은 엄마의 기도에 확실히 응답해주셨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남편이 죽어 갈 때 복중에는 에디스 마가렛 홀이 자라고 있었다. 이듬해 태어난 에디스 마가렛 홀은 남편이 순교한지 3년 6개월만에 로제타 셔우드 홀은 또 다시 어린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윌리엄 홀이 죽은 이듬 해 태어난 에디스에게 많은 위로를 받으며 조선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녀에 일기에 딸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힘든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일기에 남겨 놓았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아기 에디스를 지켜주셨다. 자비를 베푸셔서 많은 날을 더해 주시기를! 상처 받은 엄마의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큰 위로가 될 것인지. 놀라우신 예지로 사랑하는 두 아이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이 아이들이 늘 아버지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 하는 자들로 성장하기를, 그래서 항상 ‘엄마의 위로자’가 되기를 기도 드린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남편을 잃고 아들과 딸에게 자신을 대신할 하나님의 일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힘든 세월을 이겨 가고 있었다. 남편 순교 당시 태중에 있었던 에디스 마가렛 홀은 무럭 무럭 자라 홀부인의 힘든생활을 위로하여 주었다.
“에디스는 병자들, 특히 병난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는지 모른다. 낮잠을 잔 뒤에 에디스는 시료소를 자주 찾아왔다. 밤에는 "하나님 모든 조선 아이들에게 축복을 주세요“. 머리에 뭐가 났고 눈이 아픈, 병원에 있는 그 자리에 남아 있는다. 어느날 오후 에디스가 병원에 찾아왔다.그때 한창 수술중이어서 아이가 왔는지 몰랐다. 수술 도중에 피가 튀어서 내 얼굴에 묻었다. 이 때에 에디스는 의자를 놓고는 그 위에 올라서서 엄마의 얼굴을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아이가 자라서 후에 의사가 될 것으로 믿는다”
홀여사는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역하며 남편과 하나뿐인 딸을 조선에서 잃었다. 더구나 의사로서 전염병과 풍토병에 걸려, 치료제를 구하지 못하는 열악한 의료시설에 절망하며 고열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남편과 딸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고통과 무기력에 절망하여야 했다. 의사로서 질병에 신음하는 수많은 조선 사람에게 생명을 찾아 주었음에도 정작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은 치료하지 못한 좌절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28살이었던 홀여사는 심신회복을 위하여 복 중의 딸과 아들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홀여사는 심신의 안식을 위하여 귀국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사명을 잊을 수 없었다. 셔우드 제임스 홀의 전기를 써서 조선선교의 필요성을 알렸다. 또한 조선 맹인들 교육의 점자 개발을 위해 체계적인 공부도 하였다. 홀여사는 조선 선교에 대한 모금활동과 남편의 전기를 판매한 수익금을 모아 조선으로 되돌아 온다. 남편의 생명을 앗아간 평양을 다시 찾아 홀여사가 직접 미국에서 모금한 돈, 남편 전기를 판매한 수익금, 남편 사망 보상금 등을 모아 남편 순교를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설립하고 이어 평양에 여성전용 병원인 광혜여원을 열었다.
홀부인은 딸 사망 후 딸이 지갑에 남겨 둔 2불 12.5센트와 홀부인이 입고 있는 옷을 팔고, 에디스를 위해 저축한 돈을 종자돈으로 하여 어린이 병원 설립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광혜여원 옆에 아이들을 입원시켜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어린이 전문병원 이디스 마가렛 기념 병동을 세웠다.
홀 여사는 에디스 마가렛 병동(Edith Margaret Wards)을 완공 한 후 시멘트로 만든 커다란 물탱크 저수장을 만들었다. 자신의 딸이 오염된 물을 먹고 풍토병에 걸려 사망한 것을 안타까워 하며 조선의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아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장 24절-25절)”
이국 땅에서 전염병과 풍토병에 걸려 남편과 딸을 잃고, 홀로 남은 아들과 단둘만 조선에 남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적인 홀 여사의 이 땅에서의 사역, 아들 또한 이 땅에서 의료 선교사로 평생 결핵과 싸웠다. 고통과 절망을 오로지 사랑으로 극복했다.
조선 선교사를 공부하며 이 땅을 찾은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목숨 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녀 등 가족을 질병과 사고 심지어 총격까지 당해가며 선교지에서 잃은 것을 알았다. 비단 홀 여사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려가며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했던 그들의 피 값에 울었다.
“너희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명기 7:6-7)
이 땅에 건너 온 선교사들의 피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땅에 뿌려진 피 보다 거룩했다. 이 땅을 하나님이 선택하였음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시온의 땅은 열등하였기 때문이다. 열등한 땅 이 땅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택정 하심은 선교사들의 피로서 시작 되었다.
그들이 이 땅에 남긴 지극한 희생과 사랑을 인간의 본성으로, 선함을 찾는 의로움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선교사 그들은 예수님의 피를 믿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그들은 이 땅에 십자가의 피 예수님의 피를 뿌렸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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