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입국한 아펜젤러는 제물포 앞바다에서 기도했다.
“죽음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다시 사신 주님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굴레를 끊으시어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하옵소서”
그러나 갑신정변의 휴우증으로 조선 정국이 불안할 때 결혼한 몸으로 인천 제물포에 도착한 아펜젤러 부부는 푸트 미공사의 권고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 달 후 다시 입국하여 메리 스크랜튼 대부인 집을 얻어 벽을 헐어 작은 교실을 만들었다.
금교령으로 선교활동을 할 수 없었던 아펜젤러는 교실을 만들어 첫 입학생 이겸라(李謙羅)·고영필(高永弼) 두 학생을 시작으로 배재학당의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사학이 시작 되었다. 아직도 배재고등학교는 최초의 근대 사학을 시작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배재의 역사는 곧 우리의 교육사이다.
1887년 9월 배재학당을 개관하며 아펜젤러는 학당훈(學堂訓)으로 “크게 되려는 사람은 마땅히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욕위대자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로 정했다.
마태복음 20장 26절 ~ 28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학당훈으로 정한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장 26∼28절).
공자도 이해하지 못할 변종 유학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이었다. 성리학은 백성 수탈의 정당성을 부여했고, 성리학의 사령부인 서원은 착취의 교두보였다. 오죽하면 그 지독한 쇄국정책으로 일세를 풍미한 유자 대원군이 “공자가 살아와도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용서 할 수 없다”라며 착취의 본산인 전국의 600여개 서원을 철폐했다.
그 지독한 조선의 봉건질서를 혁파하는데 아펜젤러의 배재학당은 조선을 깨우는 여명이었고, 글자를 익히는 것을 강상의 도를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한 봉건 조선에서 배재학당은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조선 백성을 각성시켜 각자가 한 명의 자유인이 되어야 하는 새벽을 알렸다,
아펜젤러의 선교의 중심은 언제나 교육이었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정동교회에서도 주일학교, 교리연구반, 속회, 신학반(theological class), 금요공부, 매일학교 등의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교육을 앞세웠다.
아펜젤러는 주도적으로 성서번역위원회의 조직했고, 성서 출판의 중심부인 대한 성교서회도 창립멤버가 되어 설립을 주도했다. 배재학당의 삼문출판사를 통해 정기간행물의 효시인 월보(月報) “교회”를 창간 출판했고, 대한그리스도 신문을 발행하였으며, 번역성서와 독립신문을 비롯하여 조선 백성의 계몽을 위한 온갖 출판물을 출간하였다. 입국과 거의 동시에 벽을 헐어 교실을 만들고 교육과 출판에 헌신한 아펜젤러의 선교 비전은 교육과 출판이었다.
배재학당에 다니던 청년 이승만은 어느날 조상의 위폐를 모신 사당을 찾아 큰 절을 올린 후 제중원 원장 올리버 에비슨을 찾아갔다. 에비슨에게 상투를 잘라 줄 것을 부탁하자 에비슨은 가위를 들어 주저 없이 이승만의 상투를 자른다.
배재학당 협성회 정기 토론회에서 상투를 자르는 문제를 토의 했다. 상투를 자르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냈다. 토론회가 끝난 후 배재학당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가위를 들고 서로의 상투를 자르고, 잘려나간 상투를 들고 훌쩍 거리는 학우 옆을 가위를 들고 도망가는 학우를 쫒아 가서 상투를 자르며 그들은 한명의 각자 존중 받아야 하는 개인으로,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배재학당은 무엇이든 최초였다. 최초의 학제, 최초의 교과서, 최초의 입학식, 최초의 방학과 방학식, 최초의 운동경기, 최초의 국제학교, 최초의 사범학교, 최초의 대학 설립, 최초의 학생회, 최초의 동맹휴학, 최초의 교복 착용, 최초의 집단 체조, 최초의 학칙 등 무엇이든 최초이다. 그런데 위 최초는 그대로 계승되어 지금도 행하여 지고 있다.
다음 날 배포 될 독립신문을 인쇄하느라 삼문출판사의 인쇄기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시경은 바쁘게 돌아가는 인쇄기에 보조를 맞추어 분주하게 학우들과 같이 인쇄된 신문을 정리하고 있었다. 피로감이 몰려 오며 하품을 하였지만 주시경은 행복했다.
다음날 배포 될 독립신문이 모두 인쇄 된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깊은잠에 빠진 주시경은 새벽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했다. 오늘은 삼문출판사에서 급료를 받아 학비를 내야 하는 날이다. 스승인 헐버트 선교사로부터 한글연구 과제를 받아 연구도 해야 하고, 수업도 들어야 하며, 인쇄소에서 노동도 해야 했다. 늘 피곤하지만 배재학당에서 공부하는 것은 행복했다.
학생 주시경은 인쇄소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그러나 주시경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재학당은 철저하게 학비를 받았다.
주시경은 이승만과도 막역지우 사이였다. 이승만이 한성감옥에 수감 되자 탈출용 권총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에 학칙을 만들었다.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 즉, 규율과 기강이 있음을 가르쳤다. 그 학칙 제1조가 수업료는 매월 3냥을 내는 것이었다. 부자도 빈자도 예외 없이 적용 되었다. 그리고 제2조가 "학자금이 없는 이는 일자리를 주고 힘으로 벌어서 쓰게 한다"였다. 자유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책임감을 규정한 것이다. 그래서 주시경은 학교에서 마련한 삼문출판사에서 노동을 한 것이다. 언문을 "한글"이라는 이름을 짓고 한글학자가 된 주시경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배재학당은 가난한 고학생을 위하여 자조부(自助部)를 두어 학교 교내를 돌보고 지키는 일을 고학생에게 맡겨 급료를 주었고 수업료를 충당하게 했다. 삼문출판사의 인쇄일은 가난한 고학생이 도맡았고, 조선말이 서툰 선교사에게 고학생을 소개시켜 조선말을 가르치게 했다.
이승만은 진고개의 제중원에 의료선교사로 온 조지아나 파이팅 양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아르바이트로 받은 20달러라는 큰 돈을 집에 내놓자, 온 가족이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배재학당 학칙은 총24개조로 되어 있었고, 등교시간, 수업과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학생증, 학교출입의 절차, 학교에서의 예의범절, 국법의 준수, 공중도덕, 결석, 음란서적 금지, 임의 결석이 한 달이면 퇴학, 정학과 퇴학, 정기시험의 횟수, 각 과목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성적표를 부모님에게 교부, 주일 휴무 엄수, 취침시간 엄수, 급식시간, 학교 청소 및 정화 등이 규정되어 있다.
유학은 신라 최치원 때부터 구한말 고종에 이르기까지 1000년이 넘게 이 땅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왔다. 너무나 오랫동안 고여 썩을데로 썩어 더 이상 어찌 해볼 수도 없었다. 배재학당은 저 썩을데로 썩은 봉건질서를 혁파해 나갔다.
배재학당의 교과목은 영어, 천문, 지리, 생리, 수학, 물리, 화학, 역사. 실업, 일어, 체육과 미술, 한문, 음악, 의학 등 오늘날 교과목과 거의 흡사하며, 정구와 야구, 축구, 연설회, 토론회 등도 가르쳤으며 신학교육도 이루어졌다.
빙상, 육상, 농구, 배구, 테니스, 럭비 등 체육활동을 정규과목에 포함시켜 교육을 하였다. 이러한 전인적 교육은 우리나라에 현대식 교육이 정착하는데 공헌하게 된다.
배재학당의 교사는 우수했고, 많은 선교사들이 와서 가르쳤다. 그들은 본국에서 석사 또는 박사의 학위를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의학박사 윌리엄 스크랜튼을 비롯하여 노블, 아펜젤러, 올링거, 서재필, 윤치호, 헐버트, 기포드, 벙커 등이 와서 가르쳤다.
그들을 통해 신학문을 배웠고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언론, 계급해방과 평등, 중상주의와 시장주의를 공부하며 체득했다.
국부 이승만을 비롯한 주시경, 안창호, 김소월, 나도향, 신흥우, 오긍선, 지청천 등 그시대 정치와 문화를 견인한 각 분야의 인재들이 배출 되었다.
웨슬리안 아펜젤러 그리고 그의 사회적 성화가 남긴 유산은 참으로 크다.
배재학당은 대한민국의 현대교육의 시작이다. 오늘의 교육시스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배재학당에서 시작 되었다.
배재학당을 통해 각성한 인재는 대중을 깨웠고 각성한 대중은 만민공동회를 통하여 백성의 의지로서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려는 고종의 생각을 꺽은 것처럼 교육을 통하여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사회의 주인은 시민임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가혹한 봉건질서와 계급, 억압과 차별을 혁파하는 시민정신의 모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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