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과 감사원 감사국장의 방문
현제 각하의 친동생인 전경환 새마을 총재님과 각하의 처삼촌께서 수입 소 과다로 이렇게 되었다는 얘기까지 저는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저의 아내가 대접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서 저에게 이런 저런 얘길 하시면서 각하께서 저희들을 엄 밀[嚴密]히 불러서, 그 어떤 사람들도 나는 믿지 못하니 민정수석 당신과 감사원의 감사국장 두 사람이 가서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에게 보고를 하라고 하시는 특명을 받고 오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두 분은 나에게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하시면서
두 손을 잡아 주시면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 집을 두시간만에 떠나 간 후에 일주일쯤 있다가 안동 시청 시장 실에서 나에게 전화가 와서 급히 시장실로 들어오라고 해서 가보니 형님께서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각하께서 자네에게 특별 하사금 일천만원을 수표로 자네에게 전해주라는 각하의 특명이 있었네, 그리고 담당 공무원들은 전혀 잘못을 묻지 않겠다고 각하께서 공문까지 보내셨네, 하시면서 일천만원짜리 수표를 저는 평생에 처음 그날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장 형님께 말씀 드리길
저가 각하께 탄원서를 농어민 후계자 대표로 죽기를 각오하고 보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각하께서 보내주신 돈은 절대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와 우리 후계자들이 원하는 것은 원금과 이자를 당분간 소 값이 안정 될 때까지만 유예를 시켜 달라 하는 말씀을 형님께 드렸더니 형님께서도 저의 마음을 아시는 지라, “각하께 그렇게 전 하겠네” 하시더군요. 그리고 이틀 후엔가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검찰총장에게 긴급하게 외국 소 수입에 대하여 검찰에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셨고,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각하의 친동생인 전경환 새마을 총재는 총재 자릴 내어 놓고 부정 축재로 감방에 이규광과 장영자 처삼촌 숙모를 함께 감방에 보낸 것이고, 저가 각하께 탄원서를 보내고 난지 23 일 만에 농어민 소 사육농가의 부채에 대한 이자 전액 감면과 오년거치 오년 원금 상환을 십년 거치 십년 상환으로 전체 3 만여 농가에 혜택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는 저를 안동 시청 공무원으로 특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지만, 저는 본청과 사업소의 맑고 깨끗한 자릴 마다하고, 냄새 나고 힘든 삼 디 업종인 분뇨처리장으로 자청해서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만 19 년 7 개월 동안 안동시민들의 똥과 함께 생활했고, 공무원 생활 십년 만에 저는 2 천 오백만원의 농어민 후계자 지원 대출상환자금을 다 갚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라 빚도, 개인 빚도 단 일원 한 장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백담사에 유배를 가셔서도 삼년동안 저에게 연말이면 한 번도 빠짐없이 손수 쓰신 자필로 저의 내외의 안부를 물어 오셨고, 저의 가정에 축복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각하께서 살아생전 한번이라도 찾아뵙고 싶었지만, 저는 김대중 정권 당시
공무원 구조조종 당하고, 안동시 시설환경 관리사업소를 만들어서 오년간 근무하다가 정년퇴임 했었고 노무현 정권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분을 찾아뵙지 못한 것이지만, 아직도 전두환 각하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그분을 저는 재임당시에 세 번이나 직접 지근거리에서 새마을 지도자로, 농업인 지도자로 농민후계자 대표로 오찬까지 같이 했지만 그분은 사심이 없는 정말 올곧은 군주였습니다. 호탕하고 비록 자기의 친동생이라도 가감하게 법대로 징치하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께서
21 년 11 월에 돌아가시고 그분의 고향인 합천 분향소에 갔으나 전두환 대통령님의 고향이지만, 그곳에는 초라한 세평짜리 조그마한 천막이 세 개만 쳐져 있고 군수나 지방 기관장들의 조화 한 개도 보이지 않고, 합천 시내 어느 곳에도 각하의 서거를 알리는 현수막하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합천 분향소를 간신히 찾아가니 그야말로 자유 민주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셨고, 깡패들을 소탕하고 경제 발전 최고의 융성기를 만드셨던 각하의 사진 한 장이 조그마한 세평짜리 천막 안에 쓸쓸하게 모셔졌고
합천군의 공무원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고 분향소를 안내하는 분들은 각하에 전 씨 집안의 일곱 분이 저희 문상객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하의 영정이 모셔진 분향소에는 국화 한 송이조차 영전 앞에 드릴 수 없었고, 양초만 두 개가 켜져 있고 향합 한 개가 쓸쓸하게 놓여 있더군요. 저는 대표로 향을 피우고서 우리 친구들 네 명이서 각하에 대한 참배만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천막에 안내받아 가니 외부 문상객들은 오직 안동에서 간 우리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가 = 계속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