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각하께 보낸 탄원서 얘기
내가 정신을 차려서 보니 저수지 물에 뛰어 들려고 하던 그 시각에는 분명히 저수지 주변이 캄캄 했었고, 내가 막상 물에 뛰어 들려고 하던 시각에는 달빛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살을 하려고 물속에 뛰어 들려고 하던 그 시각에는 저수지의 물속이 환희보이고 달빛 그림자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속에는 엄청난 괴물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려는 공포감을 느끼면서 뒤에서는 무언가 나를 확 잡아채려는 감각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하려고 하던 사람이 오히려 겁을 먹고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는 것이 지금에 생각해도 나는 그 당시 자살할 운명이 아니었던 가 본다. 그리고 바로 그 이튼 날은 내가 태어 난지 36 년째 되는 생일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내가 죽었다면 남겨진 부모님과 나의 아내와 어린 애들은 어떻게 되었을 가하는 생각을 해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고,
죽으려고 마음먹으면 무슨 일인들 못할 것인가. 하면서 다시 경상북도 농축산과와 도지님과 농수산부 장관님을 후계자 대표로 만나 뵙고서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결국 그분들의 말씀은 이종 사촌 시장님의 말씀과 똑같을 뿐이고,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는 것이다. 매년 5 월과 11 월부터는 노란딱지 빨간 딱지 독촉서 채고장이 각 은행으로부터 날아오고 사채주인들의 성화도 더한층 심했다. 안동 촌 노 김성복은 지금도 노란색과 빨간색을
가장 싫어하는 것이 그 당시 독촉장과 채고 장이 노란색 빨간색 종이로 대문 우편함에 꽃 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융자금 700 만원을 받을 적에 두 사람의 보증인 중에 처남과 고종사촌형님 뵈올 면목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이란 결심으로 전두환 대통령께 올라가는 후계자 사업에 대한 보고가 전경환씨와 이규광 장영자씨에게 막혀 버린다는 것을 알고 전두환 대통령께 탄원서를 올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하고, 나하나 죽어서 여러 사람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그길을 택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1986 년 12 월 4 일 저녁에 양면 편지지에 아래에는 까만 묵지[墨紙]를 데고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 드리는 탄원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탄원서 내용에는 후계자로 선정이 되면서부터 시작해서 농어민 후계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두 담아서 탄원서를 쓰고 내가 가정에서 쓰는 생활비와 소사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경조사비까지
일목요원하게 내용을 적은 것이 일곱 장이고, 소 구입 당시에 구입비 전표와 기록일지까지 요점 정리해서 열장을 1 호 봉투에 밀봉을 하고 봉투 접지에는 나의 인감도장을 촘촘하게 찍어서 그 어떤 누구라도 보고 뜯지 못하게 해서 "청와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친전"[親展]이라고 쓴 다음에 그 이튼 날 안동 우체국 본점에 가서 속달등기로 발송한 것입니다. 그리고 삼일 있다가 저녁 다섯 시 정도 되어서 아래채 방에서 소죽을 끓이고 있다가 저의 집에
안동시 농촌지도 소장이신 故 강성빈 소장님과 안동 농협장이신 故 권기수 조합장님 두 분께서 얼굴색이 새파랗게 되어서 “김 회 장” ! 빨리 밖에 나와 보라고 해서 나가보니 저의 이종 사촌형님이신 신우균 시장님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저를 보시더니 “동생” ! 대통령 각하께 무엇을 보낸 는 가 ? 하시면서 저에게 물으시길 레 “예” 저는 농수산부장관님까지 찾아뵙지만 형님과 똑같은 대답뿐이어서 저는 죽기로 각오하고 각하께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그걸 사본이라도 갖고 있는가 ? 하시길 레, 저는 그 사본을 형님께 갖다 드렸더니 형님께서 한참 그 내용을 보시더니 동생의 글은 사실이지만, 어째서 전국 2 만 명 대표로 자네가 했는가 ? 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그 리고, 허공을 한참 응시하시면서 알았다. 하고, 곧바로 집에도 들리지 않으시고 세분이 가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저의 집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 두 분이 저희 집을 찾아 주셨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저에게 명함을 건네주시면서 저희들은
대통령 각하의 특명을 받고 온, 저는 민정 수석이고 이쪽은 감사원 감사국장이신 아무개라고 합니다. 하시면서 저의 집 주변과 우사주변을 둘러보면서 저가 기록한 소 사육일지를 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의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시고, 노부모님 까지 모시고 계신다면서 저의 둘 내외를 보고서는 예의 바르게 말씀하시면서 각하께 탄원서를 보내게 동기부터 자세한 얘기를 해 달라고 하시길 레, 저는 그분들과 각하께서 전혀 모르시는 얘기까지 다 얘길 해드렸습니다. = 계속 =
-- 안동 촌노 --
1986 년 12 월 5 일 전두환 대통령께 보낸 탄원서[歎願書]입니다.
존경하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
소생은 각하께서 공무원 부정축재 환수 금으로 만들어진 농어민 후계자사업으로 1982 년 안동시 농민후계자 농촌지도자 1 기로 선정된 김 성복입니다. 불철주야 국정에 여념이 없으신 각하께 불민한 소생이 탄원서를 올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소생이 1982 년 영광스럽게도 안동시 농민후계자로 선정되어 각하께서 하사하신 후계자 육성 우 암소 번식 우 사업 자금으로 700 만원을 수령하였고, 농민후계자 사업운영에 대한 약정 상, 저가 충당한 자부담 사채 300 만원을 합해서 일천만원으로
암소 비육[번식 우] 사업을 4 년간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소 값 하락으로 도산의 위기까지 몰려 있습니다. 저가 처음 농민 후계자 육성자금을 받으면서 구입 할 적에 소 값은 출산 연령이 8 개월인 암송아지의 경우에 일백만원에서 일백 20 만원까지였고, 30 개월이 넘는 출산 암소의 경우에는 2 백만 원이 넘어 갔습니다. 그러 나, 저가 처음 구입할 당시의 소 값에 비하면, 지금의 소 값은 생후 8 개 월령이 15 만원에서 20 만원이고, 암소성우인 경우에 최고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40 만 원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희 농민후계자들은
생산비는 물론이고, 처음 구입할 당시의 소 값에 비하면 75% 에서 80% 의 하락한 소 값으로 인해서 저희들은 그야말로 농민후계자 사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 시작할 당시에 6마리의 암송아지로 시작해서 지금은 열여섯 마리까지 번식을 시켰지만, 농수산부에서 지나친 외국 소 도입으로 결국 저희들이 그동안 힘들여 생산한육성우가 엄청난 소 값 하락으로 이어 지고 있고, 우리 농민후계자들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투자한
사채 운영비는 물론이고, 각하께서 하사하신 저리의 농어민 후계자 융자금 마 져, 상환기일이 도래되어 상환 독촉장을 보면 저희들은 눈앞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농촌지도소와 시청과 도청, 농수산부에 저희들의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있지만 대통령 각하의 특별사업이라 해서, 해당 공무원분들도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무릅쓰고, 대통령 각하께 저희들의 어려움을 이렇게 진언 드리는 것입니다. 저와 친한 농민후계자 동지들 여러 명은 이미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농민후계자의 꿈을 접었습니다. 저희들이 죄가 있다면, 농촌에서 묵묵히 새마을 운동에 매진하면서 이웃을 위해서,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한 죄 밖에 없습니다. 소생도 안동시에서 후미진 산골짜기에 교통도 불편한 오지에서 칠순이 넘으신 노 부모님과 젊은 아내와 다섯 살 된 딸애와 네 돌이 지난 어린 아들은 둔, 가장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새마을 지도자로서 힘든 농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공무원 부정축재 환수 금으로 농어민 후계자 사업정책을 입안 조성하실 적에
열렬하게 지지와 환영을 한바가 있었고, 젊은 농촌의 일꾼들이 농촌 발전의 초석이 되도록 지렛대를 놓아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릴 적부터 목장주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 질것이란 기대감에 부푼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꿈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현실 앞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자살이란극단적인 선택을 했었지만, 연세 많으신 노부모님과 젊은 아내와 젓 먹이 어린 아이들을 바라 보면서 차마 죽지를 못하고 각하께
이 모든 사실을 밝히려고 마지막 저의 숨결을 가다듬어 대통령 각하께 탄원서를 올리옵니다. 부디 저가 지금 쓰고 있는 탄원서가 대통령각하께 전달되길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농민후계자 육성 우 사업은 저희들의 잘못이 아닌, 농수산부와 축산관계기관에서 소 사육두수를 정확하게 측정 파악하지 못하고, 외국소를 과다 도입한 잘못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각하께서 모르시는 부분도 있을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채상환 연기조치라도 해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우리 농어민 후계자들이 도산하고 빚을 갚지 못해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진상을 각하께서 하루속히 밝혀주시길 간곡히 바라옵니다. 이 탄원서가 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첨부 : 사업일지 및 가계부
1986 년 12 월 5 일 안동에서
농민후계자 김 성 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