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는 수학의 세기, 18세기는 자연과학의 세기이며, 19세기는 생물학의 세기였다. '20세기는 공포의 세기이다'라고 한 알베르트 카뮈의 명언이 생각나지요. 그럼, 오늘날을 사는 21세기는 무슨 명언이 떠오를까요? '두뇌의 시대', '영감 경영의 시대', '여성 정치의 시대', '리눅스형 리더의 시대', '동양철학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 등이 우선 제 머릿속에 맴도네요. 그런데, 저는 21세기는 '불확실한 시대'로 정의하겠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크나큰 화를 당하곤 하지요. 뜻밖의 경종이 새로 태어난 아침의 고요를 진동시키고요. 때로는 인간의 시작이 우리에게 삶의 숨 쉬는 소리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요.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주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며 유물이지요. 그중에서도 우리 가슴속에 뼈아픈 상처를 심어주는 사건이 있어, 한 인간으로 슬픔과 안타까움을 한동안 느낄 때가 있지요. '차마 인간이 그럴 리가?' 대문짝만하게 쓰인 뉴스거리를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절로 인간이 두려워지고 서글퍼지지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큰 것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인데요. 이성(理性)을 가지고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지요. 어쨌든, 인간이라면 자그마한 이성 정도는 가지고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인간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존중해 주는 작용을 한 것이 이성이고요. 내가 존재하고, 내 이웃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간 근원의 젖줄인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게 있다'라면 말해 보세요? 인간의 탈을 쓴 이리라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사고에서 인간의 생명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존경쟁의 투쟁에서 이기는 길이 남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일까요? 그 죽음의 가해자는 그 원인을 말해 보세요? 선악과 물욕과 욕정... 모두 인간이 존재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들이지요.
인간은 언제인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마련인데, 그날이 오기 전에 인간다운 최대의 삶을 사는 게 우리 인간들의 도리가 아닌가요? 짧은 이 숨 쉬는 시간, 인간 서로의 투쟁으로 단명(短命)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날을 공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 사회를 말들 수는 없을까요? 아마도 이런 사회는 유토피아(Utopia)일 것이지요. 인간이기에 마땅히 공포, 불안 등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 공포, 불안 등을 재치와 유머로 넘겨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들의 인생은 너무도 짧은 것입니다. 짧은 인생만큼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해요. 그리고, 나의 생명이 끝난다 해서 다른 모든 인류 문명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요? 사는 것이 자손만대로 이어질 영속적인 삶의 투쟁이지요. 베르그송이 말한 것처럼 '현재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참고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인간의 죽음, 공포와 두려움에 익숙해지지 않고서는 희열과 행복을 느낄 수가 없는 법이지요.
오늘날 불확실한 시대에서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을 '생명의 숨 쉬는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남의 인권도 존중해 주고, 보듬어 주어야만, 진정 우리가 조금은 원하는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지 않을까요?'
명언*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더 큰 시간 낭비이다.– 메이슨 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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