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한쪽 기둥이었던 칼빈의 고향은 프랑스이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칼빈주의자 즉 프랑스 개혁교회를 이끈 “위그노”가 있었다. 그들은 고작 몇%에 불과하였음에도 37년 전쟁도 불사하며,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위그노들은 “짐이 곧 국가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극단적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웃 나라로 엑소더스에 오른다.
칼빈은 세속적인 직업이라도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세속적인 직업은 성직이라고 가르쳤다. 주로 상공업에 종사한 위그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한다는 소명으로 자신의 직업을 예배 하듯 섬겼다.
위그노에게 하나님이 내린 소명 직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투신한 직업, 위그노들을 유럽에서 가장 탁월한 상공인이었다. 그들은 당시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제철, 염료, 화학, 제지, 모직, 면직, 금융, 무역, 항해 등에 탁월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공업을 지탱하고 있는 수십만명의 위그노가 떠난 후 프랑스의 경제는 몰락을 가속했다. 이어 계속 이어지는 계속 된 전쟁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후진국으로 전락하며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영원한 숙적 영국은 당시 프랑스 국력의 삼분의 일도 못 미치는 속국에 불과했다. 영국의 찰스2세는 특별법까지 만들어 위그노들을 기술이민을 받았다. 위그노들은 영국에 면직기술, 염색기술, 유리, 보석단추, 자수, 스타킹 등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고, 증기기관 기술을 가졌던 위그노는 증기기관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산업혁명의 방아쇠는 위그노에 의해 당겨졌다.
독일로 넘어간 위그노들은 독일에 제철기술과 제약을 가르쳐 주었고, 독일 산업의 부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독일을 상징하는 벤츠, 바이엘이 위그노가 만든 회사이다.
용병을 보내는 것 밖에는 돈벌이 수단이 없었던 산악국가 스위스로 넘어간 위그노들은 시계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고, 금융업을 일으켜 그 유명한 스위스 은행이 탄생한다. 샤프와 하우젠이 위그노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다.
네덜란드로 이주한 위그노들은 네덜란드를 해양강국으로 만든다. 바다의 마부로 불린 네덜란드는 동양과 서양의 무역을 장악하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탈바꿈한다.
산업혁명은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혁명 중 하나로 꼽힌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경제성장이 없었다. 농경사회가 가져다 주는 고정 된 자원에서 산출 되는 생산물은 성장이란 없었다. 인류는 오로지 고정 된 자원과 인력에 비례한 생산물에 만족하여야 했다.
농경사회는 언제나 성장율 0%의 경제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과거 농경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축복을 가져왔다. 영국의 증기기관과 방적기관에 의해 1760년대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위그노가 일으킨 인류의 축복이었다.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 온 것 뿐만 아니라, 오로지 시간과 인력이라는 생산요소에 좌우되는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혁이 일어났고 그 변혁의 의미는 인간에게 여가가 생겼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여가를 통하여 교육과 지식 및 정보를 습득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으로 건너간 위그노의 후손이다. 미국에서 위그노는 총 8명의 대통령을 배출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세계 대공황의 극복, 2차대전의 대처는 탁월했다. 위그노에 의하여 속국에 불과했던 영국이 프랑스를 넘어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고, 위그노의 활약으로 미국은 세계의 패자가 되었다.
1985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위그노 학살을 있게 한 퐁텐블로 칙령 선포 3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있는 위그노 후손에게 자국에서 벌어진 위그노 학살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그 사과는 어쩌면 프랑스에서 빠져 나간 위그노의 지식과 기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 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위그노는 재산 몰수, 고문, 학살 등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과 성경을 지키기 위하여 모진 탄압에 저항했다. 그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고, 주일예배를 지키기 위하여 주중에 맡은 일을 모두 끝냈다. 경건과 지식을 강조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라는 성경의 명령에 따랐다.
마리 뒤랑은 자신의 신앙을 위하여 19세에 체포돼 57세까지 38년을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개종 한다는 말 한마디면 즉시 풀려 날 수 있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감옥 돌바닥에 새겼다.
“저항하라(Register)”
국부 이승만의 스승은 미국 감리교에서 파송한 아펜젤러 선교사 이다. 아펜젤러에게 수학한 후 한성감옥에서 개신교로 회심한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 칼빈주의 교회인 워싱턴 D.C 커버넌트 장로교회에 출석하여 투니스 헴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는다.
국부 이승만은 박사학위를 받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일년 동안 신학공부를 한다. 프린스턴 신학대의 교장은 칼빈주의 학자로 존경 받는 비 비 월필드가 교장으로 있었고 칼빈클럽에서 주는 식권으로 가난한 유학생의 끼니를 이었다. 국부 이승만은 세계 최고의 대학인 프린스턴 대학교 신학을 공부하며 영적, 지적 성숙은 깊이를 더했다.
국부 이승만의 삶은 저항의 삶이다.
고약한 봉건 권력과 관습에 맞서 싸우며 5년이 넘는 끔찍한 옥고를 치루어야 했고, 악으로 뭉쳐진 공산주의와 평생을 싸웠다. 그의 이러한 저항정신은 위그노의 정신이었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