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너무 많으면 목이 메어 못 한다 하던데 진화에 관해 말하려는 내가 그렇다. 빌어먹을 카를 마르크스는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메모를 해뒀고, 독서 메모만 해도 책 32권 분량이라고 한다. 반면에 나는 메모라는 시간 잡아먹는 그딴 짓(?)은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금 이 시간에도 이 글을 쓰려고 어느 책 어디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책장을 뒤지며 전에 봤던 책을 다시 꺼내 확인하는 그런 수고로움을 감당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완전 엉터리로 배웠다. 원숭이 비슷한 동물이 구부정하게 어기적어기적거리다가 점점 허리를 펴고 나중에는 두 발로 꼿꼿하게 서서 걷는 오늘날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는 그림을 곁들여 배웠다. 이걸 계단식 진화라고 하는데 학계에서 이미 퇴출된 지 오래다. 계단식 진화는 진화론에 관한 완벽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들 쉽게 말하는,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틀렸다. 원숭이는 아무리 키워도 사람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는 원숭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당연히 원숭이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동생이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서 동생이 할아버지일 리가 없고, 할아버지가 동생일 리가 없는 것과 같다.
인류는 대략 6백만 년 전에 유인원(사람 닮은 원숭이)과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고, 그 후로 수많은 종들이 나타나고 멸절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가 20만 년 전 오늘의 인류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하여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오늘날 인류는 호모사피엔스 단 한 종뿐이다. 다른 종들은 다 멸종했기 때문.
진화는 변이와 적응과 자연선택과 유전과 새로운 종의 분화로 이어진다. 때문에 그 과정에서 굉장히 긴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그리고 진화는 꼭 좋은 쪽으로만 변화하는 게 아니다.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개체집단의 변화를 뜻한다. 곤충이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고치로, 고치에서 어른벌레로 변태하는 것을 진화라고 말하는 무식한 진화론자는 없다.
진화는 교과서에서 배운 계단식이 아니라 나뭇가지 타입이다. 이를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 한다. 생명의 나무 스케치는 찰스 다윈의 노트에서도 발견된다. 나무는 하나의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오고 더러는 말라 죽기도 한다. 말라 죽은 가지는 멸종한 생물이고 가지 끝에 있는 종은 오늘날 진화의 종착역에 닿은 생물종이다. 물론 앞으로도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
1859년에 초판이 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은 제법 두툼한 책이다. 앞 부분은 비둘기 연구에 관한 얘기로 지루하게 시작한다. 웬만한 끈기로는 끝까지 읽기 힘들다. 완벽주의자였던 다윈은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공을 들였고 문장은 길고 비유가 가득하다. 때로는 문장 하나가 한 페이지를 차지하기도 한다. 때문에 [종의 기원]을 읽고 대번에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는 ‘용불용설’로 잘 알려진 라마르크가 [동물철학]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 제1판에서 진화라 하지 않고 변화된 후손(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 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기린이 높이 달린 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늘린 결과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으므로 틀린 학설이다. 아버지가 열심히 헬스를 하여 근육질 몸매가 되었다고 해서 자식이 근육질 몸매로 태어나지 않고, 어머니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고 해서 자식이 쌍꺼풀을 한 채 태어나지는 않는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어쨌든 생물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는 관념을 심어주었다. 찰스 라이엘은 [지질학 원리]를 펴냈다. 라이엘은 지금의 지질이 노아의 홍수 때 형성됐다고 주장하는 홍수론자들을 침몰시키기 위해 그 책을 펴냈다고 했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는 다윈에게 지구의 나이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이는 진화의 조건인 ‘굉장히 긴 시간’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당시에 발견된, 지구상에 없는 이미 멸종한 동물의 화석들은 생물이 멸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진화론이 등장할 여건은 이미 충분히 조성되어 있었다. 완벽주의자인 다윈의 성격과 종교의 눈치를 보느라 미루어지고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다윈이 탐사여행을 끝낸 지 23년이 지난 1859년에야 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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