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학 생활에서 경험한 일본인과 중국인의 관계
※ 필자 주(注):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05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중국의 베이징(北京)에서 10여년이 넘게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필자가 직접 만났던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중심으로 하고, 부차적으로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필자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식으로 적은 것이다. 이 글을 통해, 필자의 일본인에 대한 생각과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께 필자가 경험한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개인의 정보와 타인의 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로 인해, 사람의 이름과 특정한 기관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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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국의 대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중문학 전공이라서, 필연적으로 중국에 유학을 하여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학문뿐만 아니라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중국 현지에서 그들과 접촉하면서, 그들로부터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에 필자는 2005년 8월에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곧바로 중국의 명문대가 밀집한 베이징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하게 되었다.
2005년 8월 당시, 필자가 처음으로 가본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그야말로 무질서 속에 그들 나름의 모종의 질서가 유지되는 그런 모습이었다. 도로에는 자동차와 버스뿐만 아니라 리어카, 말이 끄는 수레, 자전거, 오토바이, 전동 자전거, 삼륜차 등등이 뒤섞여 그야말로 무질서의 극치였다. 이러한 무질서들은 2008년 8월에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의 체계와 질서가 바로 잡히면서 거의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필자는 베이징의 이러한 변화와 발전을 목도하면서, 한편으론 박사과정 입학을 위해 북경대(北京大)와 청화대(淸華大)에서 수업을 들었다. 필자의 전공 분야가 호여연해(浩如煙海)와 한우충동(汗牛充棟)이란 말로 형용되는 중국의 고문헌학(古文獻學)이어서, 상당한 분량의 공부가 필요했다. 게다가 중국의 인구 대비하여 수많은 중국학자의 연구성과 역시 상당하여서, 박사과정 준비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암튼 이러한 어려움 끝에 베이징에 간 지 3년이 되던 시기이자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2008년도 9월에 베이징의 모 대학원에 중국 문헌학의 전공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매우 운이 좋게도 등록금 면제, 기숙사 제공, 매달 일정한 생활비가 제공되는 중국정부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학교의 기숙사는 2명이 함께 사용했는데, 룸메이트가 바로 필자보다 나이가 7〜8살 어린 일본인 석사(碩士)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에게 기숙사의 방을 배정할 때는 주로 문화권이 비슷한 국가의 학생끼리 해주는 경향이 있기에, 필자는 일본인 학생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3년간 함께하게 되었다.
필자는 일본인 룸메이트와 주로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3년간 함께 생활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인과의 문화적 차이나 사유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친하게 지냈다. 필자는 3년간의 생활에서 일본인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생활과 남을 배려해 주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령 필자가 학기 말에 제출해야 할 소논문과 한국에 발표할 논문이 많은 경우에는 부득불 밤샘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일본인 친구는 잠자리가 불편했을 터인데도 묵묵히 참고 이해를 해주었다.
필자와 일본인 친구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순수하게 대학원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석사와 박사였다. 이처럼 정치와는 거리가 먼 우리의 유학 생활에서도 어떤 정치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10년 9월에 발생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은 釣魚島)의 분쟁이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반일(反日) 운동이 일어났다. 중국에서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과 일본의 관광 금지를 비롯하여 중국에 있는 일본산 자동차까지 파괴하는 그런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중일(中日) 간의 정치적 사건은 대학교의 일본인 유학생까지 영향을 끼쳤다. 중국 내의 반일 감정이 극도에 이르자, 급기야는 유학생 사무실에서 긴급 통지란 형식으로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당분간 일본인 유학생들의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아마도 중국 공산당의 집단적인 폭력 속성이 있기에, 유학생 사무실에서 일본인 유학생들에게 그런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인 유학생 역시 주로 학교 안에서만 생활하는 매우 조심스레 생활하였다.
이처럼 중국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과는 상대적으로 각종 핍박과 탄압을 받는 데는 비단 2010년 9월의 센카쿠 열도에서 야기된 분쟁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마도 1937〜1945년의 중일전쟁(中日戰爭)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당시 필자가 유학하던 시절에 중국의 어느 TV 방송사에서 항일전쟁과 관련된 드라마를 통해 은연중에 중국인에게 반일(反日)과 극일(克日)의 감정을 심어주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중국인이 일본인과 싸우는 드라마를 계속 보여주면, 당연히 중국인이 일본인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길 리 만무하다.
중일전쟁 중에서 아마도 1937년의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 사건이 지금의 중국인이 일본에 대한 극도의 반일 감정을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한다. 이 사건은 중국에서는 남경대도살(南京大屠殺)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남경사건(南京事件)이라고 한다. 이처럼 남경대학살 사건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2011년 12월 15일, 중국에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남경대학살을 바탕으로 제작한 「金陵十三釵」(한국에는 「진링의 13소녀」로 소개)가 상영되었다. 당시 어학연수로 왔던 20대 일본인 유학생들에게 이 영화의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이 과제로 나왔다. 아마도 중국인 선생이 이 과제를 일본인 학생들에게 준 것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남경대학살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를 시험해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중국인 선생은 일본인 학생이 남경대학살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이 적힌 과제물에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한국에서 초중고 시기에 중국에 조기유학을 온 어느 학생이 수업 시간에 중국인 선생이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다.”라고 강의하면, 곧바로 한국 학생이 “선생님, 대만은 중국 것이 아니에요.”라는 발언할 경우에 그 학생은 감점을 받는 현실도 있다. 즉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 놓은 모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말하면, 감점이나 각종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한때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극도의 반감 정서에 대해, 중국인 박사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필자에게 “중국 공산당이 중국인의 관심을 국내보다는 일본 쪽으로 돌리기 위한 하나의 정책이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말을 들으니, 중국인의 반일(反日)에는 중국 공산당의 어떤 정책적인 의도가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중국 공산당 자체가 가진 문제와 모순, 그리고 중국인의 각종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수시로 일본이나 외국 쪽으로 문제를 돌리는 방식이다.
이외로 필자가 10여년 동안의 중국의 유학 생활에서 여러 계층의 중국인을 많이 만나면서 느낀 또 하나의 사실은 중국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필자가 기억하는 것은 일본인을 얕잡아 보는 말인 ‘시아오르번(小日本)’이란 말이었다. 이 역시 중국 공산당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하고, 또 중국인에 대한 세뇌와 교육의 일환으로 본다.
또 한 번은 이런 일화가 있었다. 필자와 같이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던 일본인 친구가 2011년 7월쯤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동안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필자에게 매우 고급스러운 일본의 남자 기모노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이 기모노를 필자가 아는 중국인에게 “당신이 한 번 입으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라고 하면서 한번 입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 중국인은 필자가 준 일본의 기모노를 입은 후에 필자에게 “내가 한지엔(漢奸)과 뭐 다를 바가 있나?”라고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옷을 벗어 나에게 돌려주었다. 즉 자신이 일본의 기모노를 입는 순간에 바로 일본의 간첩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그만큼 중국인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반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끝으로 필자가 10여년 정도 베이징에 유학하면서 놀란 것은 베이징의 4대 명문대라고 일컫는 북청인사(北淸人師), 즉 북경대·청화대·중국인민대·북경사범대에 일본인 유학생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특히 학사·석사·박사의 학위과정을 하는 일본인은 진짜 드물었다. 간혹 필자의 눈에 띄었던 일본인은 6개월∼2년의 어학연수생이나 1∼2년의 연구과정생이 전부였다. 상대적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 중에 한국인이 약 70∼80%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던 점은 특별히 기억할 만하였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일본보다 한국에 친중(親中) 세력이 더 많다는 하나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 우익대사: 독립적 연구가(Independent Resear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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