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스님은 죄가 없다! -
나는 범신론(汎神論)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보면 예수의 거룩한 희생에 두 손을 모으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의 자비에 108배를 올리는 그런 사람이다.
동네 당골네가 생일이면 찾아와 오래도록 복을 빌어주던 정을 잊지 못하여, 그 분 가신 저승을 향하여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바라는 사람이다.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에 풀이 돋으면 풀을 베고, 때가 되면 제물을 차려서 술 한 잔 올리고 있다.
구마라습 이야기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깊은 뜻을 알았고, 구법(求法)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허무가 가리키는 착함의 진리를 온몸으로 수용하였다.
나는 이렇게 불가에 인연을 맺고 부처의 자비를 따라 삶을 수행해온 지, 벌써 1갑을 지났다.
그동안 불교 들어온 지, 2000년이 지나는 이 땅에는 수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있었고, 극락을 향하는 독경소리 끊이지 않았다. 우리의 스님들은 국난을 맞을 때마다 목숨을 바쳤으며, 평화로울 때는 농사를 짓고 탁발을 하며, 중생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다.
시물(施物)을 아껴, 누더기옷으로도 드높은 도를 이루었던 분이 어디 한두 분이랴. 한겨울 문둥이여자를 방으로 불러들여 죽지않도록 보살핀 경허스님의 이야기. 왜국으로 가서 우리 백성을 구해온 사명스님. 내 어찌 서산을 모르겠으며 원효를 모르리.
인간사 고뇌(苦惱)의 경계를 벗어나, 산짐승 한 끼 식사로 육신(肉身)을 주고 가는 그 허허로움을 어찌 잊을 것인가.
해인사 주지스님의 파계(破戒)에 분노하는 불자들이 많은 줄 안다. 그러나 부처님은 죄가 없다. 아무리 미륵불의 머리에서 관을 끌어내린다 해도 미륵은 죄가 없다. 제아무리 마구니(魔軍)들이 절집을 점령한다 해도, 부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지난 여름철 살생의 죄를 범하지 않으려 하안거에 들었던 우리 스님은 지금은 동안거 중이다. 그리하여 미륵은 반가(半跏)한 채 사유(思惟) 중이시다.
오해하지 마라. 우리 스님은 죄가 없다. 부디 욕하지 말라. 죄는 이승을 살아가는 저들에게 있을 뿐이다.
우리 스님, 밝고 맑은 청정(淸淨)의 손끝에서 피어올린 1000년 침향의 연기 한 자락. 두 볼에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은 세속의 홍진(紅塵)에 더러워진 이 몸 씻어주시련가. 우리 스님 계시는 정토(淨土)에는 오늘도 꽃비 내릴 것이네.
2023. 1. 31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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