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多夕) 유영모의 함석헌 질책
김도올(김용옥)씨가 대만엔가 유학하고 돌아오면서
" 내 평생에 다석 유영모 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럴만한 것이, 다석 선생님의 구도자적 열정과 금욕적 생활,톡특한 사변 등이 식자의 호기심을 유발할 소지가 적지 않았었던 게 사실이다.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고 하루 한끼만 잡수시면서 나무 판 위에서 참선을 하고 부인과는 해혼을 한 채 정진하셨던 모습은 불교의 성철 스님을 방불케 했다.
필자는 어릴 때 다석 선생님을 만나 볼 기회가 3 회 있었는데 한번은 6,7여명이 모여 세검정 댁에 가서 말씀을 좀 듣고 사진 몇장 찍고 나왔던 것인데, 두번째의 만남이 기억에 생생하다.
종로에 있는 와이엠시에이 건물 2층에서였다. 선생님은 이곳에서 종종 강의를 하시곤 했었다.
필자가 강의를 청취한 날은 7,8명 정도가 모여 말씀을 듣던 날인데, 그 때는 필자가 어려서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몇년전 타계하신 문정길 목사님과 이화여대에서 평생 강의 하시고 채플을 이끄신 김흥호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나 싶다.
흰 두루마기에 단구이신 몸으로 스님처럼은 아니지만 삭발을 하셨고 책을 넣고 다니시는 보자기형 가방을 하나 들고 오셨는데 선생님은 먼 거리도 차를 안 타시고 걷기만 하신분으로도 유명하셨다.
선생님께서 천천히 말씀 하시다가
" 여기 '씨알의 소리'라는 책을 가지고 온 사람 있나 ?"
하셨다. 당시는 장준하 선생님의 '사상계'와 함석헌 선생님의 월간지 '씨알의 소리 ' 는 유명 했었다.
어느 분이 그 책을 드렸다. 선생님이 좀 이렇게 들여다 보시더니 그 책을 휙 ! 바닥에 집어던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서 하시는 말씀이
" 뭐, 간디 ? 마하트마 간디를 향해 얼굴도 못 들 놈이 간디를 팔아 먹어 ?"
하고 대노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그 책의 그 달 특집이 '간디'에 관한 것이였고 그 주제를 보시고 글을 쓰신 함석헌 선생님을 향해 분노하신 것이었다.
아니 ! 한국 최고의 지성이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시며 많은 국민이 존경하는 함석헌 선생님을 이렇게 호통 치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고,
함선생님을 존경하던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밤잠을 설쳤다. 도저히 잠이 안 온다 아니! 저 유명한 함선생님을 이놈 저놈! 하시다니 ?
날이 밝자 첫 버스를 타고 세검정 다석 선생님을 향해 달려갔다.
선생님은 평소 하시는대로 판자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계셨고 말씀하시는 중 한번도 자세를 흐트리시거나 움직이지 않으시고 시종일관 하셨다.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
" 선생님, 함 선생님의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셨습니까 ?"
선생님께서 한참 계시다 답변하시기를,
" 어떤 문제에 관하여 한 사람은 생각이 하늘과 같이 높고 한 사람은 생각이 바다 속 같이 깊어서 마음을 같이 할 수가 없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궁금증이 더 해서 계속 그게 뭔데 그러시냐고 캐물었다.
" 사내가 결혼을 했으면 제 아내만 알아야지! ..."
호통하셨다.
함선생님의 자유분방하신 스타일에 대한 질책이셨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함옹의 에로티즘,여성편력은 유별났다고 알려진다.
유명하기로는 함옹의 외조카가 약혼녀를 외삼촌 함옹께 인사시켰더니 함옹이 그 여인을 애인으로 삼아버렸던 사건이었다.
외조카가 아무리 설득해도 여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카는 너무 억울해 외삼촌의 여성편력을 책으로 내게 된다.
이 책은 외조카의 글 쏨씨가 수려해 재미있는 에러물을 읽는 것 같이 흥미롭다. 외조카는 자신이 수집한 내용들을 꼼꼼히 정리해 출판한 건데 ,
함옹 주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함옹은 당시 소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란 것의 대부요 상징처럼 됐었기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함옹을 호위하는 운동권 세력에서는 즉각 이 책을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조작품이라고 발표, 책을 수집, 폐기해나갔다.
당시가 유신시대지만 함옹은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국내외에 유명하기도 하고 한국의 간디라 알려져 정권에서도 함부로 못하는 위치였기에 그를 둘러싼 많은 재야 운동권 세력 또한 만만치 않은 세를 가지고 있었다. 장준하 김동길 계훈제 문익환 안병무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이 그를 에워싼다.
외조카는 함옹을 둘러싼 재야운동권이 중정프락치(중앙정보부 첩자)로 몰아 심한 고통을 준 결과 폐인처럼 됐다는 말이 돌았었다.(현재 어디 계신지?)
4년전 세상 떠나신 문정길 목사님은 함옹과 그 주변을 익히 아시는 분이셨다.
함옹의 열열한 제자이고 호위무사셨다. 나는 목사님께 이책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그 목사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 그 외조카의 글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목숨을 걸고 쓴 글이다" 라고 하셨다.
그 책의 제목에는
《나는 빈들에 외치는 소리
한국의 간디 거짓선지자》
이렇게 됐고 머릿말에는
《 외삼촌 함옹께
열번 스므번 더 생각해 본 끝에 저는 이책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 . . 어떤 진상을 은폐하고 얻는 일시적인 평안보다는 밝힌 다음에 겪는 다소의 충격이나 진통이 훨씬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 책을 세상에 내 놓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 . 》 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함옹에 대한 좋은 환상은 동강 나버린다. 보편적 남성의 에로티즘적 욕망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전혀 예상 밖이다.
아마 함옹의 스승 다석 유영모 선생님은 이런 면들을 아시고 엄한 책망을 하셨을 것이다.
필자가 한신대 1학년 때 장준하 선생님을 총학 주최 강연회 강사로 교섭차 정동의 젠센기념관엘 갔었는데 함옹의 73회 생신 축하 모임에 장선생님 계시단 말 듣고 갔었다.
김대중 김영삼 장준하 . . 유명 재야 인사들이 총 집결했는데
함옹께서 답사 중
" 나는 우리 선생님 앞에서 이런 잔치상을 받을 주제가 못되는 죄인입 니다 " 하시면서 손으로 가슴을 서너번 치셨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유선생과 함옹은 10여세 정도 차이신데도 평소 함옹이 유선생님께 대단한 존경은 각별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두려운 분은 다석 선생님이란 매너셨다.
두 분은 걸출한 분들이셨고 함옹은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이셨다.하지만 두분 모두 성경신앙과 대립된 길을 가신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신앙을 부인하는 점과 자력구원,성경계시에 대한 불신,범신적 자아관이나 혼합적 종교관 등은 성경신앙과 공존 불가다.
아울러 우리가 유념해야할 부분은 함옹 중심의 재야 운동권의 소위 민주화란 투쟁을 이용, 진지를 구축해 온 좌파들의 음모다 .함옹은 물론 공산주이나 좌파라고 분류될 분은 아니었지만 좌빨들이 그분을 진지구축 기회로 악용 해 온 점 또한 유념해야할 부분이다 . 김수환 추기경도 마찬가지로 이용당한 아이콘이었다.
2013.05.23.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