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 말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말은 생각한 바를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이며 동물도 그들은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을 관찰하면 그들이 의사소통한다는 것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인간이 동물의 의사소통을 학습하지 않아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것뿐이다. 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도 외국어를 학습하지 않으면 그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26일(현지 시각) 인디안 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의 마하캄강에서 한 악어가 실종된 아이의 시신을 등에 얹고 헤엄치는 모습이 발견돼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악어는 구조선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아이 시신을 놓고 떠난다. 구조대는 악어가 찾아준 아이 시신을 들어 올려 배로 옮긴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위자야의 시신에는 악어에 물린 자국 등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 당국 관계자는 “아이 시신에는 어떠한 손상도 없었다”라며 “우리가 아이를 찾는 데 악어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위 조선 닷컴 기사는 지면상 축약한 것이다.
1) 사람만이 말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공부 많이 한 학자들은 말한다.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위 기사를 근거로 말해 보고자 한다.
2) 말이란 뇌로 생각한 바를 나 이외의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인간만이 말하는 동물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런데 위 신문기사의 핵심 내용은
3) 악어가 실종된 아이를 등에 업고 아이를 찾는 인간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위의 글 1), 3)은 주장이 서로 다르다. 1)의 주장이 맞다 는 조건에서만 성립 가능한 주장이 2)다.
위 1)~3)을 알기 쉽도록 정리하면 말은 생각한 바를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이며 동물도 그들은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을 관찰하면 그들이 의사소통한다는 것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인간이 동물의 의사소통을 학습하지 않아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것뿐이다. 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도 외국어를 학습하지 않으면 그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식물의 예에서도 우리가 아직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들도 감각기능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음악 소리를 들려주면 더 잘 자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을 포함해서 이처럼 자연은 참 신비한 것이 많다. 우리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니 하면서 우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연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인간과 동식물 광물이나 미생물도 모두 자연의 일부로 대등하게 필요한 존재로 보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며 불필요한 것을 세상에 내놓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요즘은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반려견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여러 종류의 동물을 가정에서 키우는 것을 우리는 TV 화면 등을 통해 종종 보고 있다.
반려견을 사랑해서 집안에서 키운다고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인간 중심의 관점이고 자연의 관점에서는 각 존재를 각각 구분 지었듯이 그들 정체성에 맞게 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자연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을 필요한 대등한 존재로 대한다고 해도 인간과 동식물은
사는 공간과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본다. 사람은 사람답게 동식물은 그들답게 사는 것을 그들 동식물도 자연도 원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과 동식물이 하는 말이 서로 다르듯이.
2023.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