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과 4.15부정선거
모든 학문은 처음에 가설로 태어난다. 가설로 태어나 '증명'을 획득했을 때 법칙이 되고 학문이 되어, 세상을 뒤흔드는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이다. 탄생했을 때도 논란이 되었고 지금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진화론은 종종 창조론자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고, 세계를 지배하는 기독교 세력이 존재하는 한 그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학문에는 진화론이 스며들지 않은 학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진화법칙을 응용하여 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고, 이것은 공산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다윈의 생물에 관한 진화론은 "진화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분화하여 엄연하게 학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초창기부터 경제학(Economics)의 막스, 사회학(sociology)의 창시자인 흄(David Hume)과 스펜서(Spencer), 지질학의 라이엘, 식물학의 아서 그레이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 후, 인류학(anthropology), 심리학(psychology), 교육학(pedagogy), 철학(philosophy), 신학(theology), 문학(literature) 등의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 진화론이 학문에 끼친 영향 (임번삼)>
참과 거짓을 떠나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스토리는 매혹적이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든 다음 일곱째 날에는 쉬었다는 천지창조의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이런 감동은 진화론에도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는 사촌이었다. 공동의 조상이었던 유인원 무리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와 인간으로의 진화의 길을 걸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인원 무리가 살던 숲이 환경의 영향으로 사라졌다. 숲이 사라진 초원에서 그들은 포식자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고, 식물이 사라진 초원에서 초식 대신 닥치는 대로 잡식을 해야 했다. 생존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고 불을 이용하고 서로 협동해야 했다. 사족보행은 직립보행으로, 두개골은 커지면서 뇌도 커졌다. 펼쳐진 엉덩이와 비대해진 두개골은 진화의 강력한 증거였다. 숲에서 안락한 삶을 사는 유인원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생존에 몸부림치던 유인원 무리는 생존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갔다.
창조론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당연히 전혀 없다. 일부 창조론자들은 에덴동산의 위치가 이라크 남부지역에 실재했고,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던 곳이 터키의 아라랏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면서 그들이 지목하는 에덴동산의 지역에서 사과가 생산되지 않는 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대체로 창조론자들도 성경의 창세기를 동화라고 인정한다. 다만 진화론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이 존재해서 문제일 뿐이다.
진화론에 대해 대척적인 세력이 가장 많은 곳이 미국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과목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을 꼽는 여론은 7:3 정도이다. 창조론자들은 일부 소수(진화론 과학자들)의 주장을 다수(기독교인)에게 주입하려 한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창조론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것에는 학부모 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선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의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종교가 지배 이념이 되는 국가는 신이 다스리는 나라다. 제정일치의 신정국가로 대표적인 것이 IS(이슬람국가)다. 중세 시대의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 사냥은 종교가 이념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종교는 신도들의 가슴에 있을 때 인간을 이롭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정치에 흡입되거나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을 때 극한적인 반대편에서 인간성을 말살하던 것이 종교였다.
'창조론과 4.15부정선거' 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두 신도의 주장이 비슷한 면이 있어서다. 그 주장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그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창조론은 신도들의 독실한 신앙심에 터를 잡아, 4.15 부정선거는 좌익에 대한 증오심에 바탕을 두고, 두 개의 주장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반대를 거두라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론을 신뢰한다고 해서 창조주의 권위가 훼손될 일은 아니다. 종교에서 창조주는 언제나 신성하기 때문이다. 그 차원에서 창조론을 주장하는 것은 평화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부 세력은 학문의 경지를 넘어 진리의 자리를 탐내고, 그것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타도하겠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독극물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맹목의 세상을 불러올 수 있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