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쌀 한 되로 풀어보는 빨갱이론
어느 동네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구석이 하나 있었다,
나무껍질도 다 벗겨 먹고, 풀뿌리도 다 캐어 먹어
먹을 것을 구경해 본지 그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피골이 상접한 식구들은 눈깔만 똘망똘망 거리면서
며칠 몇 날을 굶은 채 파란 하늘만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때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피로하고 허기진 얼굴로 집안으로 들어서며
굶주린 식구들 앞으로 보리쌀 한 되를 풀어놓았다.
보리쌀 한 되로 따스한 밥을 지어 온 식구들 옹기종기 둘러앉아
아무 생각 없이 골고루 배불리 잘 먹었다면 이것은 좌파다.
보리쌀 반 되는 밥 지어서 약간은 모자라는 양이지만 식구들끼리 나눠 먹고,
보리쌀 반 되는 내일 밭에다 씨 뿌리기 위하여 남겨 놓았다면
이것은 우파다.
아들놈 중의 하나가 우기기를
약간의 보리쌀로만 밥 지어 먹어 배고프더라도 참고,
나머지는 전부 밭에다 씨 뿌려서 수확량을 더 늘리자고 우긴다면
이것은 극우다.
아들놈 중의 하나가 아버지에게 대들며 보리쌀 한 되 말고 아버지가 한 되를
더 숨겨놓았다며 그것마저 밥 지어서 보리밥 곱배기로 먹어 보자며
아버지 멱살을 잡고 없는 보리쌀을 내놓으라며 윽박 지른다면
이것은 극좌다.
아들놈 중의 하나가 보리쌀 한 되를 등 뒤로 숨기며 말하기를,
이것을 수령님에게 바치면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보리쌀에다가
침 한 번 퇘! 뱉으면 보리쌀 한 되가 보리쌀 백 섬으로 바뀌니
이것을 수령님에게 바쳐야 한다며 식구들을 굶겼다면
이것은 빨갱이이다.
남한 땅에는 가게 폐업, 신용불량, 노숙자가 넘쳐나는데
불우이웃 돕기 한다면서 수령에게 퍼주기를 계속한다면
이것은 구제 불능 빨갱이이다.
남한에는 전기세를 못 낸 여고생이 촛불 켜고 공부하다 화재로 사망했는데
수령님에게로 전력을 보내야 한다며 우긴다면
이것은 고압 벼락 맞을 빨갱이이다.
강정구가 학문 운운하며 6.25는 위대한 통일 전쟁이라는 것이
실제는 수령 교과서를 베낀 것이라면
그놈은 양아치 사기꾼 빨갱이이다.
강정구의 주장에는 동의를 할 수 없지만
사법 처리에는 반대를 한다는 인간들은
파란 탈을 쓴 빨갱이이다.
강정구를 그냥 놔두자는 인간들은 예비 빨갱이이고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려는 놈들은 오리지널 빨갱이이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지 사어가 되어버렸다,
빨갱이들은 엄연히 우리들 곁에 존재하는데 그들에게 붙여줘야 할
빨갱이라는 단어는 분실되어 버렸다. 이제 빨갱이라는 단어를 살려내자.
국어사전에서 먼지 쌓인 그것을 찾아내어 잊어버린 구호를 상기하자.
-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뿐이다 -
비바람
2005.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