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의 해자(垓子)를 보다
12월 초에 일본을 다녀왔다. 순전히 언론과 안사람 때문이었다. 아내는 평소에 일본 여행을 꿈꾸었고 마침 언론에서는 엔화가 폭락한다고 부추겼다. 게다가 '노재팬(NOJAPAN)'을 외치며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무차별 친일파 공격을 펼치던 문씨네 일당을 생각하니 일부러라도 일본에 가고 싶어졌다. 그럼 나도 이제 본격적인 친일파가 되는 건가.
겨울의 일본, 우리는 둘 다 일본이 처음이었다. 나는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 등장하는 니가타의 온천을 떠올렸고, 아내는 영화 '러브레터'에 등장하는 눈 덮인 홋카이도 들판의 "오겡끼데스까"를 떠올렸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사카였다. 아내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이유로 패키지여행을 계약했고, 일본의 행선지는 우리의 바램과는 관계가 없었다.
오사카라도 괜찮았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몇 년 만의 해외여행이었고, 오사카는 제주 사람에게는 특별한 도시였다. 오사카는 일제시대에 제주 사람들이 '재팬드림'을 꿈꾸며 기미가요마루호를 타고 도착했던 곳이다. 당시 약 3만 명, 제주도 인구의 20%가 오사카를 향해 현해탄을 건너갔다. 지금도 오사카에는 제주 출신 사람들이 많다.
오사카는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했던 영화 '피와 뼈'의 모델이었던 제주 사람 김준평의 무대이기도 했다. 제주4.3폭동 때는 난리를 피해 제주 사람들이 대거 도망간 곳도 오사카였으며, 60년대의 제주도에는 한 집 건너 한집마다 일본으로 돈 벌러 간 밀항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돈 벌러 갔던 곳도 오사카였다. 문재인 정권의 친일파 논리라면 제주도는 예로부터 친일파의 고장이었던 셈이다.
오사카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오사카城이다. 오사카성은 일본 3대 성 중 하나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패권을 잡고 건축한 요새이자 성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성주가 된 그의 17살 아들 토요토미 히데요리와, 일본을 통일하게 될 71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5년 오사카성에서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마지막 전투를 치르게 된다.
옛날에는 책 좀 읽는다는 식자의 집 서재에는 '대망(大望)'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소설전집이 꽂혀 있곤 했다. 대망은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로 원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이다. 소설은 일본 전국시대의 3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전국시대의 혼란과 전쟁을 헤쳐나가며 일본 통일 과정을 그려낸 대하소설이다. 지금은 20권짜리로 출간되는 모양인데, 나는 고1 때 3분의 1 정도를 읽고 아직까지 완독하지 못했다.
전국시대 3 영웅은 각자 특유의 리더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 사람은 그 성격에 걸맞게, 울지 않는 두견새는 베어버린다,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든다,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영웅들이 활약하는 전국시대의 마지막 무대가 오사카성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오사카성의 해자를 보고 싶었다. 오사카성은 이중의 해자를 두르고 거대한 성벽으로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오사카성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성의 입구가 집 채만한 바윗돌들로 빈틈없이 꽉 물려진 채 축조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전국에서 수송해온 바윗돌이라고 한다. 공원의 중심에는 8층 높이의 천수각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고, 산책로에는 간간이 조깅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우리 뒤로 수학여행 온 중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도 많았다.
오사카성의 해자는 역시나 대단했다. 해자는 성의 방어를 위해 성의 주변으로 파놓은 연못이다. 해자는 성을 이중으로 둘러싸며 외성과 내성을 구분한다. 해자는 유람선을 운용할 정도로 넓고, 해자의 푸른 물 위로 다시 거대한 성벽이 절벽처럼 서있다. 도쿠가와 측은 농성하는 히데요리의 성을 좀처럼 함락시키지 못했다. 드넓은 해자를 두 개나 건너고 다시 성벽을 기어 올라가야 했으니, 오사카성은 난공불락이었다.
오사카성을 함락시킨 것은 '평화협상'이었다. 토요토미 측에 죄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과 체면상 외성의 해자를 메워준다는 조건이 교환되고 화친이 성립되었다. 히데요리는 이에야스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중에 협상을 무시해버리겠다는 의중도 있었다. 화친이 성립되자 이에야스는 병력을 동원하여 순식간에 외성과 내성의 해자까지 메워버렸다.
얼마간의 평화가 지나가고 다시 전운이 감돌았다. 이번의 전투는 저번의 전투와 달랐다. 해자가 메워진 오사카성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순식간에 성은 함락되었고, 천수각은 불타올랐다. 그 불길 아래에서 히데요리와 모친은 할복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은 멸문당했다. 히데요리는 이에야스의 손녀사위였다. 그러나 일본의 전국시대는 한 명의 승리자만을 원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훗날 화친조약을 어겼다는 비난이 나오자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 적장의 말을 그대로 믿는 바보는 죽거나 멸문되어 마땅하다.”
오사카성의 해자 앞에 서면 이에야스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적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바보는 바로 우리가 아니었던가. 김정은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데에도 불구하고 평화 운운 종전선언 운운하며 추파를 보내고 김정은에게 매달렸던 멍청이는 우리가 아니었나. 저 멍청이 문재인이 우리 지도자가 아니었나. 문재인만 할복하여 끝나면 다행일 테지만 불타오르는 천수각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미래의 모습이 아니던가.
오사카성이나 저녁의 도톤보리 거리에도 한국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오사카 공항 입국장에도 한국 사람들로 만원이었지만 인천공항 입국장도 북적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여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 많던 '노재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민들은 모두 '예스재팬'이었는데 문재인과 대깨문 아줌마 서너이만이 모여 '노재팬'을 외쳤던 모양이다. 대한민국과는 거꾸로 달리던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재앙이었다.
일본 여행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본의 주택가 골목길이었다. 깨끗하다는 사실은 누차 들었던 터였지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여기만 그런가 해서 두루두루 주택가 골목길을 걸어보았다. 아담한 2층 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붙어있는 골목길마다 불법 주차된 차량이나 휴지 조각 하나 굴러다니지 않았다. 심지어 낙엽조차 한 장 없었다. 이불을 펴고 눕고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이런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