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가신 두 분의 애국자
한분은 송태성 선생님이신데 60대 후반의 진성 애국자셨다. 육군 준위 출신으로 인품이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집사님이셨다.
충남의 대천에서 태극기 집회에 나오시는데 청와대 앞 집회에서는 아주 침낭을 가지고 와서 숙식을 하며 월요일서 토요일 까지 헌신하셨다. 그분의 소망은 한 목숨 대한민국에 바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청와대 앞 집회 나갈 때면 그분 옆자리서 함께 하곤 했다 송선생님이 충남으로 내려가신 때는 전화 통화를 하곤 했는데 당시 그분은 <순국결사대>에 가입한 상태였다.
그 결사대는 조국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대한을 지켜내기 위해 생명을 조국에 바치겠다고 결심한 분들의 결사체였으며 전교주가 만들고 이은재님이 거기에 대장이 됐었다.
대원들은 모두 유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광화문 집회 때마다 질서 유지와 안내를 맡곤 하면서 언제든 목숨 바치겠다는 결의에 충일 됐었다.
송선생님은 나중 이 순국결사대를 만들어 놓기만 하고 방치하는데 회의를 갖게 된다. 유서를 받아 놓고 한두번 모이는 듯 하다가 흐지부지 용두사미로 아무 내용이 없는데 실망하게 되는 데다가,
나중 지도부의 이런저런 추문들마져 발생하자 큰 낙심을 하신다. 어떻게 순국 결사대라 해 놓고 이런 일들이 있냐며 탄식 하신다.
이렇게 전교주 리더쉽은 실실허허가 빈번하다. 거창한 구호와 장광설이 실실한 반면 내면은 허허하기 십상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북한에 넘어갈뻔 한 것을 전교주쪽이 막아냈다고 하는가 하면 교주가 한달에 3경의 돈을 벌겠다고도 한다. 이 말들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교주가 한달에 3경을 번다? 대표 실실허허 아닐까?
송선생님은 평소에 여러 지병이 있어 부인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계속 광화문 애국 온동에 헌신하다가 결국 지병 악화로 생을 마감하셨다.
안티다원이 대천의 상가를 조문가서 보니까 순국결사대원이 사망 했건만 관련한 조화나 조문객도 보이지 않았다.
송선생님의 애국 투혼은 가히 우리시대 애국 민초의 모델이셨건만 알아주는 이 없이 외롭게 떠나셨다.
또 한 분은 엄경자 권사님이신데 이분은 45년생이시고 평생 독신으로 사셨으며 기도의 여왕이셨다. 백운대 800고지 정상에서 홀로 철야기도를 빈번히 하는 분이셨다.
그 높고 깊은 산중에 남자도 힘들고 두려운데 여성이심에도. . . 그 담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이분은 광화문 운동이 생기면서 전광훈교에 몰입하게 된다. 그분의 나라를 위한 기도의 애국심이 전교주와 매칭돼 열심과 충성이 대단 했다.
본교회 목사님이 주사파와 싸우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전광훈교에 헌신한 그는 어느 새 말투 손짓 모션까지 모두 전교주를 닮아갔다.
무의식 중 나오는 말과 모션을 보면 영낙없는 전교주 스타일이다. 전교주 시키는 대로 천만인 서명 온 앱 등 불철주야 뛰셨다.
그 권사님이 한동안 소식 끊겼다가 연락이 왔는데 암으로 입원해 수술 받았다고 하면서 독신의 외로움을 토로한다.
평생 독신이라 자식도 없고 형제간들도 나이 먹다보니 모두 세상 떠나버려 수술하는 데 보증서 줄 사람 마져 없었다며 가족 없는 슬픔을 토로하시더니 다시 소식이 끊겼다.
소식을 알 수 없어 간신히 그분이 속했던 본교회로 연락해봤더니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고만 했다.
정황을 대강 들어보니까 일생 섬기던 본교회 떠나 전광훈 교에 올인 하다 보니 본교회서도 잊혀진 상태가 됐고 전광훈교마져 그 광풍 속 한 여인의 존재가 무슨 효용가치가 있었으랴! 결국 두 곳 모두에서 소외된 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생을 마감하셨다.
전광훈교나 광화문 리더들은 이런 민초들의 희생 잊지 않아야 한다. 앞에서 큰소리 치는 자들은 정신승리의 쾌감이라도 누리지만,
이런 민초들은 그야말로 무명인 채 헌신하고 쓰러져간 애국혼들인 것 새겨야할 것이다.
두분! 주의 나라에서 안식하소서!
2022.12.12.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