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기인괴사의 논객들이 혈풍혈우를 일으키는 무림계와 같았다. 그동안 인터넷에는 기라성 같은 논객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유성처럼 사라져 갔다. 더러는 떠나고 더러는 잊혀지고, 내킬 때 나타났다가 내키면 사라지는 것이니 애초부터 인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 안갯속으로 사라졌던 그 논객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논객넷에도 많은 논객들이 무대 뒤로 퇴장했다. 작고하신 분들도 계시고 절필하신 분들도 계시다. 논객넷에 염증을 느껴 발을 끊은 사람도 있고 관리자에게 퇴출당한 사람도 있다. 어떤 이유로 논객넷에 발을 들였거나, 어떤 이유로 퇴장한 사람들을 불문하여 그들 모두는 애국심이라는 열정을 품고 논객넷에 등장한 사람들이었다.
논객넷은 그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그들의 무대였다.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하여, 그들의 발자취를 기리기 위하여 논객열전이 만들어졌다. 논객열전에는 논객넷에 등장했던 모든 논객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논객넷의 모든 시스템은 논객들의 글쓰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그리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하여 존재하고 작동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회장은 논객들에게 글쓰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사라지는 논객을 붙잡지도 않는다. 글쓰기는 고역이다. 더욱이 논객넷 글쓰기는 용기와 더불어서 벌금을 감수하는 희생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시사 칼럼은 회장이 글을 쓰란다고 강요해서 쓰여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회장은 강요할 수 없다. 다만 회장은 멍석을 깔아놓고, 멍석을 청소하고, 푹신한 담요를 깔고 논객들이 최대한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다릴 뿐이다. 떠나간 논객들이 운기조식을 하고, 다시 뜨거운 열정이 가슴에 차올라 밖으로 퍼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때, 논객들은 다시 논객넷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논객넷에서 추방당한 논객들의 대부분의 이유는 하나다. 논객넷에서 논객은 모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단 하나만 빼고서다. 관리자에게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단 하나, 대표 논객에게 욕질을 했을 때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즉시 사과를 해야 한다. 관리자의 사과 명령에 불응하거나, 비속어 사용이 반복될 때는 관리자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범법자를 즉시 노짱에게로 보내버린다.
이 정책은 논객넷 출범 시부터 적용하던 정책이다. 논객들이 편하게 글을 쓰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지금 판단해보면 논객들이 너무 과잉보호가 되어 야성을 잃어버리고, 새장 안의 새처럼 연약한 논객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악플 하나, 댓글 하나에도 견디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고 줄행랑치는 허약한 논객을 만든 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빠돌이 논객들도 수명이 짧다. 애초에 목적이 특정 정치인의 당선이 목적이었기에 목적을 달성하거나, 정치인이 떠났을 때 그들도 둥지를 뜨게 된다. 목표를 상실했거나 달성했기 때문이다. 독서량이 부족한 논객들도 글을 오래 쓸 수 없다. 속에 것을 퍼올리다 보니 우물이 메말라 소재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논객은 잔잔한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와 같다. 잔잔하고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 백조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맹렬하게 발을 휘젓고 있다. 논객도 그와 같다. 심할 경우 칼럼 한 편을 쓰기 위해서 논객은 몇 권의 저서를 읽어야 하는 수도 있다. 독서하고 공부하자. 공부하지 않으면 논객의 수명은 끝날 수 있다. 나라는 기울어지고 빨갱이들은 횡행하고, 가슴에는 분노가 차오르고 할 말은 많은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지 않은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