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은 논리꾼이자 선동꾼이다. 논객이 쓴 글을 논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글에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논설에 논리가 없다면 사기꾼이나 협잡꾼이 될 수 있다. 논리가 없다면 독자의 가슴을 흔들 수 없고 설득시킬 수 없다. 그래서 뛰어난 논객은 뛰어난 선동꾼이 될 수 있다. 뛰어난 논객은 나라를 흔들 수 있고, 역사를 흔들 수 있다.
논객이나 논설의 '논'자는 논리의 '논'자와 마찬가지로 논할 논(論)자를 쓴다. 논리는 사물이나 현상의 이치,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는 법칙, 또는 힘이라 일컬을 수 있다. 글에서 논리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닭을 이야기하면서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계란에서 병아리를 거쳐 닭을 이끌어내는 것이 논리다. 논리는 과학이자 법칙이고, 상식의 연장이자 연결이다.
논객넷의 기치는 종북척결이다. 논객넷의 논객들은 종북척결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죽창이라도 들고 빨갱이를 찾아 나서야 할까. 아니라 매일매일 빨갱이 때려잡자를 외치고 있노라면 종북척결은 자동으로 오는 걸까. 둘 다 틀렸다. 논객들의 임무는 국민들을 깨우는 것이다. 논객은 나라를 지키는 세퍼트다. 도둑이 들었을 때 검은 밤을 짖어 주인을 깨우는 것. 사자후는 아니더라도 논리와 팩트로서 독자들의 굳은 가슴을 흔들어 콘크리트처럼 굳어있는 고정관념과 무지를 깨트리는 것. 이것이 선동이다.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처럼 거짓말로 민중을 선동하자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가슴을 흔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오로지 팩트여야 한다. 조원진에게 징역을 구형한 검사들이 '씨발새끼'들이기 위해서는 조원진의 죄가 무엇이며, 그와 같은 죄로 다른 사람들은 조원진보다 가벼운 죄를 받았으며, 조원진이가 법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논객넷의 어느 논설에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 달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글쓴이 논객은 다른 사이트에 링크를 걸어주었다. 다른 사이트에 가서 공부를 한 다음에 읽어야 이해가 될 수 있는 논설은 논설이 아니다. 논설은 그 한 편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 논설 하나에 기승전결과 사례들이 들어 있어서 그 한편의 논설로 논객이 독자들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논객넷에는 4.15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글들도 많다. 대문에 '4.15부정선거' 간판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4.15부정선거의 팩트를 제시해 주는 글은 없었다. 다른 사이트에 가서 공부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사진들, 그러나 그 사진이 언제 어디적 어느 선거사무소의 사진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곳은 없었다. 논객은 4.15부정선거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 사례와 증거를 제시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국민들이 먼저 4.15부정선거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조원진의 억울한 사례를 제시 못하고 팩트도 없이, 독자들에게 논객이 외치는 욕만 들으라는 것은 독자 모독이다. 그 억울함의 구체적인 팩트와 사례가 제시되었을 때 독자들이 먼저 검사들을 향해 욕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게 논객의 할 일이다. 그런데 팩트는 제시 못하고 개새끼 씨발새끼만을 남발하는 것은 스스로 무능력한 논객이라는 자백과도 같다. 논객은 상대방에게 직접 욕을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상대방에게 욕을 할 수 있도록 선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와 팩트를 제시하여 국민들의 가슴을 먼저 흔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논객넷 논객들의 목표는 정해졌다. 종북척결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에 만연한 종북주의와, 좌익 정권의 종북 사례와 반역적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제시해 주는 것이다. 제주4.3, 광주5.18, 문재인 정권의 수많은 정책들이 그 사례들에 해당한다. 종북척결에 쓰자고 논객넷 멍석을 깔아놓았더니 웬걸, 보수 인사만 때려잡는 논객도 있다. 공부가 부족하고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부하자, 공부해서 남 주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