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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책 - 혁명의 길, 5.16도로 |
작성자: 비바람 |
조회: 4776 등록일: 2022-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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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길, 5.16도로 5.16도로는 한라산 동쪽 허리 800여 고지를 넘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도로다. 타원형의 제주도를 양분하며 남북으로 이어지는 5.16도로는 한라산 중턱을 넘어가는 도로답게 도로는 구불거리지만, 그에 걸맞게 계절에 따라 한라산의 풍광을 맛볼 수 있다. 숲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도로 중 하나로 꼽히는 숲 터널을 볼 수 있고, 겨울에는 눈덮힌 설국을 만끽할 수 있다. 5.16도로의 길이는 약 45km라고 한다. 5.16도로의 양쪽 종점을 계속 연장하면 연장선의 종점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바닷가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5.16도로의 양쪽 기점은 어디일까. 이 부분에서는 제주도민들이나 공무원들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주도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연결된 도로에서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5.16도로로 규정해야 하는지는 실상은 필요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5.16도로에 부여된 행정상 명칭은 ‘지방도 제1131호’로 되어 있다. 지방도 1131호의 기점은 제주시 이도이동 남문 사거리와 서귀포시 토평동 비석거리 교차로로 되어 있다. 5.16도로의 기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제주시 중앙로터리에서 서귀포시 1호 광장, 또는 서귀포시 천지동 교차로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5.16도로의 명칭은 공모를 통해 뽑힌 명칭으로서 5.16도로라는 명칭은 제주도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애초의 명칭은 '제주시 서귀포 횡단도로'로 불렀고, 나중에 만들어진 제2횡단도로와 구별하기 위해서 '제1횡단도로'로 불려 지기도 했다. 제1횡단도로가 한라산 중턱 동쪽을 넘어간다면 제2횡단도로는 한라산 중턱 서쪽을 넘어간다. 5.16혁명이 일어났을 때 제주도는 거지 도둑 대문이 없는 삼무의 섬이 아니라 길과 물과 먹을 것이 없는 삼무의 섬이었다. 제주도는 박정희가 사랑하던 섬이었다. 박정희가 오기 전까지 제주도는 탐라국이나 고려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5.16이 일어나고 혁명정부의 도지사는 4.3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제주의 '재건'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5.16도로의 건설을 제일 기치로 내걸었다. 5.16도로가 건설되면서 길의 혁명, 물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제주도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가는 중턱에는 1930년대에 만들었던 소로길이 있었는데 5.16도로는 이 길을 기초로 계획되었다. 당시에 성판악에서 제주시 방면으로는 소로길 형태가 남아있었고, 서귀포 방면으로는 수풀이 우거져 도로의 형태도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었다. 당시는 재정이나 장비가 열악한 시대였고, 제주도 내에 포장도로는 전무한 상태에다가, 당시 제주도의 사정은 차량 보유 대수가 300대도 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5.16도로 건설에 대한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다른 지방의 질투와 견제 속에서 중앙정부의 압도적 지원으로 현재 광양 제주시청 앞에서 5.16도로의 기공식이 열렸다. 그때가 1962년 3월 24일이었다. 5.16도로는 기공된 지 1년 7개월여 만인 1963년 10월 11일 개통식을 가졌다. 개통식은 역사적인 인파가 모인 가운데 흥분 속에서 대대적으로 치러졌다. 개통식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두 군데에서 개최됐다. 김영관 도지사는 제주시 행사 중간에 서귀포로 달려가 행사를 치렀으며,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5.16도로의 중간에서 양쪽 주민들이 만나 얼싸안고 노래를 부르며 막걸리 잔치판이 벌어졌다. 서귀포에서는 5.16도로 개통을 기념하여 극장에서는 무료입장을 시켰고 술집에서는 가격 할인이 벌어지는 등 이날 하루 제주도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5.16도로를 따라서 제주시청, 세무서, 법원이 세워졌었고, 제주대학, 산업정보대학, 제주여중고, 중앙여고, 서귀포산업고, 그리고 여러 초등학교들이 5.16도로의 젖줄을 물고 도열해 있다. 그리고 제주의료원, 산천단, 마방목지, 성판악 휴게소, 왕벚나무 자생지, 한란 자생지, 돈내코,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5.16도로에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가 숨쉬고 있다. 5.16도로는 제주도를 좌우로 이등분하는 선이며, 산북과 산남을 이어주는 대동맥 역할을 해왔다. 5.16 도로가 개통되면서 제주도의 막혔던 핏줄이 순환되기 시작했고, 수천 년 묵은 제주의 낡은 껍질을 벗겨내려는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금의 제주도의 환골탈태는 5.16도로부터 시작되었다. 5.16도로는 제주 혁명의 성소였다. 그러나 아직도 좌익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좌익언론에서는 제주도민들이 도로 이름을 바꾸자 한다고 선동한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민들은 그럴 생각이 아기 눈곱만큼도 없다. 5.16도로에는 그 구불구불한 길바닥에, 그 길가의 풀 한 포기에조차 선대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5.16도로는 불가능에 도전하던 우리들의 긍지이고 그 명칭조차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다. 5.16도로가 있어서 한라산은 더욱 아름답고, 5.16도로가 있어 제주는 더욱 아름답고 더욱 자랑스럽다. 비바람
* 아래 사진들은 인터넷 여기저기서 주어온 것이라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못함을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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