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3년 여 전 전교주가
" 하나님 까불지마 " 라는 망언 했을 때 그를 변호하느라고 교계전반에 전파했던 나의 글이다. 전교주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나에게 험담하는 사람들이 이글 보고 생각 좀 하기 바란다. 당신들이 "아멘 햘랠루야 !"외치고 헌금하곤 했겠지만 나는 그에 못지않게 전교주 살리느라 애썼다.
여태 전교주 위해 이런 글 한 줄이라도 써 주는 사람 본 적 없다. 유튜브에서 표독스런 욕질이나 할까!
그 후 교주의 반성경적 악담이 심해지고 반복되자 문제를 지적하는 것인데 그렇게 욕설하면 되겠는가? 맹목적 추종은 함께 망하는 길이다. 그리고 욕을 일삼으면 그 욕의 근원지가 교주의 입이란 걸 입증하는 격 되니까 교주를 위해서도 삼가기 바란다.--
전광훈의 정신세계
전광훈 목사는 그동안 교회 신앙의 일반적 범주에서 언급할 수 없는 용어를 남발했었다.
여러 말이 있었지만 최근에,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는 전광훈의 발언 중 최대 이슈였다. 그의 애국 열정과 파워 있는 리더쉽에 존경을 표하는 성도들 마음 속에도 "이건 좀 이상한 말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을 품고 있을 것이다.
전광훈은 여기에 대해 해명하면서 성경 호세아서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장가 들었다"라는 표현(2:19)과 아가서의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너를 찾았노라"(3:1) 등을 인용하면서 자신은 하나님과 농담하는 사이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있다고 했다. 이 부분을 가지고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까 한다.
성경 중 아가서(Song of Solomon) 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또는 성도(교회)의 영혼간 사랑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이는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신앙, 교리의 전제 없이 보자면 아가서는 전형적 남녀간의 사랑 스토리다.
이 아가서 성경이 신비주의 또는 신비적 접근에 텍스트로 종종 읽혀진다.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와 성도(교회)를 신랑신부로 표현하고(10처녀의 비유 등) 있다. 이런 배경에서 기도 중 깊은 몰입 과정에 에로스적 상념이 발생할 수 있다.
에로스(Eros)는 프로이트가 말한대로 生의 본능이며 개인의 자기 보존이나 생식에 필요한 충동이다 僞디오니소스( pseudo-Dionysus 5c말-6c초)는 에로스를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 또는 모든 존재의 궁극 원인인 神에게로 향하려는 운동으로 파악 했었다.
그는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먼저 정화의 과정을 거쳐얀다고 말한다. 신부의 영혼이 깨끗하게 돼야 한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조명이 온다고 했다. 이 조명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영혼에 빛을 준다는 의미다.
"내영혼에 햇빛 비취니 주영광 찬란해~"
찬송처럼! 다음은 합일의 관계로 승화한다고 했다.
이 합일의 단계는 경계가 없어지고 무아 또는 황홀상태 체험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베르나르 등 중세의 대가들에겐 이런 신비적 요소가 다소 있었다.
신과 합일을 향한 에로스 운동은 신의 사랑을 독점하고 내가 신에게 온전히 바쳐지는 헌신을 동반한다. 그리스도와 결혼한 신부(성도)의 영혼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에로스적 사랑의 언어를 만들어내며 엑스타시(황홀함)를 경험하기도 한다.
전광훈의 정신세계를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위에서 말한 아가서와 호세아서의 에로스적 사랑 표현을 자기의 辨明(변명)으로 삼고 있다는 점으로 봐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내밀한 사랑관계를 이룬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고 2계명에 말씀하고 있다. 질투는 사랑의 배면(背面)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이 하나님과 깊은 사랑관계를 이루면 마치 인간 남녀간 사랑처럼 독점욕과 질투도 있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이스라엘이 하나님 떠나 우상숭배 하자 음란한 고멜을 아내로 삼게하여 남편 호세아로 하여금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경험케 하셨다.
전광훈 목사의 영혼이 이런 관계여서일까 남녀간 사랑이 깊어 아무 거리감도 없고 혼연일체가 됐을 때 객관세계와 무관한 언어와 사랑 표현과 애교 등이 있게 마련이다. 주하나님은 신랑이 되고 성도의 영혼이 신부가 돼 그 사랑이 심화 됐을 경우 일상성을 떠난 특수상태를 공유케 된다 아울러 서로간의 密語(밀어)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영혼과 영적 존재와의 애정 스토리는 무속인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 세계서 이뤄지는 일들을 어둠의 영들도 모방한다. 어떤 무속여인은 자기의 신(할아버지라고 한다)과의 애정행각 때문에 남편과의 부부생활을 못하게 돼,
남편 몰래 집을 나가 셋방을 얻어 사는데 남편이 찾아와 불상을 때려부수는 일도 있었다. 그 무속인은 자기의 신이 질투하기 때문에 가정생활을 못한다고 했다. 이는 잘못된 영과의 접신에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남녀간 사랑이 깊어졌을 때 타인들이 모르는 은밀한 말과 표현을 누릴 수 있다. 신부가 신랑에게
"자기야" 라고 한다든지 독점 욕이 과했을때
" 자기 날 두고 딴 여자 보면 죽여버릴 거야" " 꼼짝마! 자긴 내꺼야! "
이럴 수 있다. 이건 사랑의 극단적 표현이며 서로가 이런 표현까지도 서슴치 않는 특수 사랑 관계인 것이다.
물론 전광훈의 정신세계를 다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표현들을 고려할 때 이런 특수성을 추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겨 본다. 전목사는 그 바쁜 중에도 날마다 새벽 3시까지 기도한다고 했다.
그의 표현과 카리스마를 보면 대단한 기도의 사람인 것은 엿볼 수 있다 막강한 기도 없이는 이런 거대 군중을 이끌 수 없을 것이다. 내밀한 기도 중 하나님과의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했고 마침내 바울처럼 "주는 내 안에 나는 주 안에"란 연합이 에로스적 일체감이 형성 됐고 이런 감정이 애국 집회 중 발화됐던 것 아닐까?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에 모처럼 용감하게 싸워주는 전광훈 목사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 기회를 노리는데 하나님에 대한 불경으로 여겨질 말이 터져나와 적지 않은 성도들 마음에 가시가 됐을 것이기에,
미흡하지만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해 보자는 뜻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모쪼록 나라를 지켜내려 힘을 다해 싸우는 전목사에 대한 실망이나 오해를 더는 데 조그만 보탬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9.12.16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