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상인이라면 베니스 상인, 유대 상 그리고 중국을 일컫는 화상(華商)이라고 할 것이다. 세계도처의 유명한 도시에 차이나타운이 있는 것은, 그 근저(根底)에 화상이라는 뿌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꼭 믿지는 마시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은 명동이다. 그런데 그 명동의 한가운데 중국대사관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화상들 때문이라는 것 역시 내 개인적 생각이다. 물론 그 원천을 밟아 올라가면 조선왕조와 청나라와의 관계까지 기어 올라가야겠지만 그곳까지 도달하기엔 역사적 소양과 실력이 모자라 그만두기로 하고 50년대 말 또는 60년대 초까지만 살펴보자.
당시만 하더라도 명동(그곳에 대사관이 있었으니..타이완과 중공의 관계는 나중의 일이니 여기선 언급을 말자.)을 중심으로 길 건너 소공동을 거쳐 서울시청 인근에 크고 작은 중국집(오리지날 청요리 집)이 붙어 있다시피 했고 청요리 집이 아니면 그 재료 상들이 일대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고가의 토지 위에 카르텔(? cartel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비스무리 한 것을 형성하고 상행위를 하고 있었다.
되도 않는 序썰을 길게 풀었지만 화상들의 화려했던 시절을 얘기 하자는 게 아니고 카르텔(cartel) 즉, 오늘의 썰題 ‘동업자 정신’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자장면의 주재료인 춘장이나 양파를 사러가도 같은 화상에게만, 반대로 재료 상들은 손님접대할 일이 있으면 화상이 경영하는 청요리 집으로, 서로가 공급과 수요를 맞추며 동업자 정신을 발휘하고 똘똘 뭉쳐 부를 축적하고 살아나갔던 것이다.
동업자 정신, 하늘을 두고 부끄러움 없이 하는 얘기지만 자랑이 아니라 나 자신은 동업자 정신을 발휘하여 여러 집안 일으켜 세웠다.(물론 자신들의 노력과 능력여하에 따라 지금도 그 업을 하고 있기도 중도 하차 한 집도 있다.)
이젠 모든 걸 손 털고 은퇴하여 산골에서 한가로이 살아가지만,..제조업으로 중국엘 진출했으나 싸구려 인건비 따먹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얼른 보따리장사꾼으로 전업을 하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결과가 좋았다. 그때‘아~! 이 업종 먹고 살만 하다’고 느꼈다. 얼마 후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의 후배 둘을‘백 날 천 날 월급쟁이만 하지 말고…’하는 식으로 설득한 후 동종 업을 하게 했다.
한 후배는 사업이 커지자 캐나다로 이민(와이프가 캐나다인)을 가 40피트 컨테이너가 한 바퀴 돌 정도의 대형 창고를 가지고 지금도 사업을 하고 있고(덕분에 두 번씩이나 초청을 받아 쉬고 왔다.), 다른 후배는 명동 근처 최고가의 대형 아파트는 물론 독일 B사(S500)의 고급승용차를 굴리며 다니고 있다. 심지어 후자인 후배는 그 딸아이를 6개월 간 고용해서 영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까지 했고, 가게를 오픈할 자금이 모자랄 땐 얼마 간 대출까지 도와주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후 처제와 동서 그리고 사촌 형제들에게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동종 업을 하도록 권유하고 그들은 지금도 그 업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모든 게 내 덕은 아니다. 미리 밝혔지만 그들 나름의 사업수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아니었으면 생판 모르는 그런 업종에 참여할 마음이나 먹었을까?(생색내자는 게 아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돈 잘 벌린다고 욕심을 내고 혼자 그 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놈의 욕심 때문에 70이 넘은 이 나이에도 은퇴를 않고 쩐(錢)내를 맡으며 병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쉰다섯 되던 해에 위암이 왔다. 이건 하늘의 뜻이다. 그 순간 욕심을 내려놓고 아들놈에게 모든 걸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 나 지금은 산골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가 많이 빗나갔다. 동업자 정신이라는 게 꼭 금전이 오가는 상행위만 일까? 세상의 모든 직종. 직무 중 동일한 직종이나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동업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무조건 경쟁자나 적으로 삼을 게 아니라 서로 모자라는 부분은 협조하고 또 넘치는 부분은 나누고 분배하여 공유하면 서로 좋지 않을까?
공자님 같은 얘기만 했지만, 토론마당에 정말 개子息만도 못한 최하층 하등동물 같은 놈이 또 토론마당을 난장으로 만들기에 해 보는 소리다. 네티즌이라는 또 같은 공간의 게시자라는 이름의 동업자들끼리 싸우지 말고 시비 걸지도 말자며 수십 차례 조언과 충고를 주었지만…참 어떤 양반 말대로 말 거시를 귀구멍에 털어 막았는지 소용이 없다. 하긴 문재인이 그런 판에 하찮은 싸구려 염장이에게‘동업자 정신’이라는 너무 고급스런 주문을 한 것일까? 그 싸구려 염장이가 이 썰을 꼭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하략)
BY SS8000 ON 10. 22, 2018
[속보] 대통령실 “오늘부로 尹대통령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
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2/11/21/ZRXTZT5URNH5VCDADBVBTWZTJQ/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딱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동업자 정신의 부재”가 불러온 참사인 것이다. 처음 MBC기레기들의 난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조선. 동아일보와 조선TV 및 채널A를 제외한 모든 지상파 및 종편 심지어 찌라시까지 대통령과 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물론 아예 이런저런 살상무기나 연장을 마구 휘두르며 난타하듯 했던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해외순방시 전용기 탑승을 배제됐고 분함을 이기지 못한 기레기 한 놈이 막가파식 행태를 보이며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아예 폐쇄 하도록 공분을 지른 것이다.
아무튼 MBC라는 기레기 집단이 특종을 해 보겠다고 무리수를 두며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깐족이며 개수작을 부리다 결국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이 내려 진 것이다. 이 따위 행태는 동업자를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저희들만 특종을 노리겠다는 더러운 심뽀 내지 야심을 가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도어스테핑이 우리 현실에 가당키나 한 것이었는지 회의감이 든다. 도아스테핑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처음 발상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이 나라의 민도나 특히 기레기들의 수준이 제도를 안착시키기엔 역부족이었고 처음부터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엔 우리의 국민적 정서가 미치지 못한다고 나는 초장부터 반대를 했었고 많은 분들이 동조를 해 주셨던 것이다.
향후“불미스러운 사태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하거나 열린 소통 취지 살릴 방안 마련되면 재개 여부 검토”를 해 보겠다고 하지만, MBC나 기타 지상파 및 일부 종편의 기레기 집단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재개 검토 역시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굳이 재개를 하겠다면 MBC라는 기레기 집단 폐방 그리고 KBS도 민영화 한 후라면 또 모를까.....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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