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부친께서 들려주신 일본에 대한 말씀 [ 2 ]
나의 조상의 얼이 서린 안동에서 그래도 높은 관직에 한때는 있었지만, 나라가 일본에 망한 다음에 내가 굳이 먹고 살기 위해서 저들의 앞잡이도 하 기 싫고, 한때는 공직에서 나라의 봉록을 받은 사람이라 . . . 나의 조국를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조상님께서 물려주신 문전옥답을 팔아서 독립군자금으로 헌금은 했지만, 아직도 일본인들이 서슬 퍼런 때에 내가 독립운동 했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면 나는 물론이고, 나의 동지들이나 2 대독자인 너마져 저들에게 화[禍]를 당할 것이 염려스러워서 너에게 신신 부탁한다.
일본은 멀지 않아 망할 것이나 저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내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더라도 절대로 내가 한말을 기억하고 일본이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고 나라에서 독립유공자를 예우하여 준다 해도 절대로 응하지 말 것이며, 너의 아들 손자들에게도 내가 독립운동 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조부님께서는 독립된 새 나라의 광복을 보지 못하시고, 1945 년 해방되기 13 년 전인 1932 년에 57 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부친으로부터 조부님의 독립운동사의
그 예길 들은 것이 벌서 40 년이 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조부모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근거서류나 증인들만 있어도 독립유공자 집안이 되는 것이지만, 저는 조부모님의 유훈에 따라서 유공자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조부님의 독립사 자료들을 모았으나 이제는 그 자료들이 모두 대구에 살고 계시는 큰형님 집으로 이관 [구 족보와 함께] 되었고, 지금은 그 자료들이 남아 있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조부님의 제자들인 마을 어른들의 육성 녹음은 저가 보관하고 있지만,
이제 그것도 모두 내가 죽으면 살아질 것입니다. 저의 조부님이 돌아가시면서 저의 부친께서는 저의 모친과 결혼을 하시면서 저의 육형제를 키우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이라고는 네 칸짜리 초가집만 조부님에게 물려받았고, 저의 부친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온갖 궂은일을 다하신 모양입니다. 지게에 쌀가마니를 두가마니나 [160키로] 짊어지시고, 50 리길을 왕복하시면서 곡물[穀物]장사도 하셨고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건설사에 잡부도 하셨고, 심지어는
안동 예천 간, 철도 건설공사에 막노동도 하신 모양입니다. 저의 부친은 젊은 시절에 별명이 김 장군이라고 했답니다. 저의 부친과 팔 시름을 해서 이긴 사람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기운이 천하장사 였던 모양입니다. 한번은 철로 놓는 공사장에 수백 명의 일군들이 모인 곳에서 여섯 명이 메는 목도[木徒] 철로 [ 약 250키로 ] 를 저의 부친께서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서 여덟 발자국을 걸으셨다고 합니다. 저의 부친은 저와 같이 47 년 동안 농사를 하신 분이시고, 저의 부친께서 지고 계시는 지게는
특별하게 맞추어야 합니다. 저도 한창 젊은 나이임에도 부친의 나뭇짐을 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참으로 대단한 완력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아버님께서 환갑을 지나신 연세임에도 왼 간한 젊은이들은 저의 부친과의 팔 시름에 이기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분이 조부님의 독립운동 때문에 신학교도 가지 못하시고, 시골 한구석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우리 육형제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저의 부친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너의 조부님이 조상님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전부 팔지만 않았으면
너희들 고등학교 대학도 보낼 것인데,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조부님의 독립운동사는 절대 저희 형제들 한태 얘길 하지 않으셨다가 저가 장가를 가고서, 하루는 조용히 저를 불러서 하신 말씀이 바로, 지금까지 서두에 기록한 얘기들이였습니다. 너희 조부님의 유훈만 아니어도 지금이라도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면 너희 아이들은 그래도 중학교 입학금이라도 면제 받을 텐데 하시면서 한숨을 쉬시는 것을 보고서 저는 " 아버님,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조부님의 나라 사랑하시는
독립운동사 얘기를 들은 것만 해도 저희들은 영광입니다. 하고, 아버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조부님의 독립운동사 얘길 하시고 부터는 아버님께서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중, 일본인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들과 정치하는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것이다. 중앙에 고관대작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임금이 백성들과 삼천리 강토를 일본에 팔아먹으면서도 자기들의 신변과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하시면서,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나라를 뺏기고 나니까, 같은 민족인 우리 동포들이 가장 먼저 일본인들에게 아부를 떨고 갖은 노략질과 못된 짓을 하더란 것이고, 왜놈들 보다가 일본 왜경 앞잡이 놈들이 가장 얄밉더라. 그런데 해방이 되니까, 친일파들이 가장 먼저 태극기 들고 길거리에 나가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들의 돈과 패물을 뺏고 심지어는 입은 옷까지 발가벗겨서 보내고, 그들의 집까지 [적산가옥] 뺏어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더란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했다라고, 거짓 독립유공자 행세를 하는 것을 보니 한편으론 조부님이 원망스럽기도 하더란 것이다.
[ 3 편으로 계속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