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친께서 들려주신 일본에 대한 말씀 [ 1 ]
이곳 논 객 넷 독자님들께서도 이미 여러 번 저의 글에서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저의 조부님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수만 평의 전답[田畓]과 수십 정[수십 만 평]의 산을 일본 왜경들 모르게 팔아서 독립군자금으로 헌금[獻金]을 하신 분이시고, 조선조 말에 안동에서 높은 관직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지금의 직제로 보면 안동시 총무국장쯤 되는 높은 벼슬길에 계셨지만, 중앙 정치가 잘못되어 탐관오리가 득시 글 할 적인대도 저의 조부님은 수만은 전답을 관리하면서도 소작인들에게 다른 사람들 보다가
더 적게 수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부님은 공직에 계시면서도 워낙 청렴 결백하셔서 오히려 당신의 세비[월급]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고, 하인들이 여럿 있어도 양반 상놈의 위계를 세우지 않고, 한 식구처럼 한 가족처럼 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조선이 멸망하자, 저의 조부님은 공직을 사퇴하시고 2 대독자인 아홉 살 먹은 저의 아버님을 대리고 그 당시에는 인적이 드문 오지의 마을인 소달구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협소한 이곳에 터를 잡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서당을 열어서 글 모르는 젊은이들을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수십 명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안동의 유림들과 명문거족들의 종손들과 교류를 하면서 의기투합한 동지를 규합하여 숨은 독립운동을 하신 것입니다. 저의 조부님이 잘못하여 나라가 망한 것은 아니지만, 지식인으로서 또는 높은 관직에 계셨고 국록을 먹고 사신 분이어서 나라가 일본에 망하자,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으로 각 문중의 종손들과 그 당시 계를 모은 것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등축계[燈祝契]란 모임을 만들어서 제비원 연미사에 본부를 두고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척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조직체로 만든 것이 저가 50 세 될 때까지 등축계가 유지되었는데 지금은 없어 졌습니다. 그곳에 계원들의 모임에는 회원이 유고시에는 반듯이 장자[長子]만이 계에 승계 할 수 있도록 계칙[契勅]이 있어서 장자가 아닌 사람은 절대로 그 회의에 입회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조부님께서 돌아가시고부터 대를 이어 일 년에 한 번식 열리는 등축계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시는 것을 저는 어릴 적부터 보아 왔습니다. 저는 조부님께서 앞장서서 설립한 등축계가 어떤 것인지 가고 싶었지만, 육형제의 막내인지라 언감생심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저의 부친이 돌아가시고 저의 큰형님께서 몇 번인가 그곳에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저가 장가를 가고 난후에 조부님에 대한 독립 운동사를 자세히 말씀해주셨고, 제비원 절에 등축계는 왜정당시에 안동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왜경들 모르게 자주 모이신 비밀회동 장소였고, 그곳에서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하시는 것에 대한 중요한 밀담들을 주고받으신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조부님께서 일본 앞잡이들과 일본 왜경들 모르게 독립군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처음에는 전답을 팔 적에는 저의 조부님께서 집안의 종손이시기 때문에 일 년에 수많은 봉제사[奉祭祀] 와 접빈객[接賓客]을 맞이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문중제사를 한번 올릴 적에 소를 한 마리 잡을 것을 두 마리 잡아서 한 마리는 제사에 사용하고, 한 마리는 푸줏간에 팔아서 그것을 독립군자금으로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니 조부님께서 조상님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과 문중산은 모두 생계비와 독립군자금으로 거의 바닥이 났고, 저의 부친을 신학교에 보내지 않고 조부님께서 한학[漢學]을 가르치셨고, 저의 부친은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신학교에는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신 것입니다. 저가 어릴 적에 저의 부친은 한문 실력이 대단하셨는데, 농사일에 전념하시다가 보니 복습하실 시간도 없고 해서 결국은 한문을 나중에는 많이 잊어버리시더군요. 저는 아버님께 천자문은 배웠지만, 그 다음은 저 혼자 독학으로
주역까지 독파를 했지만, 이제는 저도 한문을 잘 보지 않고 자주 쓰지 않으니까, 점 점 잊혀 지더군요. 요즈음은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인해 한글만 알면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한문이던 영어 던 일본어 던, 세계 각국의 문자들을 클릭만 하면 금방 찾게 되니까, 굳이 예전처럼 하늘 천[天], 땅 지[地] 하고 천자문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한글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체여서 좌판기로 두들기면 가장 먼저 쉽게 볼 수가 있고 찾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의 조부님은 조상님의 전 재산을 물려받아서 왜경들 모르게 수많은 군자금을 헌금 하시면서도 저의 부친께 간곡하게 말씀하시길, 내가 독립 운동한 것을 절대 남들에게 발설치 말라 하시면서 일본은 멀지 않아 망할 것이고,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할 것이나 우리들 힘으로는 절대 독립을 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미국이나 연합국에 의하여 독립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더라도 너희 자손들 한태도 내가 독립운동 했다는 소리는 하질 말아라, 내가 독립운동 한 것은 조상님과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 2 편에 계속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