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7부
(5.18)
전쟁이 끝나고 이 폐허의 강토에는 오직 눈물과 가난과 슬픔만이 떠돌고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음악과 노래와 시는 모두 슬픔과 이별을 소재로 담고 있었다. 밝은 노래, 흥겨운 시가 있을 수 없는 초토화된 나라였다.
제주 4.3 폭동 잔존자가 마지막 사살된 것이 1956년,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 김순덕 씨가 체포된 것이 1960년의 일이었으니, 공산주의라는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그만큼 공산주의에 확신을 한 듯하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과연 공산주의가 옳다고 믿을 수 있는가?
지금도 북한이 옳다는 생각을 지닌 자는 오직 주사파와 대(代)를 이어 충성하는 붉은 유전자를 지닌 빨치산의 후예들뿐일 것이다. 이미 북한에 대한 판단은 결론이 난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던 김정일 시대에 300만명이 굶어죽었던 지옥, 인간의 목숨이 가장 하찮게 처리되는 지옥이 북한이다.
그러나 지금의 판단이 설 때까지 대한민국은 비극을 이어간다. 산업화가 성공하여 5000년을 이어오던 가난을 벗고, 배부른 시대가 왔어도, 북한의 지시를 받는 남한의 동조세력들은 적화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남민전을 위시하여 통혁당 사건이 이어지고, 과거 각종 간첩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들이 정치계로 들어가 국회는 물론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입국이 불허된 자가 현직 국회의원이니, 이에 더하여 무슨 말을 하리.
북한은 북한대로 무장공비를 남파하고,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테러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호남의 전형적인 비극, 5.18이 존재한다.
필자(筆者)가 5.18을 북한의 작용 속에 넣은 것은, 5.18이 표면적으로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정권 야욕에서 비롯된 사건이지만, 그 내면을 지휘한 것은 북한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신군부의 권력 찬탈에 대한 야욕은 김영삼 김대중 같은 기존 정치권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김대중은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을 불러 시위집회를 지시한다. 이에 박관현은 전남도청 앞 집회를 시작하고, 이 시위는 곧 데모로 발전한다. 서울은 아예 시내버스를 불태울 정도로 극렬해졌으나, 광주는 촛불 집회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걸 해산시키기 위해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처참한 진압을 한 것이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모여들고, 광주의 저항은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여기까지는 북한은 관련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이후의 도청 점거와 교도소 습격 같은 일련의 과정에 북한 동조세력들 즉 5열들이 개입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국의 좌익들이 광주로 모여든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었고, 다수의 죽음에 진압군의 무기가 아닌 칼빈이나 M1에 의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온갖 유언비어의 확산 또한 5열들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이 모든 상황에서, 남한 민중봉기에 지도적 역할을 할 것을 당시 남한총책 김중린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무렵 납북되어 김일성 최고 권력 곁에 있던 최은희 씨와 김일성 주체사상을 정립시킨 황장엽 선생은 이 상황을 분명한 어조로 증언한 바 있다.
총기반납을 거부하고 저항을 주장했던 의문의 인물들, 그리고 간첩 같은 사상범과 살인 등 흉악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광주교도소 습격.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의학기술로도 연고를 찾을 수 없는 시신(屍身)들. 보상금을 받고 북으로 달아난 인물을 비롯 현재 이석기 같은 자가 민주화유공자인 이유 또한 의문 속에 있다.
그러나 신군부의 통제 하(下)에 있던 언론과 방송은 광주를 폭도의 도시로 몰아가고 있었다. 나 같은 우인(愚人)도 북한의 작용을 의심하고 있을 때, 신군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설득은커념 오히려 5.18 유가족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았으며, 이 모든 억압과 탄압은 신군부의 죄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후 군부독재가 진행되면서 부정적인 인식은 차별로 나타난다. 독재정부를 비롯하여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전라도 핍박에 가세한 결과,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버리고 말까지 바꾸어야 했고, 취직은 물론 승진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후손들을 위해 본적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소위 전라도 탈출이었고, 이는 김대중 정권이 세워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호남철도 복선화는 전라도 박해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기업이 없는 곳에 철도를 복선화하는 것은 낭비라는 정부 측에 기업은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철도 복선도 되지 않는 열악한 곳에 기업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호남철도는 대전에서 머물러 김대중 시대까지 단선으로 운행되었다. 그건 민주화 대부라는 김영삼시절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당선 후 6개월만에 호남선은 목포까지 복선이 되었다. 실로 기막힌 이야기일 것이다.
그동안 호남에 대한 차별과 모멸, 분노와 절망이 오늘의 호남좌익화라는 비극을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筆者)의 판단이다. 그리고 왜 필자(筆者)가 대한민국의 비극을 이렇게 소상하게 밝히느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호남인이 왜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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