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와 뼈’ 이야기
기미가요마루호가 오사카 항구로 들어서자 승객들은 갑판 위로 올라와 그들의 고달픈 여정 끝에 당도한 신세계를 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승객들 중에는 젊은 청년 김준평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피와 뼈’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본의 국민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하는 이 영화에는 양석일 원작에 최양일 감독으로 한국 이름들이 대거 등장한다.
양석일과 최양일은 재일교포 2세들이다, 양석일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던 자기 아버지의 일대기를 소설로 그려 원고지 3,000매 분량의 '피와 뼈'를 썼다. 최양일은 2005년에 이 소설을 영화화하여 일본 내의 유수한 영화상들을 휩쓸었다. 김준평은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양석일의 아버지이며, 일제시대를 살았던 나라 잃은 조선인이자 몸뚱이 하나로 생존을 헤쳐 나갔던 제주사람이기도 하다.
김준평, 괴물로 불리며 야쿠자조차도 두려워 기피하던 인물. 혹자는 이 영화가 한국인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김준평의 폭력은 잔인하고 냉혹하다. 영화는 김준평의 가족사에 대부분을 할애하지만 그것은 폭력과 갈등으로 얼룩진 가족의 몰락사였고, 뿌리를 찾지 못한 재일 제주민의 표류사(漂流史)이기도 했다.
김준평은 가족에 대한 애정은커녕 인간에 대한 애정도 눈곱만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애정을 보였던 것은 그가 그토록 집착했던 돈과, 죽고 흩어진 그의 식구들 중에 그가 그의 아내로부터 납치하다시피 하는, 첩으로부터 얻은 그의 아들이었다, 돈은 그의 생존을 위해서, 아들은 그의 종족 보전을 위해서, 김준평을 움직이는 것은 두 개에 대한 본능뿐이었다.
인생 말기에 전 재산을 처분하고 북송선에 몸을 실었던 김준평이가 북한의 어느 허름한 주택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을 때 그의 옆을 지키던 것은 그가 납치했던 그의 막내아들 하나였다, 피와 뼈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그의 옆을 지키던 혈육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과 싸웠던 그의 육체였을까.
영화 '대부'가 시실리 사람들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것이었다면 영화 '피와 뼈'는 제주 사람들의 재패니즈 드림에 대한 것이었다. 제주에서 오사카를 거쳐 평양에까지 이르는 김준평의 인생 여로는 제주민의 사상적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시실리의 꿈이 마피아 갱을 만들었다면 제주도의 꿈은 북송선에 몸을 싣는 북조선 인민을 만들었다.
1920년대에 일본에서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제주와 오사카 간을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이 취항되었고, 한국의 1960년대 무작정 상경처럼 1920년대의 제주 사람들은 소화 시대의 '본토'로 무작정 도일을 위해 군대환(君代丸.기미가요마루호)에 몸을 실었다. 군대환은 많을 때는 1년에 3만 6천명까지 실어 날랐고, 총 숫자로 따지자면 제주 인구의 20% 이상이 현해탄을 건넜다.
이들은 일본에서 노동을 하며 당시 일본에서 발흥하던 공산주의를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광복 후 이들은 대거 제주로 귀환했고, 광복의 남한 땅에서 발흥하던 공산주의 집단인 남로당의 선전선동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주4.3은 발발했다. 제주4.3의 주모자들 중에는 대륙에서 공산주의를 접했던 육지부와는 달리, 인민유격대 사령관이던 김달삼 이덕구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공산주의를 묻혀온 자들이 많았다.
제주4.3은 폭동을 주도했던 공산주의자들을 다시 일본으로 도피하게 만들었다. 제주4.3에 참가했던 김봉현 김민주는 일본에서 극좌적인 시각의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를 발간했다. 이 책은 후일 남한의 좌파단체들에 의해 성서처럼 받들어지면서 제주4.3을 좌경으로 물들였고, 기존의 4.3진상을 180도로 뒤집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에서 조총련 세력이 막강했던 것도, 수많은 동포들이 북송선에 올라 북한행을 선택했던 것도 1920년대의 도일과 제주4.3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그래서 북한 고위층에는 제주도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 탈북기자 강철환의 조부모나, 북한의 후계자 자리를 꿰찬 김정은의 외조부 고경택도 1920년대에 일본행 군대환에 몸을 실었고 1960년대에는 평양행 만경봉호에 몸을 실었다.
영화 '피와 뼈'는 나라 없는 시절을 살았던 제주사람들의 디아스포라이다, 그래서 제주사람의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면 생존을 위해서 휘둘렀던 김준평의 폭력에는 어느 정도 관대해지게 된다. 영화의 김준평은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라는 변명은 상당한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북한을 선택했던 것은, 짐승 같은 그의 가슴에도 최소한 '조국'이라는 열정은 식지 않고 살아있었기에 기능한 일이었다. 다만 불행하게도 그 당시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그들에게는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간파하거나, 어느 쪽 체제가 백성을 배불리 먹여 살리고 경제발전을 이끌어낼 것이었는지에 대한 분별력은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했기에, 그 선택에 대한 무지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김준평의 후세대들은 김준평의 선택은 비극이었다는 진실을 보고 있다. 공산주의 허구성은 현실로 드러났고 공산주의가 역사의 장막 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목격했다. 김정은의 외조부 고경택은 권력자 김정일이 딸을 좋아하게 됨으로서 입신양명의 길을 걸었지만, 대부분의 ‘김준평’들은 아프고 굶주리는 험난한 고난의 길을 걸었으며,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연속하는 선택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삶을 바꾸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과거의 그 때, 당신이 내렸던 그 선택은 당신을 제대로 바뀌게 했는가. 우리는 우리를 바꾸는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하거나 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을 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과연 그 선택들은 제대로 된 것인가.
김준평이가 만경봉호에 몸을 실을 때의 시대 상황과 북한이 핵 위협을 하는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종북을 훈장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버젓이 국회에 입성하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려는 해군기지 건설도 순탄치가 않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나라 잃은 망국민(亡國民)이었던 김준평의 비극이 떠오른다. 손톱만한 선택의 실수 하나에도 우리 또한 언제든지 ‘김준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화에서만 나오는 장면은 아니다. 김준평은 우리의 과거였지만 우리의 미래도 될 수 있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