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은 본질에 선행하는가?
사르트르(Jean Paul Sartre,1905-1980)는 해군 장교인 장 바티스트 사르트르와 신학자요 아프리카에서 의사로 활동한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4촌인 안네 마리 슈바이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정치 활동을 계속했고 2차대전 동안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로 활약했지만 공산당원은 아니었다고 알려진다.
고등사범학교 시절 학우인 시몬 드 보부아르(~1986)와 51년 간 함께 살면서 결혼은 하지 않은 특이한 사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르트르는 별다른 재산도 없이 소박하게 살았고 1980년 4월 15일 실명 상태로 고생하다가 건강 악화로 74세의 나이에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대명사로 알려질 정도인데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였다. 그의 주장에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existance precedes essence>는 명제가 있다. 실존實存이란 현실적인 존재라는 뜻인데 시간 공간 안에 있는 개체인 인간을 말한다. 이 말은 본질本質에 대립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플라톤 이래로 본질이 실존에 앞서고 본질을 원형原型으로 해 실존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자들이 인간이 우선 실존하고 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자기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신神을 부정한 사르트르는 <인간은 먼저 실존하고.. 그 뒤에 정의定義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이전에는 신神도 보편적인 개념도 없다. 따라서 사르트르에 있어서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이며 동시에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단지 실존하고 그 후에야 본질적 자아가 된다. 인간이란 우선 존재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세계와 관계하며 그 뒤에야 자신을 정의한다. 인간에게는 본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신神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라고 한다.
그에게는 실존하는 개체들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도 어떠한 객관적인 가치 체계도 어떤 고착된 본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사상은 지나친 주관주의이면서 우리의 의식을 혼란케 만드는 담론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그가 주체적 삶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이지(창1:26) 주체적 삶을 살아서가 아니다.
그 주체적 삶이란 것도 사르트르가 억지로 하는 의미 부여이지 별것 아니다.
주체적 삶이란 뭔가? 자유의지를 행사한다는 말일 텐데 그 자유의지나 인격 현상이 창조자에게서 부여받은 것이지 인간이 셀프로 만든 것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체적 삶으로 보이는 현상은 창조자가 넣어준 메커니즘에 따라 행하는 수동성일 뿐이다.
무신론파들이 무신론 깃발로 아무리 썰을 풀어도 설득력이 없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가장 성실한 이해는 성경의 창조론에 귀의하는 것이다.
성경의 창조와 구원 역사를 떠나서는 기껏해야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면서 사람들을 허무로 안내하는 한담 정도일 것이다.
본질(창조자) 없이 무슨 실존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소산일 뿐이다.
사르트르의 말이 유의미하려면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여야 한다 .
하지만 어림없다. 인간은 만들어져 내던져진 피투被投성이일 뿐이다.
인간은 흙 한줌도 쌀 한 톨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창조자가 주신 것 가지고 개발이나 계발하면서 숨쉬고 움직이다가 허용된 시간과 생명력이 고갈되면 비참성으로 가는 존재다.
무신론적이고 인본적인 모든 썰들에는 영혼을 황폐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횡설수설들이 많다.
안티다원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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