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46)
도올은 수운이 쓴 용담유사龍潭諭詞를 해설한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용담유사>라는 책을 냈다.(통나무출판사,2022) 그는 이 책의 시작부분에서부터 유물론적 인간론을 내세운다. 몸이 나의 존재의 전부이고 몸이 사라지면 몸의 구성양식이 해체되고 죽게 되면서 끝이고 결국 죽음은 무無이고 뒈지면 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몸이 끝나면 영혼불멸이니 하느님이니 하는 개소리도 다 끝이 아니냐고 한다.(위의 책, p.12)
그러면서 영혼과 육체를 나누거나 하는 건 지난 1,2세기 동안 세계를 틀 지운 로고스 체계의 산물이며 이러한 지식의 체계는 세계 권력의 체계와 습합되었고 이러한 권력적 지식을 소유한 자들은 몸을 육체와 영혼으로 나눈다. 이들에게 몸의 소멸은 단지 육체의 소멸일 뿐이며 영혼의 소멸은 아니다. 이때 육체는 순수물질pure matter이 되며 영혼은 순수 정신pure spirit이 된다.(p.13)
몸의 소멸이 곧 존재의 종말이라는 엄연한 사실의 섭섭함을 견디기 어려워 죽어도 남는 게 있어야 사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고귀한 정신의 불멸the immortality of the Soul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p.14)
아울러 그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1556-1650)의 실체이원론을 비판하며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개의 실체를 설정한 데카르트 식 이원론을 터무니없는 철학이며 비상식적이라고 한다.(p.15)
이렇게 도올은 물질과 정신의 이원적 대립을 혐오하면서 이 대립이 없는 수운의 언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과연 수운과 도올에게 이원론적 대립의 요소가 사라지고 없어지는가? 도올은 말한다. “...나의 몸은 숨으로써 하늘天과 교섭하는 것이다. 나의 몸은 하늘을 숨 쉬고 땅을 먹는다.....나의 몸은 자기원인일 수 없다. 교감 없는 실체일 수가 없다.” 하여 하늘과 땅의 이분법을 쓰고 있다. 몸 자체가 하늘과 교감 없인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한다.(p.19)
이원적 대립이 없는 상태면 왜 하늘과 땅이 구분돼야 하나? 하나로 링크됐어야 맞는 거 아닌가. 그렇게 이분법적 대립을 증오하면서 왜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가? 하늘도 땅도 하나로 돼야 이분법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이렇게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도올의 래디칼radical한 반응은 불필요한 고집이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통찰하는 것은 인류역사상 불변의 통찰이다. 인간은 육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영혼 없는 인간이란 그야말로 허당이고 설명 자체가 안 된다.
죽고 사라저가는 육체를 전부인양 하는 건 영혼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논리다. 죽는 게 두려워서 뭘 남겨야겠다고 영혼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인간 자체가 영혼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는 가장 저급하고 몹쓸 관점이다. 정신이 물질에서 나온다는 그 소박한 견해야말로 인간을 물질덩어리로 전락시키는 단순성이다.
도올은 “나의 몸이 나의 존재의 전부”라고 한다. 몸이 전부다? 이것이 주역을 수 백독 했다는 도올의 인간관인가? 주역에 그렇게 쓰여 있었나? 몸이 인간의 전부고 뒈지면 그만이라고? 아무리 일원적 해석이니 무슨 이분법 극복이니 해봐야 독백은 될까 사실에 충실한 논리가 아니다. 도올의 이분법 비판은 기독교의 교리 해체가 그 심리적 배경임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도올은 기독교회가 증언하는 하나님 창조 구원 천당 지옥 심판 이런 도식이 너무 싫은 것이다. 이런 증언들을 모두 폐기하고픈 충동이 이원론 비난이고 기철학이고 도마복음인 것이다. 하지만 이모든 게 사실인 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됐고 유한자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죽음을 향해 괴로운 행진 중인 자인 것을! 도올에게는 기독교 신학이야말로 이분법의 대표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도 나의 몸의 일부 현상으로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런 사고의 전복을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들의 신앙세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반란인 것이다. 이러한 반란을 심오하게 성취한 사람들이 바로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라고 해 동학을 이원론 극복의 원조라는 듯 강조한다.(p.19,20)
이상하다. 동학교주 수운은 상제上帝라는 신을 만나 그렇게 대화도 하고 부적도 삶아 먹곤 했는데 왜 수운이 이원론을 극복했다고 하는가? 이원론이 없어지려면 초월적 대상이 없고 유아독존 해야 하는데 왜 상제란 신을 섬긴 수운이 이원론 극복의 대표란 말인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도 나의 몸의 일부현상”이라니 이는 또 무슨 궤변인가? 우리 모두와 도올선생의 몸은 피조물이고 죽음의 지배하에 있는 유한자들이다. 어떻게 사람의 몸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만유의 창조자이시고 구속주 심판주 되신다. 유일무이하게 홀로 영광 받으실 성삼위 하나님이신데 사람 몸의 일부가 되신다니 이는 망상에 준하는 표현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이 분명하다. 이를 섞는 게 우상이고 인본주의 자연주의 범신론이다.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3계명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지신 속성의 일부를 인간에게 주셔서 공유적 측면이 일부 있으나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끝까지 피조물이고 지음 받은 존재다.
인간을 우상화 하거나 신격화시키는 일, 또는 하나님과 피조 된 세계를 섞으려는 시도는 모두 성경의 계시적 진리에서 떠난 영혼들의 성경도그마 파괴행위다. 인간은 아무리 용을 써도 피조물이다.시간과 공간에 묶여 살다가 죽고 심판 받아야하는 죄인들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되 존재를 하나님과 섞을 수 없다는 게 성경의 도그마이다. 도올선생의 몸이 하나님의 백분의 일이라도 섞인 게 있다면 선생은 불사불멸不死不滅의 존재여야 하고 시공을 초월한 자유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도올님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삶은 죽음을 향한 행진이요 그 몸들은 이 순간도 썩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유한자들이다.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을 섞으려는 모든 시도는 허무한 결과를 맞게 될 뿐이다.
도올의 이런 억측은 수운의 동학을 더욱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도올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설명하면서 이는 왕권을 넘어 신권神權에 도전한 것이며 니체는 신을 살해하려 했지만 수운은 신의 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신과 인간에게 동일한 생명력을 부여했다고 한다.(p.25)
하지만 수운이 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상제란 신과 만나 부적을 먹고 투쟁가로 산 것이 신神의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이런 비약은 삼가야 한다. 수운이 그냥 혁명을 추구했던 인간이었을 뿐인데 무슨 신의 모습이란 말인가?
인내천 사상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하늘같이 섬긴다는 덕담형식으로 이해하면 모를까 인간 즉 신이라고 하면 혼란을 야기하는 거다.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다른 영적 차원이다. 여호와 하나님 삼위일체 신께서 만유를 창조하신 참 신이시고 그 외는 모두 피조물로서 죄와 유한성의 지배를 받는 존재자들이다.
아무리 특출한 자도 모두 유한생명체이며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수운이 신의 본 모습이라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거나 영생 했어야지 어떻게 죽음 앞에 무력했던 인간이 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참신이시고 참인간 되시는 증거는 성경에 넘쳐나고 있고 그 중에도 친히 부활하심으로 죽음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참 신이신 것이다.
인간은 죽었다 깨나도 인간일 뿐이고 신이 아니다. 섞는 건 모두 혼란을 야기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스토리가 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걸어보지 못한 환자를 기도로 고치자 사람들이 바나바 보고 제우스신이라고 하는가하면 바울보고는 헤르메스신이라고 격찬하며 제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 제사를 드리려 한다. 이때 이단교주들 같으면 좋아라고 신적 행세를 했을 텐 데 바울과 바나바는,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지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하고 사람들을 말려 제사를 금지 시켰다.(행14:8-18) 이런 사도들의 매너가 바로 정답이다. 인간을 신으로 둔갑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우상숭배요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할 행위들이다. 영광 받으실 성삼위 여호와 참신께서만 홀로 영화로우셔야한다.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 받아야할 존재자들이다. 사람들이 헤롯을 신이라고 떠받들자 그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신적행세를 하다가 주의 천사가 와서 치자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행12:20-23)
어떤 위인도 신적 행세를 하면 결과가 안 좋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는 죄가 된다. 하나님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심판 날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유6) 이렇게 하나님은 교만하여 신을 빙자하는 자를 심판하신다. 도올은 과연 수운이 자신을 신이라고 여기고 주장하며 경배하라고 했는지 유심히 살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도올의 말들에는 종잡기 어려운 복잡계가 있다. 여기서 한 말이 저기서는 다르게 튀어나온다. 수운은 신을 객화客化시키지 않았다고 해 놓고 항상 객체로서의 하느님을 만나다고도 한다. 또 몸이 신이라고 하면서 객체로서의 상제와 대화했다고도 한다.
“ 수운은 항상 하느님을 만난다. 그의 하느님은 인격체로서 수운에게 말을 건다. 수운은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은 그에게 명령을 하달하기도 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리얼한 그의 몸의 생성체계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현상이다.”라고 한다.(p.29)
객체로서의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신과 논쟁하고 명령을 하달 받았다고 하니 말의 일관성이 없어진다. 게다가 이런 신과의 대화나 논쟁이 그의 몸의 생성체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오락가락 혼돈이다. 몸이 신이고 객체로서의 신은 없다는 투로 말하면서 신적 존재와 대화하고 논쟁도 하며 명령도 하달 받았다니 혼란스럽게 믹싱mixing된 의식인 모양이다. 신관神觀, 인간관人間觀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수운의 정신이 이런 콘텐츠인지 도올의 해석과 주관이 이렇게 파악한 건지 모호하기만 하다. 이런 주장들은 성삼위일체 여호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해치려는 교란행위다.
도올은 말한다. “수운은 태극을 무화無化시킨다. 하느님을 무화시킨다. 하느님은 초월을 담지하면서도 철저히 이 세계와 함께 생성한다. 동학은 신화를 초극한 상식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문명을 이 지구상의 모든 누메나noumena(본체)적 사유와 구분 짓는 특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운은 박소朴素한 태초太初이다.” 하였다.(p.30) 여기서 수운이 태극을 무화시켰다는 것은 최수운이 태극太極, 즉 온 세상의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을 없애버렸다는 뜻이고 하느님을 무화시켰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수운이 박소한 태초라고 한다. 박소朴素는 소박素朴이고 소박은 ‘소박하다’의 어근인데 ‘소박하다’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동아 새 국어사전) 그러면 최수운이 태극이고 만유를 시작한 신이란 뜻 아닌가? 과연 수운이 태극을 없애고 그 자리에 올라간 신이고 만물을 창시했단 말인가? 이야말로 허황한 발설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수운을 높인다 한들 이런 발언은 이성적이지 않다.
도올은 창조주 성삼위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더니 수운을 그 자리에 놓으려 하는가 하면 물활론hylozoism적 흔적을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이 물활론物活論은 물체 자체에 생명이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설이다. 고대 초기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등이 생각했던 학설로 근원적 물질의 자기운동을 한다고 여기는 고대의 원시적 세계관이다. 도올도 이 고대인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물활론 적 면모를 과시 한다. 그는 북한산의 인수봉에 정신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인수봉이 의식은 없더라도 정신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라면서 인수봉에 혼이 있다고 하는가하면 이런 물활론을 저차원의 비과학적 사유체계가 아니라고 변호 한다.(p.32)
그는 호모 모미엔스(Homo Momiens)가 기본적인 인식체계를 제공하는 고등한 철학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며 인수봉도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주변과 끊임없이 교섭하면서 생성을 계속하는 다이내믹한 생명체라고 주장한다(p.33)
여기서 도올이 말하는 모미엔스란 도올의 창작어인데 그가 1987년 1월 싱가포르 국제회의서 사용한 용어이고 몸이라는 우리말을 학술용어로 승화시킨 용어로 알려지는데 그 뜻은 ‘몸뚱아리 인간’을 말한다고 한다.(<아름다움과 추함> 김용옥,57-63쪽) 그는 “호모 싸피엔스에서 모미엔스로! 사피엔스여 사라져라! 모미엔스여 일어나라! 이것이야말로 나의 기철학의 귀결점이다.” 라고 외친다(위의 책, 같은 페이지)
이렇게 수운의 신격화나 몸을 우상시 하는 기철학과 물활론적 사변 같은 것들에 급급하는 현상은 세계 존재의 궁극적 원인자이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된 영혼의 방황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누가 도올의 이런 주장을 신봉하고 물활론자가돼 인수봉에 가서 절하고 그 산과 정신감응을 하다가 탈 이성 현상이 발생하면 누가 치유할 것인가? 예부터 도를 닦는다며 우주의 기를 받았다느니 만유와 하나가 돼 만사에 통달했다느니 또는 자연만물과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등 하다가 정신착란 된 경우들 종종 있었다.
인수봉은 그냥 바위산일 뿐이다. 물활론 자체가 고대인들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존재세계를 설명해보려고 시도했던 추론에 불과한 것인데 왜 21세기 광명 천지에 그것을 집착하는가? 몸을 신성시 하는 것도 착각에 불과한 접근이다. 몸은 그냥 영혼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신체적 작동일 뿐 그게 존재세계의 근원일 수는 없다.
창조주 하나님과 척지고 나면 이렇게 수운선생을 신격화 하려하거나 몸을 궁극적 가치로 여김 또는 물활론이나 범신론 같은 것으로 견뎌보려 한다. 하지만 물질이나 형상화된 모든 것들은 신이 아닌 피조물이다. 피조물에서 영원성 궁극성 또는 신적 요소를 찾으려하면 헛되고 헛된 결과를 맞는다.(전1:2)
성경으로 계시하시고 그리스도로 화육하셨으며 성령으로 감동감화하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창조주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크신 하나님과 무엇을 섞거나 견주려 하는 건 무모한 어리석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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