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출출이 - 산새
* 마가리 -오두막
백석(白石 ; 1912∼1996)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이지만 아호였던 백석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 영생 여자 고등 보통학교, 여성사, 왕문사 등에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후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의 아오야마 학원에서 공부하게 된다. 조선일보사와 계열사인 〈여성〉지에서 근무하는 동안 단편 소설 〈마을의 유화〉와 〈닭을 채인 이야기〉, 수필 〈이설 귀고리〉를 발표하였다. 이 밖에 〈임종 체흡의 6월〉이라는 서간문을 번역 소개하거나, 〈죠이스와 애란문학〉이라는 티 에스 마르키스의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그 후 1935년 첫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6년 1월 33편의 시로 이루어진 시집 〈사슴〉을 출간하였다. 이때부터 1940년까지의 기간 동안 활발히 활동하며 집중적으로 시를 지었다. 시집을 낸 직후 함흥의 영생 여자 고등 보통학교에 부임했다가, 곧 만주의 신경으로 떠났다.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일하기도 하고, 북만주 산간 오지를 여행하며 측량보조원, 소작인, 세관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해방 후에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그 후 계속 북한에 남아있었으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석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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