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 논설위원님께서 올리신 글에 부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선거철이 되면 무속인과 역술인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필명 안동 촌노의 닉을 쓰고 있는 저 역시 역학을 지금까지 60 년 동안 배웠다고 하지만, 아직도 저의 앞길을 단 일분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형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역학과 무속은 사실상 이름은 전혀 다르면서 가장 밀접한 관계입니다. 역학[易學]은 주역[周易]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생물과 사물에 대한 통계를 집대성한 학문이 바로 역학이고, 역학은 엄밀히 말해서 과학이고,
모든 인류사의 지나온 일들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통계를 낸 것을 숫자로, 인문 생명 철학으로 만들어진 학문이 바로 역학입니다. 그런데 역학은 오랜 세월동안 공부를 해도 다 터득하기가 힘이 든다는 것이고, 역학의 시초가 바로 중국 주나라에서 발생했던 것이고, 역학을 철학이라고 하지만, 철학의 범위가 하도 넓어서 사실 역학을 하는 사람들은 역학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역학을 배우려면 천문지리를 공부해야 하고 그것을 다 배우려면 32 만 자가 넘는 한문을 배워야 하고 주역을 통달해야합니다.
저가 알기론, 우리나라에 역학이 처음 보급된 것은 고려 말 역동 [易東] 우탁 [禹倬] 선생님께서 나이 일곱 살에 기라성 같은 중국의 역학자들이 평생을 배워도 다 이루지 못한 주역을 단 1 년 만에 독파를 했다는 것이고, 아직도 중국에서 역동 우탁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동양 성리학[東洋性理學]의 시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역학과 성리학을 집대성 한 분이 바로 퇴계 이황 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학의 시조가 바로 역동 우탁 선생님입니다. 우탁 선생님께서는 역학을 공부하시고 체계화[體系化] 했지만,
그분이 남긴 역학의 책은 전혀 없다는 것이고, 시집 몇 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우탁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말씀하시길, 역학[易學]은 시대에 따라 변천 하기 때문에 그분은 당신이 제자들에게 후손들에게 일체 역학 책 한 권 남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중에 돌고 도는 책들은 후일 역학 공부를 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공부한 것을 살을 부치고 마디를 채워서 자기들 나름 지어낸 것입니다. 주역만 통달하면 이승과 저승을 마음대로 오고 가는 도를 깨우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철학 교수란 사람들 주역을 통달한 사람들 없습니다.
주역을 통달하면 인간의 욕심이 살아지고 세상 만사 희노 애락을 해탈하기 때문입니다. 즉 물욕 금욕 음욕 등이 살아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도인들인 셈이지요. 지금 철학관 간판을 걸고서, 내 노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내 노라 하는 역술가들과 무속인들은 그야말로 생계형들입니다. 그 반면에 무속은 우리나라 고대로 부터 전해오는 토속 종교이며 역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귀신과 접신이 되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옳은 신을 공접[供接]한 무속인들 이라면
닦아오는 앞일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역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소위 종교 지도자들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 신을 공접 하 기 위해 무던하게 애를 씁니다. 교회의 목사님들이나 신부들, 스님들 거의 신과 접촉하는 공부를 많이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절에 교회에 신도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무속인 이라고 터 부시 할 필요도 없고, 요즈음 무속인들도 역학 공부를 배웁니다. 주역을 통달했다고 구라를 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사실 철학관 간판 걸고 있는 사람들 웃기는 사람들이지요.
하나님도 부처님도 공자님도 해결하시지 못하는 것을 감히 인류 사 전체를 통달한 것 같이 철학관 간판과 철학 박사 학위까지 받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저가 여기 올린 "안동 촌 노의 역학전서" 마지막 글 26 페이지에 보시면 신선이 되는 길이란 제목으로 글 올린 것을 참고 하시길 부탁 올립니다.
-- 안동 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