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28) 도올은 그의 <마가복음 강해>에서, “예수는 사랑의 대상일 수는 있으나 권위의 대상일 수는 없다 권위주의나 초월주의에 빠지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거리를 상실한다.....예수는 신화화 돼서도 안 되지만 과학화 돼서도 안 된다 예수는 숭배돼서도 안 되지만 저주되어서도 안 된다 예수는 하나님이 돼서도 안 되고 인간이 돼서도 안 된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는 영원히 이해되지 못한다.” 고 했다(P.100,101) 여기서 도올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 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예수를 이해하는 길임을 제시한다. 즉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의식화 돼야 예수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예수를 단지 神적 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인간에 불과하니까 우리도 그런 <神의식>을 가지면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도올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고 선전하려는 꼼수로써 구주예수의 신성神性을 박탈해 우리와 똑 같은 사람으로 전락시키자는 수작이다. 즉 예수께서는 <하나님 의식>을 가지고 살았었던 사람이었을 뿐이니까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의식을 가지면 우리도 예수처럼 될테니까 그런 상태에서 마가복음을 보자는 낭설이다 구주예수께서는 우리와 한결 같으시되 죄가 없으시며(히4:15)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 계셔 삼위일체 되시는 참신이신 것이다(요1:1-3) 즉 예수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 참 사람 되신 유일무이한 구주이신데 도올은 이 진리를 타도하고 주예수를 죄 있는 일반 사람으로 몰기 위해 애쓰면서 우리도 하나님의식을 가지면 예수님 같이 된다는 썰을 풀고 있다. 도올의 이런 선동은 독자를 현혹시키는 쇼이며 그럴싸한 마타도어(black propaganda)일 뿐이다 벙커1인지 하는 곳에서나 통할까 성한 영혼 가진 성도는 안 속는다.
죄 없으신 화목제물이시며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실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분은 구주예수 밖에 없다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어서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화목제물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아버지와 본질과 영광이 동일하신, 참신이시며 참사람이신 구주예수 밖에는 구원자가 없고 죄 없는 참사람이 없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육체를 입으시고 도성인신(Incarnation)하신 유일한 분이심 명심하고 도올이 헛소리로 사람들 영혼을 노략하는 사기행각에 현혹됨 없어야겠다. 아무리 강변해도 그리스도는 구주예수 한 분 뿐이고 주예수께서만 神性으로 충만한 분이기 때문에 인간 어느누구도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는 구세주 되심에(골1:15-20) 일점일획도 양보 없는 게 성경이요 교회다 도올은 마가복음에 대해 아예 성격규정을 해버린다 ”마가복음이 초대교회 케리그마의 담론(episteme)의 소산이지 결코 예수라는 역사적 인간의 전기문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라고 해 아예 마가복음을 믿지 못할 담론(얘깃거리) 중 하나로 취급하겠다고 한다(p.102) 말하자면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을 한 게 아니고 사도들이 교회신앙을 위해 부풀려 얘기한 케리그마의 소산이니까 아예 마가복음을 사실로 믿을 생각 마라 ”그저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그냥 돌아다니던 말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는 썰인 것이다.
하지만 도올은 출발부터 틀렸다 아니! 복음서가 전기가 아니고 담론 정도라면 도올은 그 담론에 불과한 걸 왜 붙잡고 있나? 도올이 그런 담론을 연구하느라 애쓸 필요가 있나? 도올 전공이 담론은 아닌 걸로 안다 주역과 氣철학 전공 아닌가? 왜 담론을 건드려? 만일 담론이라면 담론 연구가에게 맡기지 왜 수고를 하나? 주역이나 파고 들것이지! 담론에 불과하다면 시간과 에너지 투자하고 책을 써 대면서 애쓸 필요가 뭐 있을까 생각을 해보라! 복음서 저자들이 할 일 없다고 담론을 쓰겠나? 담론談論은 사실을 다루는 게 아니다 그냥 한담하듯 이말 저말로 의견 나누는 것이다 이야말로 어림없는 발상이다 도올이 아무리 복음서를 담론정도의 것으로 약화시키려 해도 헛다리짚는 일이다. 생각해보라 사도들이 거짓으로 케리그마를 만들고 그 것으로 복음서를 만들었는데 그게 2천년을 끌어오며 세계사를 바꾸고 20세기 지금도 막강 파워를 낸단 말인가
거짓이나 오류로 된 것은 사람을 한 때 속일 수는 있으나 근본 변화시킬 수는 없다 지속적이지도 못하다(물론 강압에 의한 주입으로 교육, 한 동안 유지할 수는 있다)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 영혼을 변화시켜 하나님 자녀 만들고 구원시키는 일은 사실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물론 공산주의 같은 신념체계로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의 교육은 의식화이며 사람을 세뇌시켜 획일의식상태로 만들어낸 공작의 결과이고 자유 하는 인격의 소산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 수명은 오래 갈 수 없었고 그 악함이 폭로되었다 성경은 사실이기 때문에 감화력이 있고 영혼을 변화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도올은 바울과 마가를 대립시켜 싸움 붙이려고도 한다. 그는 바울이 복음을 구원론적 맥락에서만 이해했기 때문에 예수의 삶에 대한 인식과 지식, 관심이 전무 했고 이론가요 연역적 구성가였기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만 생각했다 한다. 그러면서 마가는 이런 바울에게 대들고 이러한 바울의 구성constuuction에 대해 반역deconstruction을 일으켰다고 한다(p.104)
하지만 도올의 이런 분열공작은 먹히지 않는다. 마가가 전한 복음과 바울이 전한 구원의 메시지가 하등 충돌될 게 없다 마가는 예수의 전기를 기록했고 바울은 영감 받아 예수사건 전반을 해석하고 구원론을 완성했다 마가와 바울이 왜 충돌하거나 싸워야 하나? 성경계시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고 완전한 계시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며 상호 보완해 온전함을 이루는데 왜 싸운다고 하나? 이는 도올의 자아의식 분열에서 생긴 발상일 것이다.
도올은 “복음은 예수의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에 있다 예수의 삶 그 자체를 복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마가공동체의 혁명적 성격이었다. 초대교회의 흐름에 있어서 최대의 반역이자 새로운 정통의 출현이다” 해 예수의 대속적 죽으심을 증거해 구원교리를 조직한 바울을 공격하고 주예수의 삶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도다(p.104) 앞서 누누이 말했듯이 예수의 대속적 죽으심을 도외시한 채 주예수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면 주 예수께서는 윤리도덕 교사나 지혜의 스승 또는 민중운동가가 되고 만다. 구주 예수의 구원과 계시 사역에서 그 절정은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이것은 모든 성경 계시의 압축이요 주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복음의 핵이다 주예수의 죽으심을 정치사회적으로만 해석해 장난치려 하는 게 민중신학 부류이며 사회구원론자들의 수작이다 주예수의 죽으심은 창3:15 원복음의 실현이고 사53장의 온전한 성취이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으심이란 교리에서 1미리미터도 물러설 수 없다 이를 해치려는 건 사회구원론자들의 이단적 수작일 뿐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도올 같은 인사들이 바울을 공격하는 건 바로 예수의 삶을 민중운동가 정도로 만들어 성경의 구원교리를 파괴하려는 수작이다 바울 없는 성경과 기독교 없고 바울 없는 복음도 없으며 바울 없는 교회도 없다 사람으로 난 자 중 최대의 인물은 바울이라고 봐 무방하다 그는 계시의 수여자요 구약에 대한 완전한 해석자이며 성경 계시의 완성자요 부활하신 예수의 대면자요 구원교리를 확립한 대사도이며 마침내 생명까지 주께 바친 순교사도이다 바울을 비난하거나 마가복음과 대립시키려 하는 시도는 아무 설득력도 없고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수작이며 바다에서 쟁기질하겠다는 망상이다 도올은 이 책에서 구주예수의 탄생에 대한 보도마저 왜곡하기 위해 누가복음마저 험담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베들레헴 탄생기사를 누가의 ‘날조’라고 하면서 아우구스투스가 호구조사령을 내렸다는 것도 ‘뻥튀기’이며 이는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나온다는 메시야 대망사상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의 호구조사령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p.110)
그러니까 인구조사란 게 없었고 베들레헴 탄생도 아닌데 메시야의 베들레헴 탄생설이 보편화 됐던 것에 맞추기 위해 허구를 꾸며냈다는 얘기다. 그뿐인가 도올은 마태복음이 보도하는 헤롯대왕의 유아살해사건도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마태가 그리스도의 탄생기사를 모세의 출생 기사와 오버랩시키기 위해 ‘날조’한 것이라고 한다(p.111) 하지만 도올의 ‘날조’괴변은 아무 사실성이 없는 선동에 불과하다 도올이야말로 엄연한 성경적 사실을 없애거나 속이기 위해 ‘날조’를 일삼고 있다
당시 로마는 14년마다 한 번씩 인구조사를 했으며 그 조사는 원적지를 찾아가 하는 게 관례였다.(Thompson Bible commentary) 아우구스투스도 황제는 B.C 27에서 A.D 14년까지 로마제국을 통치하면서 세금의 효율적 수거와 제국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로마 전 제국의 인구조사를 각 지역에 따라 부분적으로 자주 시행했었다(Oxford Commentary) 아우구스투스가 정치적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했을지라도 이는 결국 미가서5:2의 메시야 베들레헴 탄생 예언의 성취로 사용되어졌다. 구주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을 의심할만한 아무 근거도 없건만 도올은 억지로 구라니 뻥이니 날조라는 등 그야말로 도올판 ‘날조’를 제조해내고 있다.
헤롯의 유아살해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도올은 모세의 출생기사와 오버랩 시키기 위해 지어낸 얘기라고 강변한다 구사일생으로 강물에서 건져진 모세와 구사일생으로 애급으로 피신한 구주예수의 이미지를 연합시키려고 ‘날조’했다며 철저히 구약의 맥락 속에서 규정지으려고 그랬다고 뻐긴다(p.111) 도올은 이런 억지소설 쓸 게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 이성을 작동시켜 보기 바란다. 마태가 없는 얘기, 그것도 어린이의 죽음을 만들어서 써 낸단 말인가 도올이 마태라면 그렇게 두 살 아래의 어린생명들이 죽어나간 스토리를 꾸며서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모세와 오버랩 시킬 이유가 뭐가 있나 지어낸 얘기가 정경에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일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역사 전개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다 이 사실을 성경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이뤄졌다고 하신다(마2:18)
성경은 이성을 성령님께 복종시켜서야 열리는 말씀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의 감화 속에 있으면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계시로 믿어지고 그렇게 지각된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성경을 탐구하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이 없기 때문에 그 해석의 주체가 이성이 된다.
이 이성理性은 죄의 영향권 하에 있기 때문에 성경도 죄적 본성(nature of sin)을 가지고 보게 된다. 결국 성경의 사실들을 불신하게 되고 도올처럼 날조니 창작이니 하는 몸부림을 치게 마련이다 이는 죄의 본성이 출현한 현상일 뿐이다. 도올은 두렵지도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조니 창작이니 하는 게? 하긴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에 빙의되면 두렵긴 고사하고 부질없는 영웅심과 스타심리로 충일 돼 방방 뜨면서 성경파괴를 즐길 수 있다 그 ‘즐김’이야말로 사탄의 영과 함께한 댄싱이겠지만! 도올은 복음서 저자들이 쓴 성경이 크로놀로지(chron0logy,연대기)에는 관심이 없고 객관성도 없으며 기록수준이 이야기 정도에 머물고 있는 유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태족보와 누가족보 기술이 차이를 들먹이며 상상력에 의해 마구 작명한 것들이라고 떠든다(p.111-113) 이 또한 도올의 억지 헐뜯기다. 마태는 42명을, 누가는 77명을 기록했는데 마태가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는 하향식인데 비해 누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 내려오는 상향식이다 마태는 주예수가 아브라함의 약속을 계승한 언약의 상속자이자 다윗의 왕통을 계승한 메시야이심을 기록한 반면 누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제2의 아담이 되사 구원과 생명을 주신 주이심을 증거 한다(롬5:12-19)
마태가 요셉족보 중심으로 기록하는가 하면 누가는 마리아족보 중심으로 기록해 주예수께서 창세기 3장 15절 원복음의 성취, 즉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것을 증거 했다. 족보 간 차이 나게 보이는 것은 이상과 같은 기록 목적에서 달리 표현된 것이지 오류이거나 지어낸 Saga(이야기,Barth의 표현)가 아니다. 어떠하든지 성경을 헐뜯고 싶은 도올의 심보가 성경을 무력화하려 애쓰지만 그 수고야말로 영적으로 어두워진 영혼의 측은한 작업일 뿐이다.
도올이 누가의 족보기록을 파고들어 흠집을 내려하지만 안 되는 일이다 무슨 문제점을 잡아낸 듯해도 그건 누가기록의 진의에 접근하지 못한 인간적 메뉴펙춰manufacture(조작)가 될지언정 팩트 자체는 아니다 펙트는 성경 뿐이다. 죄인들이 억지로 흠잡으려 모순이니 오류라는 등 떠드는 것 뿐이다. 도올은 누가족보의 오류를 찾아내지도 못하면서 그 족보를 상상력에 의한 작명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p.113)
만일 누가족보가 억지로 작명한 것이라면 그 것을 세밀하게 고증에 가까운 추적으로 밝혀내야할 것 아닌가 그러지도 못하면서 일방적 생떼 쓰는 건 학자의 이데올로기적 선동일 뿐이다 성경은 도올이 선동한다고 흔들리거나 권위에 금이 가지 않는다. 역사상 도올처럼 성경을 어떻게 해 보려고 도전 했던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사라졌고 성경은 건재하다 왜 그럴까 실로 이 백성은 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사40:7,8) 도올은 4복음서의 예수상이 각각 다른데 그 중 마가복음이 원형이라고 강조 한다 도올이 마가를 강조하는 목적은 “마가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 얘기, 족보 얘기 , 베들레헴, 다윗얘기도 안하고 신화적 담론 속에서 조작 해내지도 않고 단지 예수의 행위만을 담박하게 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p.113) 그러면서 예수는 자신을 다윗의 후손이라고 믿었을 리가 없고 그것은 단지 초대교회가 덮어씌운 누명일 뿐이고 예수는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모독감을 느꼈을 것이고 분노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는 인간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키려 했기 때문에 싯달타가 베다의 권위를 거부하고 인간의 독자적 각성을 통한 해탈을 추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p.114) 이러한 도올의 생각은 망령된 것들이다 우선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탄생에 대한 기사가 없는 것은 그 기록 목적에 따른 것이다
마가복음은 A.D.64-66경에 있었던 로마네로 황제의 박해로 어려움 당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고난의 생애를 밝힘으로 시험을 이길 힘을 주려고 기록한 복음이다 그 대상이 로마인들인 것이다 따라서 로마인들에게 그들에게 관심을 끌 수 없었던 구약의 인용이나 유대인의 생활습관 지명, 족보 등을 대부분 생략하고 예수의 교훈보다는 사역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능력의 주께서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음을 기록하고 있다(Tomson commentary) 이는 마가의 기록 목적에 따른 편집일 뿐이지 다른 뜻 없다
그럼에도 도올은 마치 다른 복음서에 있는 자료는 모두 만들거나 지어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4복음서 모두 각각 기록목적에 따른 강조나 자료 선택을 통해 그리스도를 온전히 증거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구주예수를 석가모니 같은 사람의 족적과 비교해 떠드는 일은 그쳐야 한다 석가모니는 사람일 뿐이다 원죄로 괴로운 인생의 고뇌를 괴로워하며 보리수나무 아래서 구도행위를 한 사람이기만 한 인사를 어떻게 하나님의 본체셨다가 참사람으로 오신 3위1체 그리스도와 동열로 논하려든단 말인가 도올은 이런 무례를 범치 말기 바란다. 구주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칭해지는 것을 모독감이나 분노했을 거라는 것도 도올의 헛소리일 뿐이다 마가 12:35-37은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심, 즉 신성神性을 입증하신 자기계시의 말씀이지 다윗의 후손임을 부인한 말씀이 아니다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 중에 오실 것은 성경 곳곳에 산재해 있고 성경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막10:47;사9:2-7;렘23;5,6;겔34;23,24;호3:5;암9:11) 오죽하면 앞 못 보는 소경인 바디메오 조차 메시야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알고 부르짖었을까(막10:47) 도올이 이점을 물고 늘어지는 건 초지일관 성경을 불신하게 하고 주예수의 신성을 제거하여 민중운동가나 지혜교사 급으로 전락시키려는 지속적 음모에 의한 것이다.
성경은 모두 사실이고 성경에 각종 허탄한 누명을 씌우는 건 도올이다. 어디다 대고 초대교회가 누명을 씌웠다느니 헛소리 하는가 도올이야말로 성경저자들에게 각종 누명을 씌우는 장본인이다 그것도 터무니없게 말이다! 그는 이렇게 떠들어 댄다 “ 예수는 결코 다윗의 후손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만들려는 마태. 누가의 담론이 얼마나 예수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예수의 억울함은 호소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겐 마가가 있다”(p.114) 하였다.
아니! 누가 몰이해고 누가 누명을 씌우고 있나 바로 도올 자신이 그 장본인이다 도올이 무슨 재주로 주예수가 다윗의 후손 아님을 증명하겠단 말인가 마태. 누가가 예수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해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당대를 목격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마태.누가가 정확할까 성경 기록 후 근 2천년이 지난 21세기를 사는 氣학도의 말이 옳을까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무슨 권세로 성경의 저자를 몰이해니 누명을 씌우니 해대나? 도올의 썰이야말로 교만과 우매의 나열 아닌가? 도올이 무기로 삼는 마가복음도 소경 바디매오의 입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부르짖고 있음을 기록해놓고 있지 않은가(10:47) 도올은 여기서 다시 예수시대에는 구약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구약이라는 문헌은 예수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구약은 단편으로 산재했으며 ...구약도 신약이 형성되어간 시기에 같이 편집되어간 것이다”(p.116) 하였는데 이건 도올이 퍼뜨리는 낭설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구약은 이미 존재했고 주예수께서도 구약을 인용하셨다(눅24:27)
토라(모세5경)는 주전 15세기 어간에 정경화 됐고 예언서는 기원전 400년경에 기록됐으며 기원전 250년 전에 이미 정경으로 인정 됐었다 기원전 190년 어간에 기록된 집회서(Ecclesiasticus) 서문에 율법서와 예언들과 또 다른 책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Wikipedia encyclopedia) 구주예수께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신 점이 구약존재를 입증하고도 남는다(눅24:44)
또 눅 16:16, 마5:17 등도 구약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도올이 극히 일부의 자유주의 비평가들에 편승해 기원 후 편집 설을 뇌까리고 있지만 설득력 없는 독백일 뿐이다. 도올은 마가1:2,3절의 이사야서 인용에 대해서도 이사야서의 글이기보다는 마가 자신의 창작이라고 하면서 신약에 나오는 구약 인용문들을 '예언의 성취'라고 하는 건 견강부회라며 나무란다(p.118) 이 또한 도올의 교만스런 말이다 견강부회라니 오해 말기 바란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의 기록이 중요한 장르를 이루고 있는 파노라마다 거기엔 하나의 오차가 없다 다만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옮길 때 의미구성상 표현 변용이 있었을 뿐이다 막1:2,3절도 이런 인용이지 도올이 말하듯 구약을 빙자한 창작이 아니다. 일점일획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구 창작이니 누명이니 해대는 도올의 영혼이야말로 누가복음 15장의 집나간 탕자스타일이 아닌가
아버지집(교회)를 버리고 세상에 나가 방황하며 마침내 쥐엄 열매 같은 지식으로 연명하려는 영혼 아닌가 이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도올도 아버지 집인 교회신앙(성경신앙)으로 돌아가면 좋으련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 교만이 충천해있을 터이라 쉽겠는가 하나님이 다메섹에서 사울을 바울 만드시듯 강권 역사 하시면 모를까!
<교회와이단> 기고문
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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