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27) 도올은 2019년 10월에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Dohol's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Mark>를 냈다 이 것은 611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인데 겉표지에 “ 마가복음은 전 세계를 리드하는 조선 종교혁명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라는 말과 함께, "The Gospel of Mark is the original, succinct, unadorned yet vivid account of the ministry, suffering, death, and the Empty Tome of Jesus." (마가복음이야말로 예수의 사역 고난 죽음과 빈 무덤에 대한 최초이면서 명료하고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보도이다) 라고 써 놓았다. 앞의 겉표지에는 한신대신대원에서 2017년 6월 1일 날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과 함께 강연했던 사진이 있고 이 책에 대한 선전문구가 있는데, “......이책은 도올의 철학적 사유를 총체적으로 압축시킨, 인류사상계에 새로운 동서융합의 지평을 제시하는 기념비적 저술이다.” 라고 새겨 놓았다 이렇게 겉표지들에 내걸려진 멘트들만 보고도 마가복음을 가지고 동서양 융합이랍시는 혼탕요리 제조해낼 것 예상되고도 남는다. 도올이 심혈 기울였다는 이 책을 들여다보자! 도올은 이 책을 김용민이란 사람이 세웠다는 벙커1교회란 데서 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했다고 한다(p.83) 아는 대로 김용민은 보수반공적 목회자들에 대한 악감정으로 목사들의 반공 설교를 모니터링 해 고소고발 하는 등 행패가 심한 캐릭터로서 그의 막말은 입에 올리기 거북한 것들이 있다 기장(기독교장로회)교단서 신학공부를 했다는 이 사람이 ‘벙커1교회’란 걸 세운 모양이고 도올이 이곳에서 강의인지 무슨 연설을 하며 이 책을 내게 된 모양이다. 도올은 자기가 한신대 교수할 때 김용민을 가르쳤다고도 한다(p.83) 김용민, 도올 모두 막말 선수들이다. 이들이 기식하고 있는 기장이란 교단도 고약한 신학 생산지 아닐까 유유상종 통하는 영들끼리의 파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도올은 이 책 서문에서 “시온성에 사는 처녀들이여” “내 영혼이 그윽이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 졌으나” 등 어렸을 때 부르던 찬송을 부르다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흐르고 억제하기 어려운 감회가 쏟아진다고 술회한다(p.23) 도올도 한 어머니의 태속에서 나온 아들로 성장했기에 당연 어머니에 대한 감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기도하며 도올을 키웠다면 마땅히 성경신앙에 충실해야 효도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운명의 야릇함일까 도올은 성경신앙 파괴 강연을 하면서 엄마생각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이러니로구나! 도올은 이 책의 서문부분에서부터 자유주의신학(Lieberalist Theology)을 칭송 한다 “19세기 서구의 신학계는 자유주의신학이 발흥하여 대세를 이루었는데, 자유주의신학을 특징지우는 것은 과학적 정신의 존중과 함께 연속성Continuity이라는 한마디다 .......신앙의 제 현상이 물리적 인과성과 연속되지 않으면 자유주의는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몸의 부활“은 우리가 관찰하는 물리적 인과현상과 연속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상식이 아닌 신화가 된다....자유주의신학은 ....20세기의 다양한 신학사조를 잉태시키는 데 공헌을 했다” 고 해 자유주의 신학의 공헌을 높이 사고 있다(p.27,28) 물론 성경도그마 파괴자 도올님이야 그놈의 자유주의신학이란 게 좋은 물건일 것이다 이것 없었으면 오늘날 도올의 성경 파괴놀이가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주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그 게 암덩어리요 신앙 해치는 괴물이다. 그 자유주의신학이야말로 성경을 ‘양식사비평’이네 ‘편집비평’이네 무슨 자료네 하면서 마귀가 성경신앙 탈취하는데 좋은 도구로 사용돼 왔다. 그 것 때문에 서양의 교회가 몰락하고 성령의 역사가 끊겨가고 있다 한국교회도 이것이 들어와 NCC교단을 비롯한 각 신학분야를 점령해 교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이 괴물을 내치지 않으면 교회신앙은 실종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만들어버리는데 무슨 수로 신앙을 지켜내나? 도올은 자유주의신학이야말로 과학적 정신의 존중과 함께 신앙과 상식은 물론 신앙의 테제들이 역사와 과학과 학문과 물리적 현상과 문화현상의 제반 테제들과 연속시키는 데 공헌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이성의 자율성을 제고시켜 20세기의 다양한 신학사조를 잉태시켰다고 한다(p.28) 도올이 자유주의신학이 만들어낸 그 ‘연속성’continuity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게 여차하면 하나님의 초월적 계시를 땅의 것으로 끌어당겨 유야무야시키고 범벅을 만들어버린다 “신앙의 제 현상이 물리적 인과성과 연속”된다는 것은 한쪽만의 얘기다 땅의 것을 매개로 하되 초월적 역사임을 유념해야 한다. 연속성이란 미명하에 초월성을 약화시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역사를 단지 인간의 내적 또는 상황적 경험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게 그 연속성Continuity놀이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초월적 계시와 구원역사를 땅의 것과 섞어 망가뜨리고 말겠다는 심보의 표출이다. 도올이 부활을 물리적 인과현상과 연속시킬 수 없기 때문에 ‘신화’로 취급하겠다는 토킹은 영적 우매자의 자화상이다 부활체의 신비를 어떻게 불신자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구원 받고 성령의 감동감화가 있어야 믿어지는 게 부활의 신비다 부활을 물리적 연속성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신화’로 취급하겠다? 불신자 도올의 물리적 인식구조 안에 들어오는 거라면 성경적 부활일 수 없다 무슨 헛것을 볼지언정! 도올은 소위 성경 비신화화(非神話化,demythologizatin)의 주역인 불트만(Rudolf Bultmann,1884-1976)을 무척이나 띄우고 있다 불트만에 의해 “성경이 박살났다”는 등 뇌까린다.(p.29) 성경을 박살내고픈 도올의 심보를 불트만으로 대리충족 하는 모양이다. 불트만은 현대신학에 칼 바르트와 함께 거장노릇 하는 인사다 바르트가 조직신학인데 비해 이 사람은 성서신학이랍시며 성경을 마구 난도질해 교회신앙에 심대한 타격을 준 인사다 성경의 주요 기사를 신화로 취급하고 그 신화 속 메시지만 교훈으로 받자는 투의 인본적 발상으로 일관했다 이는 19세기말 브레데(William Wrede,1859-1906)의 메시야비밀 썰 등의 수작으로부터 시작돼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1887-1965)의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연구를 거쳐 불트만의 소위 ‘양식사학’Formgeschichte이란 것으로 꽃피워진 것이다 도올이 이런 전통을 칭송하고 있지만 이는 성경 파괴자들에게만 유의미 한 것이고 신실한 성도들에겐 해로운 한담들이다 교회 신앙, 즉 성경신앙의 파괴요 인본주의적 접근으로 성경을 해체시켜 불신앙으로 이끄는 괴력壞力이다. ‘편집비평’이다 ‘양식사’다 요란하지만 그 결과는 허무요 불신앙이며 계시의 말씀을 거부케 하는 불신앙 촉진운동들이었다. 도올은 이 성서신학이란 게 우리나라에 제대로 도입되지 않고 환영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그 이유는 성서신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 ‘교회장사’가 잘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p.30) 고약한 표현 아닌가! ‘교회장사’라 그랬는데 진짜 악덕 장사꾼은 도올이다. Q자료니 도마복음이니 각종 서책을 써 갈겨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을까 장사꾼치고 질 나쁜 상인이다 맨 교회비판 성경비판 기독교 비난으로 우매한 대중에게 인기 끌며 책 팔아 돈벌이 많이 했을 테니까 자신의 행각을 성찰해야 맞다 각종 악담으로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을 훼방함으로 번 돈이 좋은 업(業)으로 작용할까? ‘교회장사’라니 도올의 반교회, 반 성경 마케팅이야말로 질 나쁜 비즈니스 아닌가? 그러면서 도올은 조직신학자 칼 바르트가 열열한 공산주의자였으며 불트만이야말로 매우 보수적이며 경건한 실존주의자였다고 한다(p.31) 칼 바르트의 사회주의적 요소와 여러 미흡한 부분을 비판하더라도 그가 자유주의 신학을 맹폭한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 불트만의 사적 생활이 경건하고 보수적이었다 해도 우리는 개인의 사적 삶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경건하고 보수적인 생활한 자들 쌓이고 쌓였다 공인의 공적 랑그Langue를 문제 삼는 것이다. 불트만이 신앙과 신학이 어떻게 보수란 말인가 그 사람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학도들이 성경을 없이 여겼고 그로 인한 교회의 영적손실이 얼마나 심대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도올은 성경해체 작업 가들을 칭송하며 대단한 업적인 것 마냥 떠들며 자기 비즈니스 하려 하지만 속지 않는다. 도올은 불트만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르트의 신학은 공허하고 헛소리가 대부분이며 이런 바르트 류의 조직신학을 막되 먹은 ‘구라’ 라고 험한 말 쏘아댄다(p.31) 하지만 조직신학을 도외시한 성서문헌 연구란 오류에 빠지거나 사소한 문자적 집착에 따라 엉뚱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다양한 문헌상의 자료들을 통전하고 조직화해 도그마를 만들어내는 지적 체계화(systimatize) 작업이 없으면 이단으로 흐르거나 주관주의적 이데올로기화 할 수 있다 조직신학에 대한 도올의 안티심리는 교회신앙의 해체를 학수고대하는 그의 심보에서 비롯된 소산일 뿐이다 불트만을 보수라고 둘러대는 도올에게 지적 정직성을 만나기 어렵다 신학에서 보수가 되려면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를 믿어야 하고 구주예수 십자가 대속과 삼위일체를 믿어야 보수 된다. 성경도그마 파괴자요 성경을 갈기갈기 해체시켜 불신케 한 학자가 어떻게 보수가 되나? 불트만은보수일 수 없는 신앙파괴 아이콘이었다. 도올의 이러한 심보는 바울신학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바울이 로마서 첫 부분에서부터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말하는 것을 시비하면서 바울이 주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합하여 ‘십자가’라는 상징체계를 만들었고 이 상징체계를 가지고 인간을 죄인으로 정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인간이 죄인이냐고 반문하는가 하면 인간의 죽음을 원죄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게 동방의 상식인에게는 황당하게 들릴 뿐 아니라 심지어 ‘구라’일 수 있다며 이야말로 바울의 절묘한 기획이라고 한다.(p.41) “ 자아! 바울의 구라는, 우리 보통사람이 한번 그 구라의 트랙에 빠지게 되면 영원히 벗어나기 힘든 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문해야 한다. 인간은 과연 죄인인가? 원죄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존재인가? 인간이 죽는다는 게 그렇게 과연 나쁜 것인가 과연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Zein zum Tode'인가? 삶과 죽음, 하나님과 인간 그 양자를 모두 해탈해버리는 양망兩忘의 경지를 지양하여 도道와 하나가 되는 혼일渾一을 추구하는 동방인에겐 아무래도 낯선 논리다.” 라고 한다(p.43) 여기서 도올은 바울의 복음을 ‘구라’로 취급하면서 인간이 죄인이며 죄의 값으로 죽어야하는 존재란 도식에 항의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삶과 죽음이란 양자구도를 해탈해버리고 혼일渾一 하자고 한다. 이 혼일이란 흐릴 ‘혼’에 하나 ‘일’ 자로서 모든 걸 섞고 혼합해 하나로 파악하자는 괴설인데 이야말로 허황된 꿈일 뿐이다 소위 동양적 사고라면서 모든 구분을 없애고 주객이 하나요. 자연과 인간도 하나요. 물질과 정신도 하나일 수 있다는 망상념을 일삼는 범신汎神적 미혹인 것이다 만유동근萬有同根 범아일여梵我一如는 힌두교 불교 할 것 없이 동양학이나 자연종교가 함께 추구하는 경지이지만 이를 추구하려는 수고야말로 헛된 고생일 뿐이고 나중에는 허무로 끝나거나 어떤 망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허황된 꿈이다 도를 닦는다면서 애쓰다가 우주의 기를 받았느니 우주와 하나가 됐다거나 하면서 정신이상 된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 인간은 인간이고 자연은 자연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다 이를 뒤섞어 하나로 파악해보자는 건 인간이 피조물이요 유한자임을 망각한 시도일 뿐이다 도올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신이 되 보려 하거나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께 도전해보려던 결과가 어떠했는지 숙고해 이런 허황한 낭설 삼가기 바란다. 도올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하면 알 것이다 인간은 원죄적 본성에 시달리는 존재요 죽음과 함께 심판받을 자요 복음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지 않겠는가? 악한 영의 지배하에 있으면 셀프 신이 되거나 모든 걸 깨달아 도통하겠다는 허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 결과는 허무일 뿐이다.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고 탕자가 되어 방황하는 영혼이 마구 성경을 비방하고 교회를 난타하며 죄의 바벨탑을 쌓는 건 잠시 허용된 시간 안에서만 작동하다가 정하신 때에 그 값을 치르게 된다. 세상에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고 비난한 자의 결말이 복될 수 없다 내세에서라도 값을 치러야 할 카르마다(계22:19) 도올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 한다 “ 더구나 죽었다 살아난다는 부활의 사태는 인간 예수의 삶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나중에 케리그마의 영향으로 삶 속에 부활이 침투하는 사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하여 부활을 케리그마(kerygma, 사도들의 선포)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얘기란 주장을 한다(p.49) 아울러 그는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을 픽션화된 것이고 신빙성이 없다면서 바울은 부활의 발견자가 아니고 부활의 해석자였을 뿐이며 어떻게 개종이 이뤄졌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한다((p.61) 하지만 이는 도올의 억지 방송이다 바울이 개종하게 된 동기를 모른다거나 부활의 발견자가 아니란 게 말이 되는가? 바울은 교회를 잔해하고 심지어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행7:58)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던 유대교 확신 자였다(행8:1) 원시 기독교인들에 대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교인을 만나면 남녀불문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고 다메섹의 각 회당에 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파하자 사람들이 놀래었고 그럴수록 바울은 더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했다(행9) 이보다 더한 개종과정 설명이 어디 있겠으며 이 설명에 무슨 부족함이 있단 말인가 어째서 도올은 분명한 성경 기록을 보면서 바울이 부활의 발견자가 아니고 어떻게 개종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하는가? 당시를 살고 목격한 증인들이 기록한 성경보다 더 정확한 증언이 어디 있겠기에 허황된 의심과 상상을 하는가? 바울이 부활의 목격자가 아닌데 순교까지 한단 말인가 바울은 고전15장 8절에서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하여 부활의 목격자임을 증언하고 있음을 모르는가? 도올은 고전 15:3의 “내가 받은 것”을 논하면서 이것을 설명하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하신 내용들을 바울이 개종 이전에 엄존한 교회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라면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내용이 ‘웃기는 표현’이라고 한다(p.63) 또 당시는 구약성서도 신약성서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없으며 이는 단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명제와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 는 명제를 절대화시키고 추상화시키기 위하여 ‘삽입한 모호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는가 하면 예수의 죽으심의 구체적 사태를 은폐하기 위해 비역사화 시키고 있으며 복음서의 모든 선포들이 이와 같은 형식이라고 나무란다(p.63) 우선 도올이 당시에 구약도 신약도 없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구약이 왜 없었단 말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5경과 선지서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된 부분들을 설명해주셨다(눅24:13-35)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이사야서 읽는 것을 빌립이 설명해주고 세례를 했다(행8:26-40) 아니! 도올은 구약문서 형성과 전승과정과 신구약 중간사도 모르면서 이글을 쓰고 있나? 구약이 없었다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그리고 신약도 형성과정에 있던 시기였다 정경으로 되기 전 이미 사도들의 편지형식 문서들이 회람되고 있었으며 고린도전서만 해도 바울이 3차 여행 중 AD55년 에베소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정경으로서의 완성은 아니지만 사도들의 서신들이 회람되던 시기였다 이런 팩트들을 무시하고 마구 쏟아내는 도올의 말이야말로 공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웃기는 표현’이니 ‘은폐를 한다’ ‘삽입했다’는 등 둘러대는 기법이 너무 허술하다 이런 것들은 도올의 마음이나 의식에서 발생된 것일 뿐 성경과는 무관한 토크들이다 도올이 문제삼고 있는 "바울이 받은 것"(도올은 ‘전해 받은 것’이라고 한다)은 이미 기존하는 초대교회의 케리그마가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받은 것이라 봐야한다 갈1:11에는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절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하였다 고린도전서의 전승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적 계시로 말미암은 것으로 봐야 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봐 마땅하다(Oxford Bible interpreter) 도올은 바울이 부활 발견자가 아니고 초대교회가 만들어낸 모호한 케리그마를 가지고 기독교를 만들었다는 편견을 퍼뜨리고 있지만 이것은 도올 자신 논리에도 맞지 않다 앞서 언급한대로 도올은 바울이 주도적으로 케리그마를 만들었고 그 바울의 영향하에 복음서들이 쓰여졌다고 했으면서 여기서는 반대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 뇌의 과부하로 오락가락 하는가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는 이렇게 출발에서부터 왜곡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마가복음은 기본적으로 “스토리Story문학이지 히스토리History가 아니다” 라면서 “예수의 삶이 그 자체로 하나의 복음이라는 것을 선포하려는 새로운 개념의 유앙겔리온 문학이다” 라고 선동한다(p.74) 그러면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케리그마Kerygma는 반대이고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는 서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케리그마를 걷어내야 역사적 예수, 인간 예수가 보인다.”고 뇌까린다(p.74) 이는 도올의 고약한 심보에서 발아된 산물이다 아무리 역사적 예수를 탐구한다고 해도 그 역사적 예수를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자료가 케리그마(초대교회 사도들의 선포) 뿐인데 복음서, 즉 케리그마 버리고 어디 가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자료를 찾아낸단 말인가 이런 태도는 필시 영지주의 이단이나 신뢰할 수 없는 고대문서들을 끄집어내 들이댈게 뻔 할 것이다 복음서의 모든 내용은 서로 보완 하면서 역사적 예수를 증언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를 대립시키거나 싸움하게 만드는 건 순전 도올이나 자유주의 성경비평학도들이 즐기는 망상일 뿐 실체도 가치도 없는 무모함이다. 복음서를 History가 아니라며 Story로 만들어보려는 도올의 욕망은 그야말로 dog dream일 뿐이다 성경, 즉 복음서가 히스토리가 아닌 스토리일 뿐이라고? 도올의 어머니는 그 스토리에 불과한 것을 믿고 평생 새벽기도 하셨나? 도올이 p.77에서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를 구분해서 역사적 예수가 메시야의식이 없었고 종말론 신앙이 없었으며 죄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며 단지 선생Teacher였을 뿐이란 썰도 글자그대로 자작 스토리일 뿐이다 여기에 예수께서 ‘단지 선생’였을 뿐이란 워딩이야말로 도올의 심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서 자주 언급했듯이 도올의 목표는 구주예수를 하나의 선생으로 전락시키는 거다. 도올이 큐Q자료란 걸 애착 하는 것도 바로 구주예수를 격하시키려는 욕망에서 하는 것임을 부인 못할 것이다 여기서 도올이 역사적 예수랍시며 써 댄 항목들은 단지 허구Fiction일 뿐이다 정 반대로 읽으면 된다. 도올은 복음서 텍스트 자체를 그대로 보는 게 아니고 구주예수를 격하시키려는 욕망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뭘 모르는 군중들의 눈을 가려 구주예수 믿음을 뺏고 그저 단지 지혜나 가르친 선생일 뿐이란 도올식 마케팅을 한다. 이런 선동으로 인기 끌고 책은 팔릴지 모르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지은 죄의 카르마로 인한 (금세와 내세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믿음 떠난 사람에게 말해 무엇하랴만 구주예수는 윤리도덕 가르치려 오신 분이 아니시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영생주시기 위해 화육化肉,Incarnation하신 구주이시며 성부하나님과 함께 만유를 창조하셨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분 없이는 된 것이 없는 창조주이심을(요1:3) 잊지 말고 언젠가는 회개하여 이 기독교관련 나쁜 책들을 모두 없애고 어머님이 믿었던 성경신앙을 회복하기 바란다. 케리그마는 하나의 오류도 없다 성령하나님의 영감으로 사실들을 증거한 오리지날 복음인 것이다 이 케리그마와 복음서의 자료들 간 충돌이란 없다 다양한 표현들로 복음, 즉 그리스도 구원의 역사를 잘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양식비평이니 편집비평이니 하는 수작들로 복음서의 권위를 훼손하려 난리지만 바람을 잡으려는 헛수고에 불과한 일이다. 불트만Bultmann은 “역사적 예수는 픽션일 뿐”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초대교회의 케리그마까지”라 했는데(p.82) 이런 망상들 모두가 케리그마 불신에 기인한 것이다 초대교회 사건의 목격자들에 의해 증언된 케리그마를 의심하고는 어디 가서도 구주예수의 진면목을 알아볼 길이 없다 복음서의 기록, 즉 케리그마를 신뢰하는 것이 구주예수의 진면목을 아는 첩경이다 이 오리지날 자료를 의심하고 어디 가서 뭘 찾아낸다는 건가 이러다가는 결국 이성의 역설적 교란행위로 불신앙에 떨어져 횡설수설 하게 마련이다 도올이 바로 그 모델인 것이다 얼마나 현학적인 것처럼 나대지만 결국 허무와 불신앙,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끝나게 마련이다 도올은 이 책을 벙커1교회라는 데서 토킹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일반교회의 설교들이 인생잡설이 많은 데 비해 자기는 본문에 충실하게 한다고 했다(p.83) 누가 인생 잡설을 논하는지 모를 일이다 성경 불신케 하고 대신 동양철학이나 기氣철학 같은 걸 늘어놓는 게 텍스트에 충실 한 건가? 일반교회의 설교에 예화가 들어가는 걸 인생잡설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설교 중 예화는 성경을 믿게 할지언정 불신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올의 썰이야말로 성경 도그마 파괴하는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격인데 이게 인생 잡설이 아닐까? 그러면서 일반 교회의 설교가 고작 20분인데 자기는 두 시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시간 듣고도 시간 잡아먹었다고 느끼는 청중이 없다고 했다(p.83) 하긴 사람이란 이단 잡설에도 심취하면 영혼이 끌리고 재산까지 팔아바친다. 연예인이나 폭력드라마 보면서도 종일 또는 밤 새 심취 하는 게 인간이다 도올이 성경 까고 교회 까대니까 기분 좋게 즐겼겠지 험한 말 토하면서! 하지만 그 즐김이 영혼 망조요 구원의 복음 상실이며 회의skepticism에 빠지거나 탕자가 되는 직방코스 아닌가! 도올의 집회에 참여해 그 장광설에 심취한 영혼들이라면 불쌍한 영혼이요 집을 나가 길 잃고 다니다 험한 怪者에게 낚인 영혼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벙커교회란 곳에 도올의 말 들으러 가는 인사들은 도올의 궁극적 지향점이 뭔지 숙고해 비판적 분석을 들이대기 바란다. 도올은 기독교가 죽었다고 하면서 니체의 말을 흉내 낸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말 한다 교회는 죽었다”라고 외친다(p.87) 그러면서 “이미 기독교는 생명을 상실한 종교이고 교회라는 조직의 권력이나 재정에만 전념한다”고 했다(p.88) 이 또한 도올의 교만한 발설이다 교회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올이 어떻게 아나? 어떻게 하면 산 것이고 어떻게 하면 죽은 것인가 인간의 불완전성과 죄성은 아담 이후로 계속됐으며 앞으로도 구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된다. 항상 명암이 섞이고 긍정부정이 함께하며 삶과 죽음이 함께 믹스된 게 현실세계다 교회의 무엇이 산 것이고 죽은 것은 무엇인가 도올이 판별하는 저울이라도 가지고 있나? 아마 이는 교회에 대한 도올의 증오심에서 나온 습관적 멘트일 것이다 그럼 왜 도올은 그렇게 교회를 미워하나?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교회는 다녔으나 영혼구원이 이뤄지지 않고 육신적으로 종교행사에만 연속됐을 때 보통 그런 안티맨이 나오기 쉽다 왜냐면 교회에 오래 다녔으나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한 데 대한 그 앙갚음인 것이다 보통 교회에 대한 지독한 안티맨들은 이런 경우에 나오기 쉽다 그게 교회 목회자가 구원의 복음을 정확히 증거 하지 못해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이 태만해서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리되기 쉽다 도올은 어머니의 기도와 함께 교회에서 자랐는데도 영혼구원이 안됐기에 이런 액션을 하는 게 아닐까? 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그 영혼이 예수 그리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과정이 있어야한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 종교행사에만 몰두했을 뿐 내면에 구원역사는 안 일어났음으로 인해 영혼의 고통이 있게 마련이고 이런 고통이 교회와 성경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도올이 자유주의신학 온상지인 한국신학대학엘 들어가 어린 나이에 성경비평학을 접했던 일도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는 한신대를 중퇴하고 고려대로 가버렸지만 성경비평학을 접한 영혼에 깊은 불신이 새겨지면서 한조각 신앙의 흔적마저 버리게 되지 않았을까? 여하간 어머니가 새벽기도하며 키운 아들이 교회 해체에 몰두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올은 “예수 믿는다는 건 뭘 말하는 거며 예수의 무엇을 믿는가? " 질문 던지면서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한 ‘말씀’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궁극적 의미는 예수가 한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며 그 말씀에 담긴 뜻에 따라 그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한다.(p.91) 여기서 우리는 다시 도올의 속내를 확인케 된다. 영혼에 구원이 이뤄지려면 먼저 예수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나의 죄를 십자가 보혈로 대속하신 구원자로 믿어야 영이 거듭나고 구원 받은 영혼이 된다. 구원받은 자아가 말씀을 믿게 되는 것이지 이런 영혼 구원의 과정이 없이 주의 말씀만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라고 하면 영혼이 구원받을 기회를 잃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어떻게 잘될 거라는 막연한 스토리가 되고 만다. 이는 구원의 복음을 희석시키고 윤리도덕운동으로 변질시키는, 세상의 널려있는 윤리담화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도올의 변치 않는 목표가 있다면 구주예수를 윤리운동가나 지혜교사 또는 인권운동가 급으로 변질시키는 일이다. 앞서 말했 듯이 그가 큐Q자료와 도마책에 올인 하는 것도 이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 무모한 일을 언제까지 하시려는지! 윤리도덕 교사나 민중운동가, 지혜교사는 쌓이고 쌓였다 자칭 타칭 이런 인사들 부지기수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과 영광을 함께하시는 성자하나님이시고 죄 없으신 화목제물 되신 대제사장이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신 유일구세주이시다. 성경 66권의 증거를 받으시는 참신이시며 참인간이신 주님이신 것을 도올은 유념하고 구주예수의 신성神性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 그쳐야 한다. 이런 무모한 행위가 통할 곳은 그가 나팔 불고 있는 벙커1인지하는 곳에서나 통할까 정상 그리스도인에겐 괴악설怪惡說로 취급당할 뿐이다. 그는 그 벙커1이라는 데서 설교란 걸 하는 모양인데 설교란 삼위일체와 구주예수의 십자가 대속(代贖,Atonment)이 그 중심에 있다 대속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윤리선생 정도 취급하는 자가 어떻게 <설교>란 걸 한단 말인가 그런 용어 쓸 자격이 안 된다 그냥 ‘시중잡담’이거나 ‘안티교회 썰’ 정도면 적합 표현 아닐까 그 벙커1인지 하는 곳에서는 사도신경을 모방한 신앙고백서란 걸 낭송하는 모양이다 이것을 도올님이 만들었다는데 그 내용 중엔 그리스도에 대해 “억압과 고통 속에 있는 민중에게 하나님나라를 보여주셨으며” 하는가 하면 “남과 북이 하나 됨을 믿으며 전 인류가 하나님 품안에서 하나 됨을 믿습니다.”라는 게 있다.(p.94) 이런 내용들에는 그리스도를 혁명가나 민중운동가로 여기려는 불순의도가 담겼다 “남과 북 전 인류가 하나 된다’는 표현도 범신론적이거나 사회공산주의로 하나 되자는 망상적 문구다 도올의 좌파적 행태야 널리 알려졌지만 교회란 곳의 신앙고백문이랍시는 문구에마저 이런 붉은 족적을 박아놓고 있다. 한국교회의 공해 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 벙커교회란 곳에서 행해지는 이런 자신의 썰이 하버드나 시카고 신과대학원에서 소수 정예 엘리트와 세미나를 할 수준의 내용이라고 셀프 마케팅도 한다(p.92) 글세다! 하나님 말씀 비난하고 허황된 이데올로기로 채색된 지식들 교환 장소인 그런 대학들에서 용써 봐야 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지 모르나 구원 받고 성령의 감동감화로 사는 성도들에게는 영적으로 어두워진 자들의 셀프파티쯤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도올의 자부심을 누가 키워줬나 도올을 감싸고도는 자유주의 신학도들과 도올사상을 저격하지 않고 방치하는 목회자들, 그리고 뭘 모르고 부나방처럼 몰려들어 박수치는 우중愚衆들 책임일 텐데 그 중 책임 비중 큰 사람들은 목회자들과 신학도들이다. 목회자들이 왜 있나? 신학교와 그 선생들은 왜 있고?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함양하며 교회신앙 즉, 성경신앙에 위해를 끼치는 이단이나 적대세력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함 아닌가? 이리가 양을 해치려할 때 물맷돌 던져 이리를 치고 양 무리를 지켜내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칠 때 다윗이 분연히 일어나 물리쳤다 도올이란 자가 나타나 방송과 책과 각종 매스컴으로 교회신앙을 능멸하고 있는데 왜 꿀 먹은 벙어리고 도리어 그를 부추기는 행위까지 하는가? 모두 이상한 술에 취했나? 눈이 어두워져 식별이 안 되고 있나? 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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