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26) 도올의 -도올의 예수전- 이란 부제가 붙은 책 <나는 예수입니다>는 아주 고약한 책인데 자신이 2천년의 예수였다는 망상 겸 착각을 하면서 이를 써 댄 모양이다 망상이거나 무슨 정신성질환 상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발상이 떠오를 것인가 자기가 예수라며 중얼거리다니 ! 그의 괴담을 들어보자! “ 나는 예수일 뿐입니다 나는 사람일 뿐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어찌 죄가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죄는 인간 존재의 허약한 한계입니다 그것이 없을 수가 없지요 ” 하여 주 예수께서 죄를 가진 인간이었다는 낭설을 퍼뜨리고 있다(p.68) 이는 성경의 구속(求贖)역사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것이고 성자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하신 은혜에 대한 악평이며 훼방이다 성경의 대 전제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누구나 죄인이다 그리고 이 죄는 스스로 제거할 수 없는 원초적 본성이다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성자를 보내셨다 요3:16은 성경 구원의 복음을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면 죄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만족시킬 제물은 흠과 티가 없어야한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무죄의 인격이시며 참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사 죄 없는 참사람으로 오신 유일 구주인 것이다 죄가 있으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고 하나님 받으실 화목제물일 수 없다 도올이 아무리 구주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참사람 되심을 없애거나 해치려고 해도 이는 바람을 잡으려는 헛수고이며 급기야는 자신의 영혼에 심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패착일 뿐이다 주 예수께서는 근본이 하나님과 한 본체이시며(빌2:6) 만물을 아버지와 함께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셨다(요1:3) 아울러 성경 히4:15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 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시고 또 같은 히브리서의 9:28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셨다 아담 이후로 이 세상에 나온 모든 인간은 원죄의 사슬에 묶인 자들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오직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며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롬3:9-20) 이게 인간의 죄의 실상이며 이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고 십자가 지셨으니 은혜 중 은혜가 아닐 수 없건만 도올의 눈에는 그리스도가 죄인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도올은 다시는 이런 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미 뱉어놓은 말들을 기록한 서책들도 당대에 폐기하는 게 죄를 덜하는 작업일 것이다 천상천하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이 없고 오직 구주 예수만이 구원자 되시는 이유는 그분은 근본 하나님이시며 죄가 없으신 유일한 사람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으며(사53:6) 이렇게 유일한 구주이시기에 친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신 것이다(요14:6) 세상의 종교들은 모두 자기의 義로 완전해지거나 구원 받으려고 하지만 인간 스스로는 原罪의 흔적을 지 수 없고 평생 道를 닦아도 불완전 한 죄인으로 남게 마련이다 도올이 그리스도를 罪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보려는 욕망은 부질없는 짓이고 자기 발을 찍는 일이다 사탄이 좋아할 일을 골라서 자행하고 있다 성한영혼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무흠한 제물 되심과 참되심을 해치려 든단 말인가 사탄이 비밀리에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들면 사악해지고 성경과 구주예수의 구원 역사를 훼방하지 못해 안달 낸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리에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빼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십니다.“(시31:4) 이 기도가 도올의 것이 돼서 어둠의 올무에서 빠져나오기 바란다. 또 도올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罪人으로 보는 성경의 교리를 매우 싫어한다. 悔改(회개)라는 말도 인간을 죄인으로 봤을 때 가능한 개념이라며 함께 거부한다. “ 나는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 따라서 회개하라는 명령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나는 메타노이아(metanoia,회개) ,즉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서 인간은 죄도 없고 회개할 것도 없으며 성경의 회개란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p.75,76) 도올의 말대로 과연 인간이 죄가 없는 존재이며 생각만 바꾸면 되는 자일까 이는 성경은 물론 우리의 경험으로도 동의할 수 없는 견해다 인간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죄인됨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도올은 바울의 로마서 7장을 숙독하면서 자아를 그 말씀에 비춰보면 어떨까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 (롬7:19,20,24) 바울의 이러한 절규는 인간이 원죄의 사슬에 속박 당한 자이며 스스로 이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도올은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인가 아닌가”
양심이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자신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유한존재임을 절감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해지거나 의로워질 수 없다는 선언이 성경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예임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대속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설 죄인인 것이다(롬3:23-26) 도올의 인간 이해는 성경과 무관한 인본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인간이 죄인이 아니고 스스로 완전해지거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존재라면 성경이 없었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도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도올의 기독교관을 나무라자면 끝이 있으랴만 도올은 그의 책 여러 곳에서 성령(聖靈)에 대한 낭설도 퍼뜨리고 있다
“ 프뉴마(pneuma,성령)가 고귀한 성령도 되고 더러운 귀신도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기(氣)입니다 이 氣는 바른 운행의 길속에 있으면 청기(淸氣)가 되고 잘못된 운행의 길속에 있으면 탁기(濁氣)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p.84) 도올이 氣철학도인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 세상의 흔한 氣놀이에 거룩하신 성령을 끌어드리려는 망동을 해야만 하는가. 도올 같은 인사들이 말하는 氣란 뜬구름 잡는 허상이요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자신이 무슨 氣를 받고 있다는 집착 있으면 그것일 뿐이지 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거기다 끌어드리는 구차스런 일을 하는가 성령은 기가 아니고 제3위 여호와이시고 하나님의 영 그 자체이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신 한분 하나님이신데 도올은 성령을 氣로 취급하려는 망동을 삼가기 바란다 동양학 쪽에서 언급하는 氣란 그저 단전호흡에나 쓰는 물건이 아닌가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의 신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 같이 성령도 하나님이신 것이다 창조사역에도 성자와 함께 참여하셨으며(창1)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심 잊지 않아야 한다(고전2:10) Luhah, Pneuma가 여러 용도로 쓰인다 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이리저리 섞으려는 작태는 그저그런 저급독백일 뿐이다 또 이 책 132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연기적을 베푸신 것에 대하여 시비하고 있다. “자연기적은 대체로 초대교회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주관적인 환상이나 목격자들의 메모리나 부풀려진 증언에 의한 것들이 많습니다.” 했다 도올은 뭐에 홀린 모양이다 자기가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있었고 예수였다고 착각하는 정신성질환을 겪는 모양인데 그런 이상한 상태에 몰입했더니 예수는 아무 자연기적을 행한 것이 없었는데 주변인들이 말을 옮기고 하는 과정에서 부풀리고 조작했다은 게 보이던가? 도올은 시간공간을 초월해 날라다니다? 초인인가? 최면술사인가? 유체이탈해서 활공하는가? 당시 주예수의 기적을 기록한 누가의 성경 기록 매너를 보면 “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하였다(눅1:3) 도올은 성경 기자들의 세심한 매너를 배우고 의심 거두기 바란다. 누가는 당시 의사였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지성이었다. 그 모든 일의 근원을 자세히 살펴서 붓을 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2천년 후 각종지식으로 오염되고 성경에 대한 안티감정으로 가득한 도올의 잡담이 옳겠는가 성령의 감동으로 현장을 목격한 성경 저자들의 기록이 옳겠는가 무엇이 진실일지는 보나마나다
이 지구상에 성경처럼 오묘하고 진실 되며 정확한 하나님의 계시는 다시없다. 성경을 해치는 비평가들의 파괴행위를 따라가면 필망일 뿐이다.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이성인데 이성이야말로 그 자체가 원죄의 영향권을 벗어날 도리 없는 한계적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행하심은 창조주 되시며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시는 사역이어서 일반 사람들이 행하는 유사 기적 행위와는 다른 차원이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거나 자연을 명하여 복종케 하심은 아버지와 함께 만유를 창조하신 성자하나님의 기적 행함이신 것이다 만일 이런 자연기적이 없으셨다면 주 예수께서는 단지 지혜를 가르치는 스승이거나 윤리적 교사 정도뿐일 것이다 주예수의 기적 행하심을 부인하고 왜곡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도 없고 아무 설득력 없는 메아리다 구원 받지 못하고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는 사람이 성경을 논하는 것은 애시당초 허공을 치는 일이요 바다에서 쟁기질 하는 헛수고다 성경은 인류의 보편적 재산이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말씀이다 구주예수의 보혈의 대속하심을 믿고 영접하여 성령을 모신 성도가 아니면 성경과는 무관한 영혼이다 도올의 영혼이 진정 구주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 받았다면 결코 이런 낭설을 퍼뜨리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성경 뒤적거리면 악령이 찾아와 속삭이며 유혹한다. 인간은 초자연적 실재에 약하다 사탄이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여 영혼을 갈취한다. 성경을 비판하고 다니는 영혼은 필시 악한 영의 침노를 받고 그 영의 의지를 대행한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하신대로 (고후4:4)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게 마귀의 일이다 도올의 성경계시 파괴는 도처에서 반복된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오병이어 기적 왜곡은 이 책에서도 반복해 등장한다 그는 오병이어에 대해, “ 사람들은 이 설화가 초대교회에서 날조된 이야기라고 합니다 ....마가는 이 이야기를 어디선가 수집했을 것입니다 .....항상 얘기는 부풀려지게 마련입니다 ...5천이니 4천이니 하는 것은 양식적 표현에 불과 합니다 궁극적 사실은 많은 사람이 적은 음식을 나눠 먹었다는 그 ‘나눔’의 사실이고 모든 사람들이 개방된 자리에서 공동식사를 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의 천국운동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나의 천국운동은 ‘개방된 공동식사’(open commensality)입니다 개방된 공동식사 그 자체가 교회공동체의 궁극적 의미이겠지요”
하여(p.160-162) 오병이어가 그냥 많은 사람이 함께 먹었다는 것 뿐인데 이를 부풀려 기적처럼 보도한다는 투다 도올은 창조주이신 성자하나님이 이땅에 오사 신성(神性) 입증을 위해서도 기적이 필요하며 이를 행하심으로 만유의 주관자이시고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신 일을 모르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제거하고 오로지 그저그런 선생의 하나로 격하시키려는 나쁜 생각인 것이다
오병이어는 4복음서 모두가 보도하고 있는 기적기사다 여기에 도올 같은 작자가 끼어들어 뭐 왈가왈부 하거나 헷갈리게 할 이유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면 도올의 말대로 지혜의 스승이거나 윤리도덕 교사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천만외다! 주예수는 요한복음 1장 그대로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다 “ 이 말씀(Logos)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하신 그대로니까 도올은 하찮은 글발이나 경박한 언사로 거룩한 계시에 대들지 말기 바란다 도올은 주지하는 대로 교회에 대한 증오가 많다 “ 더구나 나는 교회 같은 것을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했다(p.183) 앞서 말했지만 주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고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심으로 친히 교회를 시작하셨다(마16:16-18) 그럼에도 도올은 엉뚱한 망상을 동원해 마치 교회가 인간들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것 마냥 증오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p.183) 그는 또 “ 마가는 내가 박해를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말했다고 써 놓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초대교회의 담론이 반영된 것이며 나의 담론의 핵심은 수난에 있습니다 ....또 부활해서 뭐 하겠습니까” 하여 구주예수의 부활사실을 교회가 만들어낸 담론인 것 마냥 떠들고 있다(위, 같은 페이지) 도올은 마음 가다듬고 자신은 왜 이렇게 복음과 구원 영생의 소망에 태클을 거는지 성찰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혼자 그런 생각이면 입 다물고 셀프독백 하든지 할 것이지 왜 사방에 방송하고 책으로 써 내고 난리인가 구원의 복음, 즉 영혼구원과 부활의 소망이 그렇게 미워 죽겠는가? 성경계시와 복음이 그렇게 어떤 氣철학도에 농락당하고 말 정도로 보이는가? 도올 당신이 부활과 기적을 부인한다고 그게 씨알이나 먹힐 줄 아는가?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입맛엔 고소할지 모르나 택하심을 입은 성도에겐 웃기는 썰일 뿐이다 평생 새벽기도 하신 어머님 일생을 이렇게 신앙파괴와 성경비난으로 보답할 셈인가 “ 부활해서 뭐하겠습니까?” 라고 하셨나? 당신은 구주예수의 부활사실이 그렇게 장난거리로 보이나? 사람의 심령이 어두워지면 나귀만도 못할 때가 있다 발람이 못 보는 천사를 나귀는 봤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봤지만 발람은 마음눈이 어두워 나귀만 두들겨 팼다 (민22)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도 악한 마음이 들어가거나 사탄의 영에 잡히면 동물보다 더 패역하고 어두워 악해진다. 도올은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크신 분인지 다음의 말씀들을 상고하고 망령된 언사 삼가기 바란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 하느니라“(벧전3:22)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 하더라“(계5:13,14) 여기에서 어린양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사 십자가 보혈로 대속구원을 이루신 주 예수님이시니 성부 하나님과 동격으로 찬양 받고 계신다. 그 영광을 직시하기 바란다. 도올은 영생 얻는 길에 대해서도 엉뚱한 반 성경 발설을 하고 있 다 복음서들에 나오는 영생 얻기 위해 주님께 왔다 돌아간 부자 청년을 언급하면서
“ 현세적 집착의 고리를 끊을 때 비로소 새 생명,영원한 생명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부를 획득함과 동시에 부를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해서 영생의 길이 현세적 집착의 고리를 끊고 부를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p.211,212) 이것은 도올의 낭만일 뿐이다 부를 버리고 현세적 집착의 고리를 끊어 구원 영생 얻는다.? 이건 氣철학이나 동양적 자연 종교들인 도 닦는 데서나 할 말이다 성경은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해지거나 집착의 고리 끊을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게 가능하다면 왜 그리스도가 오시고 십자가 지셔야 하나? 셀프 도 닦으면 될 것을! 도올은 자신에게 묻기 바란다. 현세적 집착의 고리를 셀프 끊을 수 있겠냐고! 안 되는 얘기다 그건 죽을 때 만 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 타력에 의해서 말이다 산 동안은 현세적 집착의 고리를 부여잡고 사는 것이다 인간 정신의 일차적 운동은 자기 생존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생존욕망의 충족을 위한 변증법적 활동을 하는 게 정신활동의 속성이다 이 리얼리티를 무시하고 무슨 도 닦음으로 현세집착 버리고 완성된 지경에 이를 것처럼 말하는 게 사실상 사기인 것이다 자기도 못하는데 하는 척 남을 속이며 그렇게 가르친다.
현세적 집착의 고리를 끊어? 그건 자살하라는 얘기다 삶은 곧 욕망의 충족을 위한 활동이다 이 욕망이 현세적 집착인 것이다 이것 없어지는 순간은 죽는 그 때 뿐이다 산 동안은 안 된다 된다고 속이고 혹사시키는 게 자연종교들의 속성이다 성경은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이지 인간 행위로 아니다 마음 닦음이나 현세적 집착 끊음으로가 아니다 그건 안 되는 거기 때문에 구원의 복음을 주신 것이다 도올은 공허한 담론 거둬야 한다. 본문의 핵심은 “나를 따르라‘ 에 있다 부자가 재물 버린 것으로 구원이 아니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방해가 되니까 재물 버리고 주께 오라는 메시지인 것이다(마19:21)
그렇다! 재물 버리고는 구원 못 받는다. 재산 다 팔아 나눠줘도 구원 없다 구원은 주 예수께 나가야 한다. 우리영혼이 구주의 보혈로 대속을 입고서야 구원이다 그래서 주님은 청년에게 ”나를 따르라’ 하신 것이다 도올의 망상은 도처에 나댄다. 마가복음에서 소경 바디메오가 고침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사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 바디메오는 걸친 옷을 확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뛰어 왔습니다. 겉옷을 걸치면 빨리 뛰어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훌쩍 달려왔다는 것은 그가 완전 소경이 아니었다는 것이 입증 됩니다 백내장에 뒤덮여 뿌옇게 보이는 정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힐링의 대상이 치유 가능상태에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지요”
하였다(p.219) 이렇게 도올은 그리스도의 자연기적은 물론 치유의 기적까지 모조리 의심과 왜곡을 한다. 백내장으로 눈이 흐려 있다가 어떻게 됐다는 건데 이거야말로 괴설(怪說)이다 성경이 백내장 환자가 눈이 좀 시원하게 된 것을 기적으로 보도한단 말인가 둘러 붙이는 것마다 우스꽝스럽다. 자기 시력이 있는 자가 “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부르짖겠나? 평생 앞이 안 보이는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사람들이 “잠잠 하라! “말리는데도 더욱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었겠나? 자기 시력이 있는 백내장 환자가 그런단 말인가?(막10:51) 도올이 셀프 최면 걸었더니 2천년 전 바디메오가 백내장으로 눈이흐려 있던 게 보이든가? 도올은 이 책에서 다시 부활을 시비하고 있다 “ 부활은 단순히 죽은 몸이 되살아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나는 그런 육체의 부활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부활이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이 민족의 조상으로 기억되고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여 성경적 부활을 없이 여기며 비하한다(p.254,255) 성경적 부활은 몸의 부활이다 무슨 민족의 조상으로 기억되는 거라는 등 이상한 게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부활하셨다 도마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확인시켜 주셨다(요20:27) 장차 우리 성도의 몸도 부활하게 된다. 고전 15장은 성도의 부활을 58개의 성구로 증언하고 있다 무슨 인격이거나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등 그런 막연한 것 성경에는 없다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셨다(요11:25,26) 도올의 부활에 대한 생각은 근거 없는 셀프망상이다 만일 부활이 도올의 말처럼 그런 허무맹랑한 거라면 기독교회도 없었을 것이고 인류에 소망도 없을 것이다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 고백하는 그대로이다. 도올의 성경왜곡은 전공이며 취미가 돼버렸다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오신 것도 부정하면서 이것을 서기관들이 만들어내 유포시킨 것이고 이런 날조를 통해 자신들의 명성과 권력을 유지시키려고 했단다(p.267) 그러는가 하면 막13장의 말씀도 전혀 기억에 없으며 그런 언어를 내 뱉을 심정도 아니었다고 한다(p.271) 이 본문은 마24장 눅 21장 모두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의 종말계시인데 도올은 자신을 예수로 참칭하면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뗀다. 그러면서 신약성경에 써 있는 말들이 내말(예수의 말)이 아니며 전혀 자기와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울러 바울의 서간문들도 자신과 무관하며 요한계시록도 문학작품에 불과하고 나(예수)와 아무 상관 없다고 한다(p.272) 따라서 천당 간다는 얘기해 본 적 없는데 그건 모두 바울의 언어일 뿐이며(p.273) 마가는 자기이야기를 예수가 한 것처럼 썼고(p.274) 떡을 떼어주며 “이것이 내 몸이다” 포도주잔을 주며 “이것이 나의 피다 마셔라” 이렇게 한 기억이 없는데 초대교회가 문학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한다(p.286) 도올이 무슨 헛것에 씌웠는지 자신을 예수인 것처럼 참칭하면서 써 갈겨놓은 <나는 예수입니다>는 이렇게 엉터리 망상가의 주절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찌라시 급의 악담이다
이런 헛소리에 추천문을 써 댄 클레어몬트 신학교의 명예교수 존캅(John Cobb)과 한국의 모 신학교 무슨 신대원장이란 건지 하는 사람들의 멘탈과 영적 형편을 알아볼만 하지 않은가 일말의 신앙이라도 있는 사람들인지 의문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쓸데없는 일, 아니 해롭고 악하기만 한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성경과 교회를 잔해하려고 주야로 애쓰는 도올이야말로 그 전형이 아닐까 싶다 안티다원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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