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제22회 공무원 문예대전 수필 부문 은상 수상작)
외갓집 가는 길에는 머얼리 송곳산이 보이고, 언덕을 넘으면, 또 멀리 개울 건너에 하얀손을 흔들던 할머니가 있었다. 석양빛을 받아 붉은 햇빛에 둘러싸인 외갓집 마을 개울가에서 우리는 그렇게 외할머니를 만났다.
산도화가 핀 봄날이었을 것이다. 개울가에 들어서면, 외손주를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물소리보다 먼저 징검다리를 건너왔고, 늙은 할미꽃은 어린 외손주에게 굽은 언덕 고갯길 같은 여윈 등을 내미는 것이었다.
너무 좋아서, 외손주 엉덩이를 받친 손을 가끔씩 추어올리면서 방천 언덕 아랫길을 걸어가셨다. 개나리가 피다간 길 언덕 할미꽃처럼 할머니는 노랗게 곱고 다소곳한 분이셨다. 한없이 외로워 보였던 것은 항상 붉게 젖어있던 할머니의 눈이었다.
인공난리가 지나간 들판에는 붉은 민둥산과 집단 생매장터가 밤이면 도깨비불을 일으키고 있었고, 아기를 물고 가는 늑대이야기가 종종 들려왔다. 바람이 비명소리처럼 성산 골짜기를 내려올 때마다 할머니는 도깨비불처럼 떠돌고 있을 큰외삼촌의 넋을 걱정하셨다. 우리가 가던 닐은 큰외삼촌의 제삿날이었다.
제삿날은 항상 묵언(黙言) 같은 짙은 어둠이 마당에 깔렸었다. 호롱불을 밝히고, 제사 올릴 시간이 되면 할머니는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을 걷었다. 혼이 들어오다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아들이 무사히 집으로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배고파서 돌아온 내 새끼, 많이많이 먹거라.’
제상(祭床)을 차리는 손은 다시 치마를 잡고 눈을 찍어대고 있었다.
그런 날 밤이면 가슴앓이 같은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숨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할머니의 병환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외할머니 병에는 약이 없다고 하였다. 가슴에 피가 맺히면 저렇게 된다고 사람들은 할머니의 실핏줄이 터진 두 눈을 말하곤 하였다.
강물도 기가 막혀 흐르지 못하면 둑을 넘듯이, 할머니의 슬픔도 눈물로 마저 흐르지 못하고 밖으로 터져 저렇게 붉어졌다고. 사람들은 또 가만가만 말하곤 하였다.
할머니는 자식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큰외삼촌도 인물이 잘났을 뿐,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 알지 못한 분이셨다. 해방이 되었기에 그것이 가장 좋은 세상인 줄만 알았던 분이셨다.
그러나 누군가는 좋은 세상이 따로 있다 하였고, 큰외삼촌은 마을 청년회장을 맡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인민군이 물러갈 때, 영광불갑산 지구에도 사람들이 들끓었다. 빨치산 서남부 지구 용추사에 수 만명이 모일 때도, 외삼촌은 세상의 시비를 피하여 광주에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러니까 벼를 심은 5월의 어느 아침이었을 것이다. 벼논에 물을 보러 간 마을 사람 하나가 조용히 마을 사람을 불러 모았다. 그동안 수없이 동네사람을 끌어다가 죽인 사람이 살아서 논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행태가 하도 지독하여 동네사람들이 전날 밤 잡아다가 징벌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살아나서 논물을 마시고 있다고 전한 것이었다. 다시 잡아다가 기어이 땅 속에 묻었다는, 그런 가혹한 세상이었다.
핏덩이 작은 외삼촌 하나만 남아있기에, 그 외삼촌 품에 안고 할머니는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셨다. 어머니 계시는 우리 마을까지 할머니는 작은 외삼촌 하나를 안고 도망쳐 오셨다는, 그 엄혹한 6.25 동란을 할머니는 눈물로 보내셨다.
사람들은 누가 좌익인지 누가 우익인지 알 길이 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끌려 다니고 있었다. 잘생기고 똑똑한 우리 큰외삼촌도 그 난리의 길목에서 휩쓸리고 있었다. 어느 날 광주로 피신했던 큰외삼촌이 먹을 것이 떨어져 돌아오자 그들은 잡아갔다. 외삼촌이 들고 있던 것은 외할머니가 싸준 달걀 한 판뿐.
그리고 얼마 후 영광 성산 골짜기에서 큰외삼촌은 차가운 시신(屍身)으로 발견되었고, 죽은 아들을 붙들고 울던 할머니의 눈은 마침내 붉은 실핏줄이 터졌다. 그렇게 슬픔은 붉은 눈으로 남아 항상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리곤 제삿날이나 명절 상에는 배고픈 내 새끼를 위해 그득그득 음식이 차려졌다.
외손주가 오는 날을 할머니는 기억하셨다. 그리고 개울가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멀리서 할머니를 부르면,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더 큰 웃음으로 둘 팔을 벌리셨다. 참깨 밭에 물래 심어놓으신 귀한 참외를 나에게만 따 주시고, 당신 밥 먹기 전에 손주 밥부터 먹이면서 할머니는 그렇게 사랑을 쌓아주셨다.
그러다가 십수 년 후 늙은 할미꽃은 짧은 봄을 보내고, 그렇게도 그리던 자식 곁으로 떠났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친정 가는 길을 허우적거리며 달려갔다. 어머니를 따라 언덕을 넘고 들길을 지나 할머니 서 계시던 개울을 바라보았지만, 외할머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서 계시던 그 자리에는 들꽃만 고개 숙여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해마다 혼불처럼 아롱아롱 아지랑이 오르는 언덕에 할미꽃이 피는 봄이면, 우리는 할머니와 큰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외갓집 개울을 건넜었다. 그리고 세월을 따라 굽이굽이 굽어진 할머니의 등에 업히고 산도화 핀 마을로 들어서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외손주 등에 업고 할머니는 참 행복하셨다. 그리고 수염이 길었던 우리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던 외갓집 가는 길. 항상 외할머니를 그리던 그 개울가. 할마니 그 따뜻한 등 체온을 받았던 외손주는 이렇게 할머니를 그리며 오늘을 살고 있다.
다만 오늘도 외할머니 실핏줄 터진 붉은 눈은 추억 속에 녹여지지 않은 앙금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밤이 되어, 큰외삼촌의 왕생극락을 비는 할머니의 손길이 치마를 더듬어 눈물을 찍어댈 때, 성산 골짜기를 내려오던 바람소리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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