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암흑기를 보낸 유럽국가의 근대국가 출발은 시장경제의 발달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성의 비약적 증가와 상공업에 종사하는 상인과 장인이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개인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 돈은 곧 계급을 혁파 하였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 받은 개인을 바탕으로 비로서 민주주의가 완성 된 것이다. 누구라도 돈 없는 민주주의를 실현한 예를 한 가지만 들 수 있으면 들어 보라 말하고 싶다. 국가는 경제이고 경제는 국가이다. 개인이 경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 이고 민주주의는 곧 경제의 중심에 개인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종이 돈을 받고 일본에 조선을 팔아먹을 때 조선의 시장경제는 끔찍스런 수준이었다. 엽전 한 푼 벌어들일 능력 없는 미개하고 무식한 선비와 양반이 배운 것은 백성의 피를 빠는 것 뿐이었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농본억상 정책은 상공업을 거악으로 천시했고, 이는 양반이 백성의 피와 살을 뜯어 먹는 착취와 수탈 경제를 낳았다. 요즘 들어 감히 건방지게 정치판의 개들이 미개한 조선의 양반과 선비처럼 개소리 늘어 놓으며 기업의 피를 빨겠다고 나선다. 참으로 싸가지 없는 개새끼들이라 할 것이다.
시장경제의 근간은 화폐경제의 발달이다. 평생 개도 물어가지 않을 성리학이나 접했던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한다며 당백전을 발행하였고 무분별하게 발행 된 화폐는 손바닥 만한 조선의 시장경제를 붕괴시켰다. 시장 경제의 붕괴는 화폐유통의 종말을 의미한다. 급기야 조선의 시장경제는 일본은행의 돈이 통화를 대신하게 된다. 북괴 주민이 달러만 보면 환장하듯 조선의 경제는 엔화가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경제수탈이었다고 역사를 날조하는 사기꾼들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북괴 주민이 달러에 환장하는 것은 미국이 북괴의 경제를 수탈하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역사학자 되기 참 쉬운 나라이다. 적당히 국뽕질하면서 일본 욕하며 역사왜곡하면 박사학위 준다. 지나가는 개도 박사 학위 정도는 놀면서 받을 것이다.
일제 시대를 통해 뿌리를 내리게 된 시장경제의 발전은 놀라웠다. 수탈경제를 벗어나 누구라도 능력과 노력에 따라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자식을 교육시켰고, 벌어 놓은 재산은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어 더욱 열심히 일했다.
일제 시대 쌀 생산량은 4배가 늘었고, 어획고는 무려 30배가 증가하는 생산성 혁명이 일어난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에 조선의 총어획고는 57,000톤에 불과했다. 어획고는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나 1927년에 65만톤, 1934년 122만톤, 1937년에 196만톤으로 정점을 찍는다(김낙년 '한국의 장기통계' 참고). 오히려 해방 후 어획고는 줄어들어 93만톤, 1985년 150만톤으로 일제 시대 어획고에 근접하게 된다.
1930년대 후반의 조선 인구가 2,300만에서 2,400만명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당시 조선은 연간 1인당 80kg 정도의 물고기를 어획한 것으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어획고 20kg에 대비한다면 당시의 어획고의 무게가 가늠 될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어획고는 1920년대부터 동해안에 몰려든 정어리떼에 기인한다. 어획고의 절반이 정어리였다. 정어리를 제외한 연간 100만톤(2000년대 어획고가 110만톤)의 어획고는 한일합방 전 6만톤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폭발적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어획고 인용, 김낙년의 '한국의 장기통계' 참고)
폭발적 어획량을 올린 정어리는 가공되어 정어리 기름(온유), 정어리 가루(온비 - 정어리 가루는 일본에서는 에도시대부터 비료로 활용되었다), 군수용, 의료용 글리세린 등으로 가공 정제 되어 일본으로 수출 되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되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 정어리 어획의 심장부는 함경북도였다. 정어리 어획고의 절반을 차지한 함경북도에서는 인구의 총 2할이 정어리 어업, 정어리 가공 공장 등에 종사했고, 가공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구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것을 동아일보가 보도하고 있다.
당시 함경도의 흥청 거리는 경제를 중외일보 기자 김기진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해 동해안에서는 정어리가 무진장으로 잡혔고 북녘에다 가마솥을 걸어놓고서 정어리를 삶아가지고 압착기로 눌러 기름을 짜는 공장을 차린 사람들은 돈을 쓸어담기에 바쁠 만큼 큰 돈을 벌어들였다는 게 아닌가. 비유해서 말하자면 천 원 가지고 정어리 공장을 시작한 사람이 원금 빼놓고서 당년에 2천원의 이익을 보았다는 게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1911년부터 1940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율은 평균 3.6%에 달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에 일어난 놀라운 경제적 성장이었다. 1911~1940년 농림어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5%에 불과했지만 광공업은 9.7%였고 특히 1930년대에는 13.5%에 달했다(1930~1940년). 또한 시간이 갈수록 산업구조도 다양화 된다. 1911년에는 전체 생산에서 농림어업이 67.8%를 차지했지만 1940년에는 42.0%까지 낮아진 반면, 광공업(전기가스 건설업 포함) 비중은 1911년 6.7%에서 1940년 26.0%로 증가했다. 이미 조선은 1930년대 이후가 되면서 단군 이래 처음으로 농업국가를 벗어나는 기반을 닦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11~1940년의 경제성장은 기술진보에 의한 것이 36%였으며, 기계·설비와 같은 자본 투입의 증가로 인한 것이 44%였다. 이러한 기술 및 자본의 도입은 전적으로 일제에 의해 도입 되었고 식민지 시기의 경제성장은 기술 진보와 자본 축적이라는 양대 축에 의해 견인 된다. 이는 조선이 봉건경제를 벗어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진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일제 시대를 통하여 시장경제를 습득한 조선은 빠르게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창업도 활발하여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상업회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일본 본토에서 넘어온 선진 경영과 생산기술을 습득하면서 조선은 근대경제의 내, 외형적으로 기틀을 다졌다. 비록 조선은 식민국이라는 한계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일제 시대를 통한 거대한 경제시스템의 변혁은 근대국가 가는 막대한 추진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제 패망 후 조선에 남기고 간 기업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아 산업화 된 근대국가로 이행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경제를 호령하는 수많은 기업의 뿌리가 일제 시대에 두고 있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일본에게 고마워 해야 할 일이다.
| 일제 패망한 후
조선인들에게 불하된 기업 |
| 쇼와 기린맥주 =
직원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됨 |
| 삿포로 맥주 = 민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됨(현 하이트맥주) |
|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 = 직원이었던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됨 |
| 선경직물 = 공장 생산관리책임자였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됨 |
| 나가오카제과 = 직원이었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됨 |
|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 =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됨 |
|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백화점이 됨 |
| 조지아 백화점(정자옥) = 미도파백화점(롯데미도파)이 됨 |
| 조선제련 =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됨 |
| 코레카와 제철소 =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삼화제철로 되었다가 동국제강으로 상호변경 |
| 조선생명 =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됨 |
|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 =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의 모태가 됨 |
| 모리타가 제과 및 모리나가
식품 = 제일제당에 병합됨 나중에 CJ제일제당 |
| 토요쿠니제과 = 해방 후 풍국제과로 운영되다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됨 |
| 경기직물 및 조선방직 =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됨 |
| 조선우선 = 직원이었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됨 |
|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 = 해방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로 운영되다가 대한통운으로 상호변경 |
| 아사히견직 =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됨 |
| 동양방직 = 서정익에게 불하되어 그대로 동양방직 |
| 조선주택영단 = 한국주택공사가 됨 |
|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 = 김인득에게 불하되어 벽산그룹이 됨 |
|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전업 = 해방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됨 |
| 가네보방직 광주공장 =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됨 |
| 조선중공업주식회사 =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였다가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됨 |
| 조선화재 해상보험 = 해방 후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메리츠 화재해상보험으로
상호변경 |
| 쥬가이 제약 = 서울사무소 직원에게 불하되어 중외제약이 됨 |
특히 일제 시대 통해 시장경제를 습득하고 훈련 받은 이병철, 정주영이라는 시대 영웅이 나오게 된다. 일본은 이미 에도시대부터 조선은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상업국가로 번성하며 수백년간 기업문화가 훈련되고 뿌리가 내려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앞선 기업가 정신과 기업문화가 조선으로 이식 되면서 봉건질서 속에 죽어 있던 조선인의 경제적 유전자를 발현시켜 주었다. 특히 양반이 수탈경제의 중심에 있던 미개한 경제가 경제주체가 개인으로 이전 됨으로서 개인의 자유라는 근대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일제 시대는 양반은 짱깨 똥구멍이나 빨며 사대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백성은 양반의 노예가 되는 것이 전부였던 조선시대 수백년간 찌들었던 노예근성을 벗어버리는 의식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일제 시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 소중한 시대였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역사에 당당하게 한축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일제 시대가 부끄러운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일제 시대에 봉건질서에서 벗어나 비로서 개인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다.
조선의 그 비참하고 치욕스런 사대주의, 노예근성을 쓸어 버렸던 소중한 시대가 일제 시대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결단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제 시대를 부정하는 것은 그 자랑스런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제 시대를 부정하는 것, 그것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 없는 자의 나약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