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킨 나폴레옹1세의 막강한 군대에 짓밟히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독일은 나폴레옹1세가 세운 괴뢰국 베스트팔렌왕국을 통해 끊임 없는 분열책동에 시달렸다. 200여개의 공국으로 분열 된 독일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빌헬름1세는 분열된 독일을 통일하기 위하여 교육을 선택했고 세계 최초로 의무교육을 도입했다. 국가의 재정을 통해 5 ~ 12세의 아동이라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국가의 공동목표를 설정하고 국민의 단결, 경제적 독립, 부를 증진하는 것을 가르쳤다. 지식의 공유는 국가적 통합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육성 된 국민은 국가를 부흥시켰고 군대는 강해졌다. 독일은 보불전쟁을 통해 나폴레옹 1세에게 당한 치욕을 되갚아 주었다. 나폴레옹1세의 동생 나폴레옹3세를 포로로 잡고, 독일제국 선포 및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을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거행했다.
조선의 성리학의 계급적 질서는 잔인했다. 통지의 도구에 불과했던 조선의 성리학은 백성이 글을 아는 것을 가장 두려워 했고 모든 교육은 철저하게 4%의 순혈 양반만을 위한 그들만의 개밥그릇이었다. 평민이 과거를 급제하여도 벼슬길을 막아 관료로 등용되는 경우가 없었다.
연산군은 글을 아는 백성이 군왕을 비판한다며 백성에게는 문자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 노트정리 한권 분량도 되지 못하는 알량한 성리학도 학문이고 지식이라고 그 조차 배우지 못하게 했다.
초대 통감으로 취임한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조선 백성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1905년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관료 국민학교가 몇 개인지를 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40개였다. 분노한 이토 히로부미는 일갈했다.
너희들은 백성을 위해 여지껏 무엇을 했느냐?
이토 히로부미는 즉시 민적법을 공표했다. 누구라도 호적을 만들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양반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신분이 유별한데 백성들이 어찌 성씨를 가지고 호적을 만들 수 있느냐며 반발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반발한 양반들을 무력을 동원해 일거에 제압했다. 누구라도 그러한 반발은 타협할 것 없었다. 그렇게 시작 된 현대교육은 일제는 조선 수천개의 학교를 만들었고 해방당시 보통학교 취학율은 60%가 넘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어 독본을 만들어 누구라도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다. 맞춤법도 조선총독부가 통일 시켜 주었다. 한글날의 제정도 한글이라는 이름도 이 때 생겨 났다.
국민 학교 교육 과정의 학생 수는 1911 년이 남자 1만 8,920명, 여자 1,274명, 1926 년에는 남자 41 만 9,904명, 여자 8 만 2,120명, 1941 년에는 남자 119 만 825명, 58 만 8,900명이 국민 학교를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중등 교육 과정의 학생수는 1911 년 남자 2,352명, 여자 394명 이었던 것이 1926 년에는 남자 1만 8,232명, 여자 3207명, 1941년에는 6만 6,210 명, 여지 1만 7,274명이 되었다.
고등 교육 과정은 학생 · 학생 수는 1,926년 남자 2,962명, 여자 147명, 1941 년 4,222명, 여자 1,609명이 되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한 유학생은 남자 1,716명, 여자 88명, 1941 년 7,111명, 여자 462명에 이르게 된다.
많은 인재와 젊은이는 앞선 문명을 배우기 위하여 현해탄을 건너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앞선문명을 배우고 익혔다. 그들은 대학민국을 건국했고 산업화의 거대한 용광로를 건설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후 국운을 걸고 12년 동안 군인 1만명, 국민 1만명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박정희도 이승만 대통령의 유학정책으로 미국 사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열정으로 국가적 동원한 유학정책도 12년 동안 2만여명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일제 시대 수십만명이 현해탄을 건너 새로운 문명을 배우고 새로운 학문을 익히고 습득한 지식이 우리에게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성리학의 조선은 지옥이었고 암흑이었다. 인간 본연의 욕망과 인간의 존엄성의 고귀한 가치, 학문적 자유, 지적 호기심을 유교 탈레반은 죄악시 했다. 새로운 것은 배울 수 없었고, 지식혁명, 기술혁신, 국가혁신은 반역이었다. 알량한 한 줌도 되지 못하는 성리학적 지식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알량한 성리학적 학문으로 노트한권 분량도 되지 못할 한줌의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명하려 했던 그 잘난 선비의 용기가 가상할 뿐이다.
봉건사회에서 개 돼지만도 못하게 취급받은 여성, 인격이 없었던 여성에 대한 교육은 진정 특별함이 있다. 교육받은 여성, 봉건악습의 굴레를 벗어버린 신여성 그들의 도전은 썩어빠진 성리학적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그러한 도전정신은 거대한 근대화의 봇물에 힘을 보탰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 어머니의 힘은 실로 기적의 근원이었다.
우리에게 환희라는 소설로 한때 이시하라 붐을 일으켰던 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를 만난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 시대 교육에 대하여 술회했다.
"이시하라씨, 중요한 건 교육이야. 여기에 한해서 일본인은 매우 냉정하고 우리나라가 행하고 있는 똑같은 교육을 조선에서도 행했지. 이건 높이 평가해야해. 내가 좋은 例(예)지. 나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서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지. 일본인이 행한 의무교육제도에 따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는 처벌한다고 했지. 일본인에게 혼난다고 하니까 학교에 갈수 있었어. 그 뒤에 사범학교, 군관학교에 갔고 그곳의 일본인 교관이 "넌 기특하구나"라고 말한뒤 일본 이치가야 사관학교에 추천해준다고 해서 그곳으로 입학. 수석으로 졸업했고 말은 완벽하지 않았을지도 몰라도 학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읽었어. 나는 이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백인이 행한 식민지지배에 비해 일본은 교육하나에도 꽤나 공평하고 수준 높은 정책을 행했다고 생각해“
지독하게 가난했던 소년 박정희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성적이 우수하고 영민한 박정희의 진학포기를 접한 일본인 교사는 소년 박정희의 손을 잡고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사범학교를 보내면 학비가 들지 않아 공부를 시킬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어머니는 사범학교 시험을 보러 간 소년 박정희가 시험에서 떨어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네곳의 사관학교에서 수학했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대한민국 육사와 미국의 사관학교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군사학을 이수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받은 군사교육은 세계 최고의 우수한 교육이었다. 60~70년대 서울대 수준의 교육은 비교 조차 되지 않는 우수한 수준이었다. 60~80년대 국내 대학도 대학이라고 먹물티 내느라고 군인을 무식하다 조롱했지만 당시의 교육수준은 알량하다 못해 입 밖에 내기 조차 부끄러운 지경이다. 중학교 졸업한 내가 독학으로 공부했고 하사관으로 근무하던 군대에서 독서로 세상을 잊고 살았다. 당시 역사관련 서적과 경제학서적은 지겨울 정도로 읽었다. 80년대 당시 국내대학 수준은 그저 알량하게 책 몇 권 읽은 내가 조롱할 정도로 질은 떨어졌었다. 화염병이나 던지고 책 한권 보지 않아도 졸업장을 받았던 그놈들이 586 주사파 빨갱이들 아니던가. 그 수준에서 나오는 무식함과 논리가 아직도 가소롭다.
목하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교육을 받아도 대가리 들은 것은 없고 촛불과 같은 싸구려 선동질에 놀아나는 미개함과 무식함, 그 지적수준이 개조선의 씹선비 수준이 아닌가 말이다. 아직도 개조선 씹선비와 성리학과 싸워야 하는 대한민국의 미개함이 슬플 뿐이다.
최익현을 상징하는 “기봉강산 홍무일월(其封江山 洪武日月) : 고조선 때 기자가 봉해준 땅이고 명나라 홍무년간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이후 지금은 조선시대)”의 의미를 아무리 좋게 해석해 주고 싶어도 나라 걱정은 없다. 그저 성리학 팔아 양반들 개밥그릇만 지켜달라는 애원처럼 들린다. 힘 없고 나라가 거지면 망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수 많은 나라가 번성하고 망했다. 따라서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으면 더욱이 나라의 권력을 한손에 쥐고 있던 성리학을 빨던 선비라면 칼을 물고 죽어야지 어줍잖게 명나라 팔아 양반 개밥그릇이나 타령하고 있으니 골백번 망해도 골백번 죽어도 싸다.
동족의 절반을 노예로 부리던 노예의 나라, 백성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 두려워 피를 빨았던 나라, 그런 조선은 결단코 성리학을 버릴 수 없었고, 국가혁신을 이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런 조선은 반드시 불태워야 했다. 일제 시대의 근대교육은 성리학이라는 거악을 몰아냈다. 그리고 조선을 불태워 버렸다 어쩌면 일제가 성리학과 개조선을 몰아 내 준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일제 시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하지 못해 이웃이 강제로 도와 준 것이다. 망국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왕이 나라를 팔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고 스스로 혁신을 하지 못한 것이 칼을 묵고 죽어야 할 수치이다.
나는 일제가 고맙다. 나는 친일파이다. 그러나 조선의 양반과 선비 보다는 도덕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갖춘 친일파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것이 없다. 친일파 소리 천 번을 들어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