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든가? 어떤 이가 “썰”에 대해 한 썰 풀기에 답썰을 풀어주려다 괜히 세밑에 시비꺼리가 될 것 같아 언젠가 “‘썰’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썰 할 날이 있겠지.... 그런데 그런 날이 빨리도 왔다.
원래 나는 그 이의“썰”은 안 본다. 생각해 보면 20년은 안 되도 족히 10여년은 훨씬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이가 동아든가 중앙 게시판에서 나름 열심히 썰 푸는 것을 보았고 그 썰 말미에는 늘‘도시어부’(아! 나의 실수)아니‘산골어부’라고 매조지를 하기에, 처음엔 호수나 강가에 살며 민물고기어부 인가? 하고 생각하고 얼마간 열심히 읽다보니 어부가 아니라 산골마을의 성직자였던가 보다.
사실 내 형님이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그이와는 같은 직업이라 반갑고 또 그 후 내가 산골에 정착한 후에도 그이의 썰을 본즉 내가 살고 있는 제천 땅을 묘사하는 것 같아 더욱 반가운 마음에 그럴 때 마다 몇 차례 댓글을 달며 반가움을 표시하자 한마디로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말씀도 아니 계신다. 솔직히 속으로“참..건방진 놈이다”라고 치부한 뒤로는 나 역시 그의 썰을 도외시(度外視)하게 된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곳 ‘에세이’방(지금은 동아나 중앙은 게시판이 없다시피 하다)으로 정착하며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고명하신 그 분께서는 나라는 존재를 아직도 기억 못하실 텐데...어쨌든 그런 가운데 그이의 “썰”이라는 화두가 나왔기에 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한 썰 풀어야겠다.
내가 인터넷 게시판에 썰을 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1997년도 김영삼 정부가 IMF를 몰고 오며 그 여파로 마지막 숨을 할딱일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중국에 상주할 때였고 내 사무실에 컴이 있긴 했어도 내가 컴으로 할 수 있는 것은‘지뢰 밟기’, ‘장기’, ‘바둑’, ‘카드놀이’ 등등 온갖 잡기(雜技)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연히 조선닷컴을 알았고 그 가운데 소위‘조독마’라는 게시판을 알았을 때 신천지(신세계)를 발견한양 경이(驚異)로 왔었다. 마침 김대중의 편향적 남북관계나 615선언 따위로 국민적 저항을 받으며 집권할 당시, 그 때나 지금이나 보수언론들의 반론전개가 못마땅한 김대중 정권이 언론에 재갈물리기를 시도하며 언론과의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저 개xx들이...우리 조선일보를....’, 썰을 논하기 전 잠시‘우리 조선일보’의 설명을 좀 해야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딱 1년을, 조선일보 안국동 지국 산하 배달사원으로 나의 근무처는 종로2가 일부와 관수동과 관철동 일대였다. 비록 1년이지만 오래된 나의 전 직장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태에 더욱 분노하며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요즘 조선일보 직원들 나처럼 애사(愛社)심이 있는가 모르겠다. 후배들이 애사심 좀 가졌으면 좋겠다)
솔직히 글을 어떻게 써야하고 무엇을 쓸지 막막한 가운데(당시 주제가 조선일보 창간 및 사주일가의 친일문제)비록 가방끈은 짧지만 나름의 상식과 배운 바를 총동원하여 김대중 정권의 오판을 지적 내지 반론을 제기 했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전설이 되었지만, 그 당시 진중권 스스로‘밤의 대통령’이라고 자처하며 자신의 똘마니를 풀어 친일의 후예 조선일보를 폐간 시켜야 한다며 행패를 부릴 때였다.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진중권의 입을 당할 용사(勇士)가 없었다. 물론 나도 진중권을 향해 돌멩이도 던져보고 가래침도 뱉어 보았지만 조족지혈(鳥足之血)에 역부족(不足)이었다. 이를테면 그야말로 진중권은 골리앗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모든 사물(事物)엔 음양이 있고 천적(天敵)이라는 게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같았던 골리앗 진중권에게도 천적이 한 분 계셨으니....그 분의 정연한 논리엔 진중권이 항상 꼬리를 내리고 그 분의 논지(旨)에는 존경심까지 표했었다. 그렇게 세상모르고 까불며 건방졌던 진중권도 그 분의 말씀이라면 순종까지 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진중권이 조선닷컴 게시판을 떠나게 동기가 천적이었던 그 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사실을 아시는 분 몇몇은 아직도 이곳 게시판에 머물러 계신다.
갑자기 다른 할 일이 있어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