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6월 선체를 검은색으로 칠한 미국 군함 4척이 에도막부의 수도 앞바다 에도만을 통과하여 우라가(浦賀) 앞바다에 정박했다. 해안을 지나던 어부의 발견으로 일본은 일대 충격에 휩싸인다.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힌 증기선의 거대한 굴뚝은 일본 열도를 집어 삼킬듯한 검은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승사자와 같은 검은연기는 일본열도를 질식시킬 기세였다.
1543년 난파 된 중국상선의 포르투갈인을 통해 조총을 받은 일본은 나가사키에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고 이곳을 유일한 유럽의 선진문명을 이식하는 해방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250년간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일본의 변혁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페리제독의 검은 증기선은 안방에 앉아 낭만적인 서구문명 베끼는 축제는 더 이상 즐길 수 없음을 경고 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의 심장 증기엔진을 처음 본 사무라이는 그들이 숭상하며 베껴왔던 난학은 그들이 이전에 버렸던 유학처럼 뒷방에 처박아야 함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무한동력 엔진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의 폭풍 속에 온몸이 으스러질지언정 투신해야 함을 명령하고 있었다.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과 교역을 시작 하면서 나가사키 앞바다에 5000평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어 서구문명 수입의 해방구로 삼았다. 막번체제라는 일본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인공섬 데지마는 막번체제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스스로가 쇼군이 되어 자신의 막부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일본전역을 300여개의 번으로 쪼개 영지를 나누어 주고 다이묘를 철저하게 충성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위협할 다이묘가 도쿠가와 자신을 거치지 않고 서구선진문물이 유입 되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일본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고 서구문물로 강성해진 다이묘가 힘의 균형을 깨고 과거의 전쟁시대를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전쟁의 힘은 돈에서 나온다. 그래서 도쿠가와 막부는 다이묘의 경제력을 통제하였다. 화폐주조를 독점하고 부의 흐름을 막부에서 움켜 쥐고 다이묘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직은 봉건국 때를 벗지 못한 일본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서구문명의 돈줄을 다이묘가 가지게 할 수 없었다.
훗날 일어난 메이지 유신은 막부의 쇼균이 가진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 준다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명분이었지만 부를 독점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밀무역으로 부를 축척한 샤쓰마번과 조슈번이 메이지 유신을 견인 한 것도 결국 돈의 힘이었다.
250년간 난학을 통해 강국의 꿈을 키웠던 일본은 페리제독의 검은 증기선 앞에 무기력 했고 강제개항의 명령에 백기투항 하였다. 그리고 맺어진 불평등 미일화친조약, 이어지는 서양 5개국과 맺은 안세이 5조약은 약소국, 열등국 일본의 경제를 피폐할 정도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일본 당대 최고의 호황시대라는 도쿠가와 막부의 겐노크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오르고, 굶주리는 백성의 원성이 높아졌으며, 끼니를 잇지 못하는 하급 사무라이의 분노가 분출되면서 도쿠가와 막부는 피를 뿌리며 무너졌다.
그러나 일본은 냉철했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트린 유신세력은 폐번치현(廢藩置縣)을 통해 번으로 갈린 일본을 하나의 일본으로 통일시켰고, 대정봉환(大政奉還) 즉, 쇼군과 다이묘가 가진 모든 권력을 천황에게 바쳐 권력을 일원화 함으로서 국가운영의 효율을 극대화 시켰다. 그리고 미개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가 되어야 한다며 탈아(脫亞)를 외쳤다.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하여 거대한 세계화의 풍랑에 몸을 던진 일본은 화려하게 세계사의 중심무대에 올라섰다.
일본은 자신을 무릎 끓린 페리제독을 기려 성대한 쿠로후네 축제를 열어 페리제독에게 감사하고 있다. 페리제독은 일본의 은을 빼앗아 갔지만 그 댓가로 수십분의 일로 축소한 증기기관차를 일본에 주었고 일본은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하고 고통을 참아가며, 증기기관차가 안내하는 근대화의 험난한 길을 주저함 없이 뛰어 갔다. 그래서 정복자 페리제독을 지금도 잊지 않고 해마다 기리고 있다. 한 때 일본은 세계 경제의 심장이 되어 기축통화 발권국 미국경제를 타격하며 제2의 진주만 공습을 하였다. 아직도 일본은 거대하며 도쿄의 GDP는 대한민국의 GDP 보다 많다. 자신을 때린 정복자에게 배우는 자강의 힘은 전쟁에 있어 승패에 굴복하는 사무라이 정신에서 나왔다.
세월이 흘러 일본은 미국에게 강제 개항을 당한 것과 같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했다. 증기선 한척으로 이순신 장군이 결코 내어 준 적이 없는 서해바다를 돌아 강화도 도착한 일본은 개항을 요구했다. 조선의 고종과 민비, 이 물건들은 절대로 태어나서는 아니 될 쓰레기들었다. 민비는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금강산 일만이천봉 봉우리마다 쌀과 돈을 뿌렸던 미친년이었고, 고종은 무당에 빠져 살았던 등신새끼였다. 등신새끼 고종에 대하여 미국 대사 알렌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고종은 병적으로 미신에 빠져 있으며, 1895년 갑오개혁 기간 중 궁중에서 쫓겨났던 무당들이 궁중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치고 국고(國庫)로 들어가야 할 세금까지 가로챘다.”
이런 등신새끼 고종이라 대한제국을 개인재산인 것으로 알고 일본에 팔아 처먹은 것이다. 고종과 민비가 얼마만큼 쓰레기인가 글을 쓴다면 석달 열흘도 부족할 것 같다.
일본으로부터 강제개항과 강화도조약이라는 치욕을 당했어도 조선은 깨어나지 못했다. 아니 깨어날 수준이 되지 못했다. 상당히 오래전 친구에게 들었던 재미 있는 말이 생각난다. 동네 양아치가 싸움을 배워 건달이 되는 방법이 건달에게 두들겨 맞아 가면서 때린 놈의 싸움기술을 배운다고 한다. 그런 양아치 만도 못했던 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공자 맹자 똥구멍은 빨은 씹선비라고 일본을 예의를 모르는 미개한 놈들이라고 여전히 멸시하다 식민통지를 받았고, 고종은 일본 천황가의 작은집으로 이왕가가 불리며 천황의 종이 되었다. 당장 죽어가도 맹자를 주절거릴 위선만 남은 씹선비, 두들겨 맞아 코피를 흘리면서 주제에 씹선비랍시고 정신승리 자위질이나 했으니 식민지가 된 것이다.
야이 조선의 씹선비들아!
유학이 학문이냐 실용성이라고는 개똥만도 못한 쓰레기가 유학이다. 에라이 유학이 학문이면 초등학교 산수시험 답안지는 과거시험 답안지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것은 이런 미개한 조선을 산업화 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그들의 기술로 포항제철을 만들었다. 훗날 포항제철은 일본의 제철회사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개처발랐다. 과연 포항제철이라는 산업의 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가능했을까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이었다. 모든 것을 가지거나 모든 것을 잃는 All or Nothing Game 전쟁을 알았던 군인 박정희, 전장의 장수는 얼음보다 차거운 심장과 칼날보다 예리한 이성을 가져야 한다. 적으로부터 배워 적을 이겨야 한다는 군인 박정희 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결단, 그것은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했던 선물이었다. 공자 맹자 똥구멍이나 빠는 씹선비는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결단, 그 결단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세상을 살면서 참 재미 있는 것 중 하나가 씹선비가 빨갱이가 되고 빨갱이는 씹선비가 대부분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