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民主主義), 자유(自由), 권리(權利), 개인(個人), 공화국(共和國), 인민(人民), 국민(國民), 공산주의(共産主義), 좌익(左翼), 우익(右翼), 문화(文化), 문명(文名), 계급(階級), 운동(運動), 의식(意識), 유물론(唯物論), 철학(哲學), 예술(藝術), 사회(社會), 복식부기(複式簿記), 보험(保險), 야구(野球), 유격수(遊擊手), 화학(化學), 물리(物理), 생물(生物), 과학(科學), 산소(酸素), 수소(水素), 질소(窒素), 탄소(炭素), 백금(白金), 원소(元素), 금속(金属), 산화(酸化), 환원(還元), 용해(溶解), 시약(試薬), 세포(細胞), 속(属), 압력(圧力), 온도(温度), 결정(結晶), 비등(沸騰), 증기(蒸気), 분석(分析), 성분(成分), 물질(物質), 법칙(法則), 동맥(動脈), 정맥(靜脈), 신경(神經), 연골(軟骨), 생식기(生殖器)
나열 된 단어는 아마도 현대 과학 및 인문학에 망라되는 핵심 키워드 일 것이다. 이 모든 단어는 일본이 조선에 가르쳐준 것이다. 짱깨는 스스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자신을 칭한다. 짱깨는 일본에게 문자를 가르쳐 주었다고 생색내자 일본은 너의 국명 중 너의 말은 중화(中華)일 뿐이고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은 우리가 가르쳐 준 말이라고 되 받아 친다. 한자의 종주국인 짱깨 조차 일본이 만든 인민공화국을 가져다 붙였고, 북괴도 인민공화국을 가져다 붙여 주체사상 사기를 치고 있다.
동양최초의 해부서 "해체신서" 중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이전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철학과 예술, 산소와 수소, 동맥과 정맥이라는 개념 조차 없었다. 봉건국가의 씹선비가 아는 말은 개도 안물어 갈 공자와 맹자 뿐이었고, 처세술에 불과한 유학의 학문수준에서 인간본성에 대한 성찰, 자유와 이성, 인간의 가치를 설파한 서양철학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에 불과 했을 뿐이다. 종기가 나면 호랑이 호자를 쓴 종이를 붙이는 수준의 의학이 동맥과 정맥의 개념을 알 수 없었다. 미개했던 조선에게 현대 사회로 가기 위한 사상과 지식은 일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스승이다.
에도시대 일본의 무역을 독점하였던 네덜란드(화란 和蘭)를 통해 수입되었던 서구문물과 학문은 역사변혁의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고 이를 “난학(蘭學)”으로 집대성하였다. 당시 난학의 열풍으로 일본 전역에 2000여개의 민간 난학연구소가 생겨났다. 서구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서는 유입 된 모든 학문과 지식을 일본말로 번역부터 하여야 했다. 난학의 요체는 곧 번역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말들이 민주, 자유, 동맥, 정맥, 산소, 수소였다. 현재도 외국의 최신 서적을 번역하기 위하여 일본이 가르쳐준 말과 개념 없이 번역이 가능할까? 현재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학문과 지식의 핵심 키워드 99%는 난학을 번역 하며 일본인이 만들어낸 말과 개념이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키자와 유키치
탈아론 즉,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을 닮아야 한다를 주창했던 후키자와 유키치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이다. 후키자와 유키치는 세 번에 걸친 유럽과 일본을 여행하고 수학하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게이오 대학을 설립하며 조국의 문명개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후키자와 유키치는 120여권의 서양 책을 번역한 당대를 아울렀던 대표적인 난학자였다.
아편전쟁에서 처절하게 영국에게 패하며 밝혀진 청나라의 미개함은 전세계의 웃음거리 였다. 서양의 충만한 양기와 영국군대가 가진 첨단화포의 화(火)를 막기 위하여 여자의 오줌을 동원한다. 군대를 동원하여 여자의 오줌을 모아 성벽에 뿌렸다. 상국이라고 믿었던 저런 청나라 수준을 보며 후키자와 유키치는 탈아론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해 미개한 청나라와 조선이 아니라 서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가 지배를 시작했던 1912년도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28세에 불과 했으며 인구는 12,000,000명이었다.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공중보건이 보급되면서 위생의 가치를 깨달았으며, 서구식 경제제도의 이식으로 경제가 발전하여 영양상태가 개선 되면서 평균신장이 괄목하게 커졌으며 1948년에는 인구가 30,000,000명으로 늘어났고 평균수명은 48세로 늘어났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수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을 송환하기 위하여 조선관리가 현장에 나타나면 도공들은 산으로 도망갔다. 포로로 끌려간 도공 중 극소수만 조선에 돌아왔을 뿐이다. 조선으로 다시 가보아야 씹선비의 수탈대상일 뿐이었다. 조선의 도공을 사무라이로 깍뜻하게 대접하며 사회적 지위와 부를 주었던 일본을 떠나 씹선비의 지옥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은 에도시대 조선의 도공이 전수한 도자기 기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일본의 도자기를 만들었고 유럽에 수출을 하여 세계에 일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본이 유럽에 수출한 청화백자는 화려함과 미적가치, 기술적 완성도는 조선의 백자와는 수준자체가 달랐다. 즉, 조선의 싸구려 백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메이지 유신의 시드머니가 되었다.
조선은 화려했던 고려청자가 퇴보하고 백자가 발전한다. 상품성이 없는 백자가 발전 한 이유는 씹선비 유교 탈레반은 상업을 증오하며 천시하였고 오로지 짱깨와 공자 맹자 똥구멍 빠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짱깨와의 조공무역 외에는 일체의 외국과의 교역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청자를 만드는 안료인 코발트는 서역의 특산물로서 매우 비싼 교역품이었다. 상업이 융성했던 고려시대는 대량의 안료가 수입되어 화려한 고려 청자를 꽃피웠다. 그러나 씹선비의 나라 조선은 유교탈레반의 개밥그릇만 소중했고 비싼 안료를 살 돈이 없는 거지나라였다. 이것을 두고 씹선비의 단아한 정신이 백자로 표현되었다고 정신승리자위질 하는 멍청이들이 있지만, 도자기를 만들던 씹선비도 없었고 현실은 안료도 살 주제도 못되는 거지나라 조선이 역사적 팩트이다. 하기사 일본어의 뿌리는 조선말이었다고 하는 미친놈도 있는 세상에 정신승리 자위질이 뭔대수일 것이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에 근대식 교육과 학교가 보급 되었고 95%에 이르렀던 문맹율은 해방될 때 절반으로 줄었다. 일제가 전수한 현대식 교육은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실시되고 있고, 일제 강점기 갖추어진 교육내용과, 커리큘럼은 현재까지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문명개화를 위한 대대적인 국민교육을 통해 1900년대 초 남자 95%, 여자 90%가 고등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일본은 교육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위상은 각별 할 수 밖에 없었고 유능한 인재들이 국민교육에 참여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 사범학교에서 수학하였고 교사로 재직하며 현대교육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렇게 습득 된 현대교육의 가치와 일본을 통해 전래 된 우수한 서구세계의 문명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흡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