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가 열리고 일본은 당대의 번성을 이어간다.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였고, 도시화는 가속화 되어 1700년대 에도막부의 수도인 오사카의 인구는 100만에 이르렀다. 같은시대 산업혁명의 심장인 영국 런던은 인구가 87만, 프랑스 파리는 58만에 불과했다. 1700년대 오사카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경제는 발달하여 국민 5명중 1명은 전국 여행을 다녔고 풍부한 물산으로 백성은 윤택하게 배를 불리며 살았다. 우리는 겨우 1970년대에 이르러 상하수도시설이 정비 되었으나 오사카는 에도시대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 되었으며 소방서까지 설치 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1700년대 일본은 비약적인 상업의 발달로 지배계층이었던 사무라이가 힘을 잃어 가면서 계급혁명이 일고 있었다. 상업의 발달과 계급제도의 붕괴는 합리적 사회를 지향하는 기반이 형성 되고 중상주의적 실용주의라는 현대적 사상이 용트림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봉건계급을 지탱한 사무라이들은 용도폐기 되었고 계급혁명의 먹이사슬로 힘을 잃어갔다. 사무라이를 대신하여 상인이 국가를 지탱하는 계급이 되었다. 어느시대이든 상인이 그 사회를 지탱할 때 부유해진다. 산업혁명으로 상인들의 시대가 열렸다. 아무짝에 쓸모 없는 잉여인간, 그저 생산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회의 부를 말아 처먹는 씹선비가 지배하는 조선이 부유해진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미개한 조선은 씹선비의 지배하에 사농공상의 계급주의가 요지부동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미개하고 무식한 조선의 씹선비는 시대를 퇴행시키고 있었다. 한양의 규모는 오사카의 10분의 1에도 되지 못했으며, 공중화장실 조차 없어 백성은 길거리 한가운데 똥을 쌌고 남대문 앞 광장 바닥은 똥바닥이었다. 지금시대에도 남아 있는 씹선비는 천민자본주의니, 황금만능주의니 개소리를 하는 대한민국을 보면 혀부터 차게 된다. 21새기에도 씹선비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이 가여울 뿐이다.
더욱기 일본에는 네덜란드를 통해 서구문물이 유입되며 “난학”이 발전하면서 학문적 발달은 비약적인 팽창을 거듭하고 있었다. 공자와 맹자의 엉덩이에 코박고 사는 조선 씹선비의 편협된 학문과 세계관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학문적 융성은 신문까지 발간 되어 배포되면서 시시각각 정보가 유통된다. 이러한 생겨난 요미우리 신문은 지금도 단일 신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문발행부수를 자랑하고 있고, 현존하는 최고 오래 된 신문이다.
당시 오사카내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신문기사
에도시대 신문광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서적의 발간과 신문의 발행은 출판인쇄업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교육이 확대되면서 대다수의 국민은 글을 쓰고 읽을 줄 았았다. 17세기 일본을 찾은 선교사는 유럽은 성주를 비롯한 일부만 글을 읽는데 일본은 어린아이까지 글을 읽고 책을 본다며 경악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는 조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선진국인 일본에 대한 충격과 시샘을 기록하고 있다.
100만채는 있다고 생각되는 집 모두는 기와집이다. 굉장하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 “조선 최대의 대저택” 10배 이상의 넓이로 구리기둥에 내부는 황금으로 장식 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 도시의 크기는 약 40Km 정도로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도시가 있을 수 있을 까? 한양 번화가의 10,000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접해본 통역 통신사가 있지만 그도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진다라고 말했다.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2천년 동안 이렇게 평화봅게 번영하고 있었다니 원망스럽다”
1764년 1월 28일 쿄토
거리의 번영에서는 오사카에 미치지 않다. 그러나 야마토왕이 사는 도이며, 매우 사치스러운 도시다. 산의 모습은 용장, 강은 평야를 둘러싸 흘러 비옥한 농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 이 풍부한 낙원을 왜인이 소유하고 있다. 분하다. 분하다. 이 개와 같은 왜인을 모두 소탕하고 싶다. 이 토지를 조선의 영토로 하고, 조선왕의 덕으로 예절의 나라로 하고 싶다.
1764년 2월 3일 후루야 거리의 번영, 아름다움은 오사카와 같다. 굉장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인구가 많음, 토지의 풍부함, 가옥의 사치스러움 이 여행으로 최고다. 중국의 중심에는 없는 풍경이다. 조선의 수도도 훌륭하지만, 나고야와 비교하면, 매우 흥미롭다. 사람의 아음다움도 최고다. 특히 여성이 아름답다. 저것이 인간일까? 양귀비가 최고의 미인이다 라고 전해지지만 나고야의 여성과 비교하면,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다. 나고야의 미인이 길을 걷는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의 일원은 나고야의 미인을 한 명도 놓치지 않게 머리를 좌우로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1764년 2월 16일 에도(도쿄)
좌측에는 집이 늘어서, 우측에는 바다가 퍼지고 있다. 누각이나 저택의 사치스럼움, 활기찬 사람들, 남녀의 화려함, 성벽의 아름다움, 다리의 배.... 모두가 오사카나 쿄토에서 삼베는 우수하다. 이 훌륭함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나의 재능에서는 불가능하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혀려함은 나고야와 같다.
- 이상 김인겸 “일동장유가” 중에서 -
왜경에서 애도에 이르는 동안 모두 육지였지만 한쪽 옆은 바다였다. 땅의 형세가 평평하고 산천은 험하지 않으며 토지는 비옥했다(중략). 도로는 평평하면서 곧고 발 모양은 네 모서리에는 반드시 다초를 심었다. 시장에는 물화가 쌓여있고 여염집에는 쌀이 넘쳐난다. 그 백성들의 부유함과 물자의 풍부함에 있어 조선은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동사록-
당시 조선은 어떠 했을까?
상전벽해 경천동지하는 일본의 문명개화를 200년간 조선통신사를 파견하여 수십 수백번 지켜본 조선의 군왕과 씹선비는 자신들이 가진 개밥그릇 빠는 것 밖에 몰랐다. 어쩌면 조선의 군왕과 씹선비의 능력으로는 일본의 문명개화의 가치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조선의 수준이다.
사농공상의 신분제 폐지를 주장했던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에는 미개하고 한심한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씹선비의 나라 조선을 그리고 있다.
도성에서 몇리 밖으로만 나가도 시골티가 물씬난다. 재화가 제대로 유통죄지 못하여 물자가 부족하고 학문은 과거시험만 위해 존재하고 일반 백성들은 견문을 넓힐 방도가 전혀 없고 재능은 발견하고 식견을 트이게 할수도 없다.
조선농부들은 1년에무명옷 한 벌도 제대로 입지 못한다. 남자나 여자나 태어나서 침구가 무엇인지 구경조차 못하고 이불 대신 멍석을 깔고 살아간다. 아이들은 겨울에도 벌거숭이가 되기 일쑤고 신발도 신지 못한다. 한둘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다.
- 박제가 북학의 중에서 -
요즘 일본때리기에 미쳐 날뛰는 조선의 개돼지들은 팩트는 등한시 한 채 일본이 망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붇고 있고 조선시대 문화를 전수했다는 사기를 치며 일본을 비하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현실은 일본으로부터 감자 고구마를 전래 받아 굶어 죽는 것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 조선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일본은 선진국이며 스승으로 삼아 배워야 할 대상이다. 당장 일본에서 삼성에 반도체 가공장비를 주지 않으면, 특히 회로를 조사하는 광학장비를 주지 않으면 당장 삼성은 문닫아야 한다. 이런 일본에 정신승리 자위질이나 하는 대한민국의 개돼지가 가소로울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일본으로부터 배웠다. 우리는 과거에도 일본보다 못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베끼고 배워라. 일본이 서구세계로부터 베끼고 배웠듯이. 일본이 서구를 이기고 있듯이 그렇게 일본을 베끼고 이겨야 한다는 인간 박정희의 오기가 고스란이 녹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여명은 그렇게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