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 9월 23일 일본 타네가시마 섬에 중국상선이 표류하여 온다. 그배에는 장차 한일의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문명의 이기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총이었다. 조총을 소지했던 중국상선에 타고 있었던 포르투갈 상인한테 타네가시마 영주는 2억 엔 정도의 은을 지불하고 화승총 두 자루를 구하였다. 타네가시마 영주는 대장장이에게 복제를 명했고 자신의 딸을 포르투갈 상인에게 딸까지 바쳐가며 조총을 완벽하게 복제하였다. 그렇게 일본은 문명개화의 눈을 뜨게 된다. 조총을 통해 최초 일본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였다.
포르투갈에 이어 일본과 독점무역권을 가지게 된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은 서서히 서구문명에 열광하게 된다. 네덜란드를 통해 유입되는 선진 서양문명을 일본은 마른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문명의 지식과 이기는 “난학(蘭學) ”으로 응축되어 일본을 지배하는 지성으로 자리 잡는다. 수천년 중국으로부터 배웠던 공자와 맹자, 문명은 “고학(古學)” 으로 치부되었고 뒷방에 처박았다.
해체신서
일본에 서양의술을 처음 배운 것은 기생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일본 주재 의사로 파견 된 독일출신 프란츠 시볼트는 일본 기생 사이에 딸을 낳았고 그 딸은 일본 최초의 여성의사가 된다. 프란츠 시볼트를 통해 서양의술을 배운 일본은 1773년 39세의 젊은 의사인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에 의해 동양 최초의 인체해부서가 출간 되었다. 그렇게 탄생된 “해체신서”는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서양 의학의 저변이 되었다. 해체신서를 출간한 일본은 “중국은 틀렸고 서양은 옳았다”라고 수천년 중국의 지성과 문명을 폐기 처분함을 선언하였다.
일본을 찾은 조선통신사의 한의사 남두민에게 해체신서를 보여 준 기타야마 쇼우는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 등을 살펴봤으나 옛그림과 상이한 부분이 많더이라” 라고 해채신서를 보여 주었고 남두민은 “딱한지고,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짓이다”라고 천치등신처럼 답변했다.
그렇다 미개한 조선은 문명개화의 필요성 조차 깨닫지 못하는 아둔패기였다. “임신을 하고 싶으면 임신부의 머리털을 태워서 끓여먹어라” 라는 처방이 횡행하던 미개한 한의학 수준에서 인체해부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일본은 문명개화의 몸부림에 온몸이 찢어지는 산고를 겪고 있음에도 조선은 문명개화의 필요성 조차 깨닫지 못했다. 아니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공자와 맹자의 종놈으로 살던 노예들이 문명개화의 욕구는 너무나 사치스런 것이었다. 공자와 맹자를 팔아 백성의 피를 빨아 먹는 조선의 씹선비는 개밥그릇을 지키는 것이 행복 했을 뿐이다.
1773년 일본은 해체신서를 만들어 과학과 문명의 진리에 눈을 뜨고 있었고, 조선은 지나가는 개도 물어가지 않을 공자와 맹자의 영원한 종놈으로 노예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민비는 출산을 하여고 갓난아이의 항문이 막혀 죽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간단하게 항문만 째면 살수 있다는 서양의의 조언을 멸시하며 “왕족에게 칼을 댈 수 없다”라는 충만한 미개함으로, 씹선비의 서푼어치도 되지 않는 아집으로 그렇게 조선은 죽어갔다. 일개중대 200명의 일본군은 우금치 골짜기에서 총알을 막아준다는 부적을 붙이고 죽창 꼰아잡고 덤벼드는 20,000명의 미개한 동학군을 개틀링 기관총 몇정으로 학살하였다. 그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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