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라고 했다. 모든 일은 하나의 이유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각도 못하는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일어난다. 많은 일과 요소들이 톱니바퀴 처럼 맞물려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많은 공간과 시간을 마주할 때 마다 톱니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더 견고해지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톱니바퀴는 맞물리는 과정에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해도 큰 틀에서 보면 또 다른 시작이 되고 있다. 시간도 어떤 사건에 의해 순간 단절된 것 같지만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며, 나중에는 역사란 이름으로 기억된다.
역사를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존재의 기록이라는 다른 이름의 역설이다. 처신이나 성공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제주4・3은 제주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는 사건이다. 4・3은 한 가정의 눈물이고, 지역사회의 아픔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제주의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훈보다 더 중요한 것을 4.3의 역사에서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제주4·3, 그 진실은 무엇이고 화해와 상생의 길은 없을까?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수레바퀴 같은 이치다.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때려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제주4·3사건을 논할 때도 가장 핵심적인 출발점이 바로 이 사건의 성격규명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 하지만 담론은 없고, 양 쪽 주장만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앞세우는 쪽은 폭동 또는 반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4・3주동자 쪽이나 일부 의도적인 틀짓기를 노리는 세력은 민중항쟁이라고 주장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4·3의 트라우마는 반목과 질시에서 시작해 제주사회의 분열로 귀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 과거의 감정과 갈등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넓고 성숙된 마음으로 화합하며 새 출발을 할 것인가? 상대방에게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다면 화해는 어렵다. 남북분단 현실을 직시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서로 냉정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네 잘못도 있지만 내 탓은 없는가도 되돌아 보는 마음이 필요하며, 화합하고 용서하며 상생의 길을 찾는 지혜짜기에 고민해야 한다.
네 탓, 내 탓의 인정에 의한 화해도 서로 용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용서는 자각하는 일이다. 정진석 추기경은 용서에도 조건은 있다고 했다. 고해성사의 다섯가지 조건이다. 먼저 죄의 인정, 잘못했다는 자기반성, 다시 잘못하지 않겠다는 뉘우침, 공개적 자백, 끝으로 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지 않은 대상과의 화해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4·3사건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성격을 규명하고 반작용 현상에 대해서도 정치적 합의를 선언한다면 역사적 해원(解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걸림돌은 접근법에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3사건의 아픔을 평화의 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155조의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근거에 의한다. 선언문에는 '세계평화의 섬'은 제주의 3무정신의 창조적 계승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려는 바람이 나타나 있다. 이처럼 4・3사건의 주문에는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와 평화를 갈망하는 도민들의 의지를 담았다. 문제는 균형감각이 상실된 제주4.3을 관리하는 주최측의 일방적인 자세다. 좌편향 접근법에 의한 역사 인식 때문이다.
역사가 존재의 기록이라면 사실과 허구, 허구와 허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4.3위원회가 펴낸 백서의 제호(題號)는 화해와 상생이었다. 하지만 화해와 상생은 책갈피 안에 활자로 존재할 뿐인가? 지금의 4.3사건은 민중항쟁의 도그마에 빠져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노무현 정부의 4.3진상보고서에는 대한민국이 범죄자로 낙인되어 있다. 화해와 상생 대신 증오와 저주로 보고서를 채워버렸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역사가(家)의 제1계명은 결코 거짓을 적어서도, 편견과 아집이 가미되어서도 안된다”고 지적한 키케로의 지적은 시사한 바가 크다.
제주4·3의 해원(解寃)은 말 그대로 원통함을 푸는 일이다. 가슴 아픈 제주인의 엘레지이지만 그렇다고 그 본질이 왜곡돼서는 안된다. 4·3사건에 대한 성격 규정을 강조한 이유도 억울한 죽음과 이 사건의 실체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4.3이 민중항쟁이다'는 논리대로라면 제주4.3사건은 만들어진 역사이다. 민중항쟁론에 입각하여 “항쟁하다 희생됐으니 억울하다”면 역설적으로 반(反)대한민국 편에 섰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해원의 포커스도 폭동 주동자들을 배제시키고 억울하게 희생된 도민들과의 화해라는 관점에 맞추어져야 마땅하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이념, 사상, 논리는 어떤 전제 위에서 이루어 진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4·3사건, 그 해법의 첫 단추는 팩트에 충실한 성격 규정이며, 반란 주동자와 희생자 옥석(玉石)구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국가적 보상은 그 이후 문제다. 양민들의 희생과 두루뭉수리 섞어 대한민국을 부정한 주동자들까지 추념해야 한다면 화해와 상생의 길은 요원할 뿐이다. 접근법에서 바른 역사 인식이 전제된다면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도 삭혀질 것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바른 처방을 기대할 수 있다. 4·3의 화해와 상생의 길도 그 연장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