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밝혀진 5.18진상규명에 의하면 80년 당시 계엄사는 5월 20일 오후 8시부로 공수부대 철수를 승인했다. 문제는 공수부대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가진 전교사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철수계획을 공수부대 지휘관에게 통지하지도 않았고, 사지에 몰린 공수부대를 구할 대책도 수립하지 않은 채 방치했던 것. 이로서 광주에 파견되었던 천여 명의 공수부대원은 자칫 도청 앞에서 무장시위대에 몰살당할 뻔했다.
만약 21일 오전 10시경 전남지역 무기고 털려 간 시위대차량이 오후 1시까지 그 많은 무기를 싣고 광주에 도착했더라면, 20만 시위대에 완전 포위된 채 빈총 메고 도청 앞에 몰려 있던 천여 명의 공수부대는 어떻게 되었겠나?
또 하나 여기서 살펴볼 중요한 사안이 있다. 공수부대를 향한 시위대의 총공격이 1시에 시작된 건, 광주시장이 12시까지 공수부대를 철수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는 빌미였다. 전교사의 공수부대 철수계획을 광주시장은 어떻게 알았기 때문에 그런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건 공수부대와는 상의도 없이 그렇게 약속했으면 철수시키든가 철수할 수 없는 형편이면 지원군을 보내 공수부대를 보호함이 당연한데도, 광주시장은 시위대와 다시 협상하지도 않았고, 전교사는 공수부대를 그냥 방치해버림으로서 20만 시위대의 포위 속에 공수부대는 고립무원으로 버려졌다.
이런 상황에 44개 무기고에서 2개 연대규모를 무장시킬 수 있는 총기류를 탈취한 차량대열이 1시까지 광주에 도착했더라면, 칼빈 M16 LMG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한 수천 명의 시민군으로부터 공수부대가 어떤 꼴을 당했을지는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다행히 1시까지 무기고 탈취한 차량대열이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현장 공수부대지휘관의 증언에 의하면 1시 시위대의 총공격이 시작될 때 이미 시위대로부터 총성이 울렸고, 심지어 LMG를 아스팔트바닥에 쏘며 돌진해왔다고.
이로서 공수부대는 살기위해 각자도생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으니 대한민국 최정예부대의 씻을 수 없는 굴욕이고 치욕이었다. 이렇게 된 사정을 재조명하면 전교사의 무책임이 도사리고 있으나 놀랍게도 아직 아무도 이 점을 묻지 않고 있다.
전교사는 왜 공수부대를 철수시키지도 않고 구할 대책도 세우지 않았어? 5.18특검도 이 점을 규명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당시 전교사의 이상한 행태를 재조사해야 한다. 이런 게 5.18진상규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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