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씨가 또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가 혼외 자식을 두었고 양육비를 덜 주었다는 문제인데 우리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갖든 말든, 그는 남달리 인간성을 강조해왔고 또 시인이니만큼 시인다운 인간성으로 잘 처리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 태도는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외수씨의 일이 보도되자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감싸주는 사람도 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를 언론이 편가르기용으로 써먹는 바람에 옳고 그름을 떠난 진영논리의 싸움판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일부 언론은 이외수씨의 일을 보도한 후, 평을 하기를 “개인의 신상문제이다”고 했다. ‘개인의 신상문제’라는 말은 개인적인 일이니 남이 옳니 그르니 하지마라는 뜻이다. 이는 이외수씨를 옹호하는 말인데 어는 일방을 편든 점에서도 나쁘지만 개인의 신상문제라 해놓고선 개인의 신상문제를 진영싸움에 끌어다 쓴 점에서 더 나쁘다 하겠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외수씨가 잘했니 잘못했니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여간 언론의 보도대로 이외수가 그런 일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그것이 네티즌들이 비난을 하면 안 되는 ‘개인 신상문제’인가?
연예인은 그냥 연예인일 뿐인데 언론이 그들을 공인(公人)으로 올려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무거운 도덕심을 짊어졌다. 이외수씨는 이왕 시인이니 가만히 있어도 공인일 터인데 언론이 더욱 추켜올려 주었다. 그를 트대(트위터 대통령)로 모신 것도 언론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개인의 신상문제’라며 그를 감싸고 있다. 만약 대통령이 혼외 자식을 두었고, 양육비를 적게 주었다면 그것이 개인 신상문제라 하여 언론이 가만히 있겠는가. 이외수씨의 이번 일을 ‘개인 신상문제’라고 우기면 국민의 도덕심과 판단기능이 더 흐려지게 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문제도 ‘개인적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행위도 ‘개인’의 신념에서 나오고 전쟁도 ‘개인’의 판단에 기반한다. 지도자가 전쟁을 결심하고 그 결심은 개인의 가치관 세계관 등등에서 출발한다. 그렇다하여 정치나 전쟁을 개인적 일이라 하지 않는다. 별명이 트대인 사람의 일. 그것도 공인의 일을 어찌 “개인의 신상문제‘로 본단 말인가.
일부 언론이 이외수씨를 감싸주는 것은 갸륵한 일이다. 그러나 감싸주고 싶어서 감싸주는 것이라면 진영논리에 끌어다 써먹지는 않을 것이다. 빨갱이는 개인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그런 무언가가 언론의 이외수 감싸기에서 어른어른 비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