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진실 도민보고서’에 나타난 원희룡의 실체
마. 희생자 재심사 결정이 내려진 부적격 희생자 53명
부적격 희생자 재심사 문제는 제주 여론은 반대가 우세했지만, 중앙 여론은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4․3국민모임’은 집회와 세미나를 연달아 개최하면서 부적격 희생자 재심사를 촉구했고, ‘4․3대표회의’에서는 제주로 내려와 제주4․3평화공원 앞에서 불량위패 화형식을 거행하는 등 4․3희생자 재심사를 촉구하는 여론은 거칠 것이 없었다.
부적격 4․3희생자에 대한 재심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열화와 같이 빗발치자 결국 과거사지원단은 여론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사지원단은 어렵게 4․3중앙위원회를 설득하여 동의를 받는데 성공했다. 4․3중앙위원회가 부적격희생자 재심사에 동의하고 나서자, 4․3희생자유족회의 정문현 회장이 서명하고, 이어서 4․3정립유족회의 이동해 회장도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부적격 희생자 재심사는 급물살을 탔다. 부적격 희생자에 대한 재심사 지시가 제주도로 하달되었다.
부적격 희생자 53명에 대한 실태조사가 2015년 12월 23일 행정자치부에서 제주도로 공식으로 요청되었다. 2013년 11월 부적격 4․3희생자 재심사에 대한 민원 청구가 처음 제기된 이후 만 2년 1개월 만에 이루어진 성과였다.
행자부는 제주도에 53명의 희생자 재심사 대상을 조사해서 1월 29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고, 2016년 1월 6일 제주를 방문한 행자부 차관은 “대통령이 제주4․3위령제에 참석하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위패를 정리해야 된다.”고 강조하며 실태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부적격 희생자 재심사는 제주도에 의해 거부되었다. 제주도에서 재심사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어나자 원희룡 도지사는 여론을 의식하여 반대쪽에 서고 말았다.
4․3바로잡기라는 대장정에는 중앙과 지방의 수많은 애국인사들이 동원되었고 수 년 간에 걸친 피와 땀이 서려있었다.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별로 나오지 않았고 유일하게 얻은 성과가 부적격 4․3희생자 재심사였다. 개인들의 성금으로 진행되어 얻어진 소중한 성과가 소신 없는 정치인의 포플리즘으로 인해 정상의 목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제주도 도지사의 재심사 거부로 인해 부적격 4․3희생자 재심사는 좌초되었고, 그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4․3추념식 때 4․3평화공원에 한 번도 참배하지 못했다. 공산주의와 싸우며 건국한 나라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공산폭도들의 위패에 추념을 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보수정당의 도지사였지만 4․3정책에서는 자기 색깔이 전혀 없이 민주당이 만들어놓은 4․3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특히 원희룡 도지사가 4․3정립유족회의 사회단체 등록 요청을 거부하면서 4․3정립유족회에 보낸 공문에는 사회단체 등록 거부 이유로 “4․3정립유족회가 화해와 상생을 저해하는 단체”이기에 거부한다고 쓰여 있었다. 4․3바로잡기를 화해와 상생을 저해한다는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2018년 원희룡 도지사는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4․3특별법 개정안에는 기존 4․3의 진실에 대해 부정·왜곡하는 사람들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에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4․3정립유족회 회원들처럼 4․3바로잡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는 조항이었다. 이 개정안에 대한 찬성은 자기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로써 4․3바로잡기의 마지막 성과였던 부적격 희생자 53명에 대한 재심사 희망은 제주도를 거치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론 진실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바. 부적격 4․3희생자 1,300여 명의 명부
부적격 희생자 53명에 대한 재심사가 원희룡 제주도정에 의해 좌초되었을 때 많은 것들이 함께 침몰되었다. 뜻있는 애국인사들의 노고와 원희룡 도정에 대한 기대가 침몰하였고, 왜곡된 4․3의 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가라앉아 버렸다. 조금이나마 4․3바로잡기의 뜻을 알아먹었던 박근혜 같은 대통령이 이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며, 원희룡 같은 도지사가 있는 한 4․3바로잡기는 요원할 것이라는 사실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직 4․3정립유족회에는 부적격 희생자 1,300여 명의 명단이 있었다. 이 명단은 4․3평화공원이 개장되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약 10여 년에 걸쳐 찾아낸, 헌법재판소 결정을 정면으로 위배한 부적격 4․3희생자들이다. 4․3평화공원에 가짜 희생자들이 많다는 제보가 들어와 일단의 인사들이 조사하기 시작한 이후로 자유수호협의회와 그 바통을 이어받은 4․3정립유족회에서 일궈낸 금자탑 같은 것이었다.
이 가짜 희생자 발굴 작업에는 국가의 권력이 개입된 것도 없었고 국가의 비용이 투입된 것도 없었다. 애국적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자기 사비를 털어 일일이 마을을 순회하며 증언을 채취했고, 여기에 4․3의 진실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양심적 도민들이 증언에 나서주면서 작성된 명단이기에 1,300여 명의 부적격 희생자 명단은 더욱 값진 것이었다.
이 명단은 4․3폭동 당시 살인 방화 납치 등 폭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고, 헌법재판소에서 4․3희생자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던 바로 그 대상자들이다. 이 명단에는 폭도사령관, 북한인민군사단장, 북한 인민군, 남파간첩, 일본 도피자, 월북자 등 대한민국에 항적한 남로당 핵심간부를 비롯해 심지어 4․3과 무관한 생존자, 자연사한 자, 자살한 자들까지 부적격자 상당수가 희생자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은 4․3정립유족회에서 비정기적으로 발행하는 '4․3의 진정한 희생자는!' 간행물에 일부가 비실명으로 공개되어 있다. 이 중에 실명이 공개된 명단은 2015년 안행부에 재심사가 요청된 104명을 포함해 164명 정도이다. 확보된 부적격 희생자의 90% 정도가 아직 공개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더욱 험악한 것은 파도 파도 부적격 희생자가 계속 발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금 문제 등으로 부적격 희생자 발굴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제주4․3진실 도민보고서'(이하 4․3도민보고서)가 작성될 때 부적격 희생자 1,300여 명의 명단 공개는 당연히 검토되었다. 그러나 명단 공개는 뒤로 미뤄졌다. 증언자에 대한 보호 차원도 고려되었지만, 1,300여 명의 부적격 희생자 명단을 공개 하려면 4․3도민보고서의 분량과 비용이 늘어나고 시간이 소요되면서 4․3도민보고서 발간이 늦어진다는 이유였다.
부적격 4․3희생자 명단 공개는 도민의 몫이 아니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들의 몫이었고 원희룡 도지사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고 왜곡을 바로 잡지는 못하더라도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좋았었다. 부적격 희생자 명단을,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1,300여 명의 명단을 국가가 아닌 일개 유족회 단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국가는 비정상적이며 정치인은 무능하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 1,300여 명의 명단은 선동과 인기 영합이 난무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조롱하는 상징물 같은 것이다.
부적격 4․3희생자 1,300여 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는 4․3정립유족회에서는 언제든지 책임 있는 기관이 요구한다면 명단을 인계해 준다는 입장이다. 언젠가 당선 보다는 역사적 사실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 나타날 때, 언젠가 진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가치로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 할 때 이 명단을 작성했던 사람들의 노고는 제대로 평가 받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대통령과 정상적인 도지사가 다스리는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일반 도민들이 나서서 4․3도민보고서를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 '제주4.3진실규명도민연대' 발간 '제주4.3진실 도민보고서'에서 발췌

차 례
서문 6
1. 제주4․3사건의 개요 11
가. 제주4․3사건의 정의(定義) 11
나. 제주4․3사건의 대강(大綱) 11
다. 제주4․3사건이 폭동․반란인 이유 15가지 12
2. 제주4․3사건의 전개 19
가. 제주4․3사건의 배경 19
(1) 8․15 광복과 군정 19
(2) 유엔의 총선결정과 남로당의 5․10선거저지투쟁 20
(3) 8․15 광복 후의 제주도 상황 22
나. 4․3사건 발발과 미군정의 진압작전 27
(1)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공격 준비 27
(2) 남로당의 4․3무장공격과 미군정의 대응 31
(3) 남로당 제주도당의 5․10 선거방해 38
(4) 국방경비대 제11연대의 진압작전 40
(5) 남로당의 지하선거와 해주대회 45
다. 정부수립 이후의 교전 상황 48
(1) 정부의 전투 준비 48
(2) 제9연대의 교전 상황 53
(3) 제2연대의 교전 상황 56
(4) 제주도 전투사령부의 교전 상황 59
(5) 교체 부대의 교전 상황 64
(6) 전쟁 발발 이후 경찰의 교전 상황 65
3. 제주4․3정부보고서의 왜곡과 날조 71
가.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문제점 71
(1)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역사 뒤집기 71
(2)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의 편향성 72
(3) 화해와 상생이라는 사기극 74
나. 1947년 3․1사건의 왜곡 77
다. 2·7폭동 지령
라. 김익렬 ‘4․28평화회담’의 허구 80
마. ‘오라리 사건’의 창조 82
바. 남로당 중앙당 지령의 은폐 85
사. 다랑쉬 사건의 날조 88
아. 4․3희생자 숫자 부풀리기 90
자. 소개령(疏開令)과 축성(築城) 93
차.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 96
카. 폭도들의 대습격 101
타. 사법부 재판 112
파. 학교 소실 피해 상황 116
4. 헌법재판소 결정에 위배된 부적격 희생자들 123
가. 수형인(受刑人) 희생자 123
나. 4․3희생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126
다. 부적격 희생자 검증 청문 작업 129
라. 희생자 재심사가 청구된 부적격 희생자 104명 132
마. 희생자 재심사 결정이 내려진 부적격 희생자 53명 134
바. 부적격 4․3희생자 1,300여 명의 명부 136
사. 재심사가 청구된 부적격 희생자 107명의 명단 139
부록
1. 김달삼의 해주인민대표자대회 연설문 250
2. 제주4․3사건의 문과 답 262
3. 제2연대에 붙잡힌 남로당 반란군 312
4. 4․3폭동 역대 인민해방군 사령관 계보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