副題 : 저축의 逆說
우리는 자신의 所得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소비를 하면
저축할 여윳돈이 없어서 목돈이 쌓이지 않아
결국 가난해진다고 알고 있으며 實際로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富者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어떤 때는 짠돌이가 되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개인에게는 맞지만 국가 전체에도 해당될까?
국민 모두가 짠돌이가 된다면 정말 그 나라는 富强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불경기일 때 이 논리는 더욱 맞지 않는다.
그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景氣가 침체에 빠지면 미래가 불확실하므로
개인은 이것에 대비하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려고 한다.
그런데 모든 개인들이 소비를 줄이면
기업의 賣出이 줄어들고 在庫가 늘어난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과 고용을 줄일 수 밖에 없게 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져 사람들은 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져
나라의 경기는 더욱 침체에 빠지는 惡循環이 되풀이된다.
이런 현상을 “저축의 逆說(paradox of thrift)”이라고 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저축의 모순”, “節約의 모순”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저축의 역설은 바로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으로 촉발(觸發)된
심각한 불경기에 봉착했을 때 나타났다.
불경기에 직면한 家計들이 모두 소비를 줄이면서
경기가 더욱 깊은 不況에 빠졌던 것이다.
이것을 통찰력 있게 看破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가계가 소비를 늘리지 못한다면 정부라도 財政赤字를 감수하고
정부의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處方을 내 놓았다.
그래야 경제 全面에 수요가 늘어나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고
생산과 고용이 증가돼 결국 가계의 소득이 올라가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이것은 善循環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근로장려금도 그렇다.
住居수당도 있고 어디에는 長壽수당도 있다고 한다.
혹자는 그것이 생활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국가적으로 보면
거기에 드는 예산은 몇 兆 단위의 돈이다.
그것이 소비의 증가로 나타되면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때 심각한 불경기를 겪었다.
국민이 哀悼의 물결에 同參하여 사치성 소비를 줄였다.
그것이 희생자에 대한 禮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을 퍼내면 옆의 물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것이 물결 즉 波長이다.
그것은 가만 있지 않고 주변으로 퍼진다.
세월호의 불경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商人들은 말한다.
1997년의 IMF사태 때도 이렇게는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1666년 런던에서는 大火災가 발생해 영국 전체가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것이 엄청난 災殃이긴 했지만 런던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需要가 늘어나 영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런 말이 있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고 말이다.
이와 비슷한 視角으로 보면 이런 현상도 있다.
우리가 꿈 꾸는 理想鄕은 이것이다.
犯罪 없는 사회에서
국민 모두가 健康하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 않다.
만일 우리 주변에서 범죄자가 일제히 사라진다면?
그러니까 나쁜 놈은 하나도 없고
온통 착한 사람들만 사는 나라를 말한다.
그렇다면 밥그릇을 놓아야 하는 직업이 많다.
경찰 검찰 판검사 변호사는 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도소와 교도관들도 할 일이 없다.
또 있다.
국민 모두가 건강하다면 병원에 갈 일이 없어진다.
이것은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의료업계가 붕괴되고 제약회사는 문을 닫는다.
의사 약사 간호사 간병인 등이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제약회사는 부도가 나서 직원들을 모두 해고해야 한다.
건강식품과 운동기구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에 가서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다.
그 나라는 판검사 변호사 의사들이 인기가 없단다.
왜냐하면 소득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대신 配管工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당연히 그들의 소득이 높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땅은 넓고 인구가 적기 때문에 紛爭이 많지 않다.
기후가 좋고 公害가 없으므로 국민의 대부분이 건강하다.
그러므로 ‘士’나 ‘事’字 직업은 별로이고
대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육체노동 직업이 인기가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득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逆說이 등장한다.
사깃꾼 깡패 성폭력자 마약중독자 도박꾼 바람쟁이 등이 밉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간은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제를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몸이 아픈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기 때문이다.
경제는 생산 금융 유통 써비스로 성장한다.
그것의 組合에는 너 나 없이
또 신분의 高下나 범죄의 前科 여부를 가리지 말고
다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슬기로운 방법이다.
웬지 꺼림찍하지만 말이다.
개미의 저축은 그들만의 행복이다.
그러나 개미가 共同體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없다.
공동체가 망하면 따라서 개미도 같이 망한다.
그것이 生態系이다.
반면에 베짱이가 놀고 먹는 것은 不德의 所致지만
그의 게으름과 사치는 경제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