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제작되어 1979년에 칸느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1980년 영국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과 남우조연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감독상, 남우조연상, 음악상 수상. 아카데미 8개 부문 노미네이트, 최우수 촬영상과 음향상 수상, 그에 더하여 2001년에는 리덕스판이 칸느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으로 초청된 아주 유명한 영화가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코폴라 감독은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의 소설 Heart of Darkness을 철학적인 전쟁영화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코난,’ ‘바람과 라이온’의 시나리오작가 존 밀리어스가 참여하면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제작과정이 매우 순탄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촬영지로 선정된 필리핀의 회교반군回敎叛軍의 공세로 애초 필리핀 정부가 약속했던 헬기와 조종사 지원이 여의치 못한데다가 40년 만에 최대 규모라는 허리케인이 몰아쳐서 세트가 망가지는 등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했다.
무엇보다도 대배우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와 코폴라 감독의 이견차를 좁히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결국 필리핀에서의 촬영기간은 애초 생각했던 네 달에서 열다섯 달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제작비는 1,600만 달러에서 3,200만 달러로 뛰고 말았다.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코폴라 감독이 1,600만 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고 말았다니 이 작품에 쏟은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영시간 155분에 걸쳐 웅장하게 전개되는 이 영화는 우리 문명사회의 허허실실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느껴질 만큼 철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리멸렬한 전쟁에 회의를 느끼는 한편,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장보장교 ‘윌라드(Willard) 대위(마틴 쉰Martin Sheen분)’는 어이없는 명령을 받는다.
전설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능한 장교 ‘커츠(Kurtz) 대령(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분)’을 암살하라는 명령이다. 그는 이미 군의 명령권에서 벗어나 캄보디아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윌라드 대위는 승무원 4명의 해군보트로 커츠 대령을 찾아가기 위해 캄보디아로 흐르는 강줄기를 타기 전에 ‘킬고어(Kilgore) 중령(로버트 듀발Robert Duvall분)’의 부대와 접촉한다.
킬고어 중령은 서핑 마니아로 전투를 장난처럼 수행하는 별난 인물이다.
캄보디아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베트콩 위장 선박으로 오인하여 민간인을 사살하는가 하면 적의 기습으로 전우를 잃기도 하고 전투에 미쳐버린 미군병사들을 만나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커츠 대령의 왕국에 도착한 윌라드 일행은 시체가 사방에 나뒹구는 잔혹한 상황에 놀란다. 신神으로 군림하고 있는 커츠 대령은 윌라드 대위에게 이 전쟁의 악몽과 부도덕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철학을 고향의 아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윌라드 대위는 자신이 점차 미쳐가고 있음을 느끼며 결국 커츠 대령을 살해하고 마는데 이미 정글의 법칙에 동화되어버린 커츠 대령의 부하들은 승리자 윌라드 대위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전쟁에는 중독성이 있다.
윌라드 대위가 그렇다. 그는 밀림의 전투에 중독된 사람이다.
베트남에서의 임기를 끝내고도 아내의 이혼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다시 밀림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주월한국군(駐越韓國軍) 중에도 복무연장을 했던 병사가 수도 없이 많다. 전쟁중독증인 셈이다.
베트남전쟁에는 특징이 있다. 전면전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전차와 장갑차 대신 헬기가 전쟁을 주도한다.
호텔 전정에서 돌아가는 선풍기소리가 헬기의 프로펠러소리로 들릴 만큼 헬기는 땔 수 없는 밀림전의 도구다. 헬기의 프로펠러소리로 들리는 환청, 이 또한 중독성이다.
윌라드 대위가 넝강으로 가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만난 공수부대 중령 킬고어는 지독한 전쟁중독증에 걸린 장교다. 베트콩의 시체로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이다.
전쟁터라서 그런 걸까.
모든 판단을 순간적으로 내려 버리는 킬고어 중령에게는 카리스마가 있다. 적의 박격포 탄이 쏟아지는 와중에 윈드서핑을 하는 강심장이다. 적진을 공격할 때, 확성기에 웅장한 바그너 음악을 틀고 포탄을 퍼붓는가 하면 네이팜탄(napalm彈)의 휘발성(揮發性) 냄새를 향긋하게 느끼기도 하는 걸물이다.
윌라드 대위 일행은 어이없어하지만 킬고어 중령의 이런 객기가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건 분명하다. 그에게 전쟁이란 한마디로 재미있어 못 견디는 게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모든 병사들이 킬고어 중령처럼 전쟁에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정신병자라고 몰아세우는지도 모른다. 장군이 커츠 대령을 정신병자로 규정하는 이유가 정당하다면 군에서 이탈한 커츠 대령 또한 나름대로는 정당하다.
“우린 그들을 다 죽여야 한다. 모조리 태워버려야 한다. 돼지들도 전부, 소들도. 마을도, 군인들도 모두. 그들은 날 살인마라 부른다. 우습다. 살인마가 살인마를 비난하다니.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우린 이 거짓말쟁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그 고위직 놈들, 난 그들을 증오한다.”
커츠 대령은 미국이 낳은 최고의 장교였지만 베트남전쟁에 대한 그의 건의는 정치적인 이유로 묵살되기 일쑤였다. 유머와 좋은 인간성, 지휘와 작전능력을 겸비했던 그가 특전대에 지원하고부터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다는 것이 장군의 진단이다.
그러나 베트남 군사고문단의 일원이었던 그의 건의를 받아들였으면 미국의 대규모 베트남참전은 없었을 것이다.
상사의 잘못된 작전으로 위기에 처한 부대를 사전 명령 없는 작전으로 구했다는 이유로 문책하려다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어쩔 수 없이 대령진급을 시켜주는가 하면 무능한 고위층에 의해 더 이상의 진급기회가 막히고 지원했던 특전대에서 이중첩자들을 사살해서 체포명령이 떨어지기까지 그가 생각한 것이 무엇일까.
커츠 대령이 무능한 군 당국자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자기만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라오스로 가는 길목엔 곳곳에 미군기지들이 있다. 때로는 위문공연을 오는 아리따운 아가씨들도 있게 마련이다.
전쟁터의 병사들은 무엇이든 극단적으로 놀아난다. 공연 중인 아가씨들을 안아 보려고 무대에 뛰어든 병사들로 엉망이 되기 일쑤다.
윌라드 대위 일행이 강을 타며 발견하는 기지에서 아군 부상자가 있다고 알려줘도 그러려니 하는 병사들이다. 반응이 너무 빠르거나 관심 밖이거나 모든 것에 지나친 거다.
한창 전투중인 부대에서는 자신의 지휘관이 누군지도 모른다.
당장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 뿐, 부임하는 대로 전사해 버리는 지휘관이야 있든 없든 상관없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정신병 수준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처신이다.
인간은 갈등의 동물이다.
전쟁터라고 해서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갈등의 본질本質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섯 명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바로 코앞에서 죽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나와 같은 미국인에다 장교다. 뭐가 다르냐고? 확실히 다르다. 빌어먹을! 여기선 교통딱지 때듯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임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커츠 대령의 이력서를 검토하면서 일으킨 윌라드 대위의 갈등이다.
살인명분이 달라지는 건 누군가가 붙인 기준 때문이다.
자국장교를 죽이는 것과 베트콩을 코앞에서 죽이는 게 다르다는 생각이 갈등의 시작인 것이다.
더구나 킬고어 중령 역시 살인마임에는 마찬가진데 커츠 대령만을 죽이려는 당국의 기준에 의문을 지니기 시작한 윌라드 대위다.
윌라드 대위를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것이 임무지만 군인으로서의 정찰선 병사로서의 의무는 소홀히 할 수 없다. 때마침 지나는 베트남인 선박을 검문檢問하던 해군병사들은 강아지를 숨기려는 여인의 행위를 무기를 꺼내려는 것으로 오인하고 사살해 버린다.
오해였음이 밝혀졌지만 살인멸구殺人滅口라, 남편마저 사살하고 만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도 잠시, 베트남 여인이 데리고 있던 강아지가 귀여워 못 견디는 병사들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강아지가 더 소중한 병사들이지만 그들의 갈등은 고작 강아지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모아질 뿐이다.
커츠 대령을 만난 윌라드 대위는 같은 임무를 받고 왔음에도 오히려 커츠의 부하가 되어버린 전임자들과 다름없이 갈등에 휩싸인다.
“전 비밀지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내 부대를 섬멸殲滅하려는 이유를 말해 주던가?”
“당신은 완전히 미쳤다고 했습니다. 당신 방식은 불온하다고. 그런데 방식 자체가 없군요.”
“난 자네 같은 사람을 기다렸어. 원하는 게 뭔가? 자넨 자객인가?”
“전 군인입니다.”
“자넨 그 어느 쪽도 아니야. 슈퍼에서 보낸 배달원에 불과해.”
시체가 나뒹구는 참혹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커츠 대령의 분명한 철학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윌라드 대위다.
그러나 커츠 대령은 윌라드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희망한다. 스스로의 갈등이 너무 지나쳐 삶을 견디지 못할 만큼 버거운 거다.
전쟁터에도 삶은 있다.
윌라드 대위가 캄보디아까지 타고 간 보트 승무원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이나 다름없다.
기관장 ‘셰프(프레더릭 포레스트Frederic Forrest분)’는 주방장 출신인데 뭐든 쉽게 빠져드는 성격이고 ‘랜즈’는 유명한 서핑선수인데 총이라곤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음직한 애송이다.
‘클린’은 빈민가 출신으로 오히려 전쟁을 신분상승의 기회로 이용하는 병사다. 함장 필립스는 병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임무를 이해하는 병장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작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작은 보트 안에도 삶이 있고 우정이 있으며 다툼도 있다. 적진을 돌파하면서도 라디오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보트에 매달려 수상스키를 즐긴다. 적의 화살 세례를 받고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바로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전우가 전사했을 때는 이들에게도 슬픔은 있다.
그 슬픔에서 손쉽게 탈출하기는 하지만. 손쉽게 슬픔에서 벗어난다고 삶이 없는 건 아니다. 죽고 죽이는 일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쟁터기에 모든 사이클이 빠를 뿐이다.
전투 중에도 삶은 있다. 킬고어 중령 부대가 베트콩마을을 기습할 때, 헬기가 착륙하기 전, 철모를 깔고 앉는 병사를 보고 셰프가 묻는다.
“철모는 왜 깔고 앉는 거지?”
“고환에 총알이 맞을까봐.”
폭소를 터뜨리던 셰프는 슬그머니 철모를 깔고 앉는다.
당장 목숨을 잃더라도 종족번식능력만큼은 보호하고 싶은 게 모든 생명체의 본능인 셈이다.
헬기 연료가 떨어져서 꼼짝 못하는 위문공연단에 연료 두통을 주는 대신 공연단 아가씨들과 성교를 할 기회를 얻은 윌라드 대위와 동행하는 해군병사들은 모처럼 즐겁다.
플레이보이지에 게재된 섹시스타의 몸값이 연료 두통이다. 가치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코폴라 감독은 1979년에는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가 20여 년이 흐른 후에는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로 변모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술회한 바 있다.
발표 당시 관객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개봉 당시 부득이하게 잘려 나갈 수밖에 없었던 필름을 추가하고 주제를 보다 확실하게 드러내도록 영화를 새롭게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것도 관객들의 의식수준 향상에 힘입었다고 말했다.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새로 덧붙인 53분의 에피소드와 그에 따라 명료해진 주제의식, 충격적인 영상과 사운드를 가진 영화로 새롭게 탄생한 리덕스판은 2001년 칸느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으로 초청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에 추가된 장면들은 대략 4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다.
윌라드 대위가 서핑광 킬고어 중령의 서핑보드를 훔친 뒤 정글에 숨는 장면, 위문공연이 끝난 뒤 정글로 향하던 윌라드 대위 일행이 연료가 떨어진 플레이걸들과 다시 만나 연료와 육체를 맞바꾸는 장면, 윌라드 대위 일행이 밀림의 프랑스 가족을 만나는 장면, 커츠 대령과 윌라드 대위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이다.
커츠 대령이 가진 사상과 영화의 주제들이 이 장면들을 통해 더욱 부각되었다고 할까.
그러나 내 취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영화였다.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듯 보이는 영상운영이 그렇다는 거다.
극적상황을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전쟁터라고는 하지만 인간심리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시니컬하게 끌고 간 장면이 많았다.
어쩌면 나의 이런 불만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관객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린 인간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직접 경험했기에 느껴지는 이질감 같은 것 말이다.
어쨌거나‘지옥의 묵시록’은 충격적인 영상만큼이나 우리의 문명사회의 문제들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표현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