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할 때 얘기다.
퇴직한지 벌써 20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두 번 변한 셈인가. 그럼에도 사람들 생각은 그다지 변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젊었을 때의 나는 의욕이 넘쳐 곳곳에 문제를 양산하고 있었다.
부서회의를 하다가 나와 의견이 다른 직원과 언성을 높이는 게 다반사였는데, 그런 전투적인 나의 성향은 부서 직원들 간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타부서 직원들과 업무협의를 하다가도 부딪쳤고 심지어는 사업 승인권을 지닌 부처와의 협의과정에서도 열을 올리기 일쑤였다.
비교적 열심이라는 평과 능력 있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그런 과격한 성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상대하기 거려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 때 직장선배께서 술을 사며 해주신 말씀이 이랬다.
“하는 일을 성공하고 싶지?”
“내.”
“그런데 성공하고 싶은 그 일을 혼자 할 수 있을까?”
“…….”
“지금처럼 좌충우돌하면 오히려 적만 만아질 것 같은데?”
“……과장님께서 아시다시피 빤한 걸 가지고 트집이나 잡고 뒤에서 누명이나 씌우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자네 생각이 옳다는 전제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이 트집으로 보이는 거겠지?”
“…….”
“자네 생각이 옳다고 누가 알려주었는데? 성서에 그렇게 쓰여 있던가? 아니면 불경에 그렇게 쓰여 있던가.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 한 근거가 뭔데?”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기에 타부서 직원들이 이견을 제시하는 걸 트집 잡는다고 생각했다는 선배의 지적에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이었다.
“자네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면 이견을 제기하는 직원들 역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토론이 필요하고 회의를 거듭하는 거야. 나는 자네의 판단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편이지. 그러나 그건 같은 업무에 전공이 같기에 공감하는 것일 터.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관례로 판단하는 행정부처 직원들이 자네 의견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진실이라는 거야. 여기에 피차 서로간의 이견을 좁히는 방법만 있을 뿐, 누구 의견이 옳으냐. 그르냐는 처음부터 없는 거지.”
그야말로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선배는 나의 어리석음에 화를 내지 않았다. 내 마음을 충분하게 이해해준 바탕에서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고 있었다.
마신 술이 깨끗하게 깨는 느낌이었다. 이럴 땐 냉큼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나마 덜 망신당하는 것이다 싶어서 즉각 사과하고 말았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장차 제가 어찌해야할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래……, 자네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듯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자네처럼 트집이나 잡는다, 무식한 놈들과 일 못하겠다. 모르는 주제에 아는 척 하지 말라! 등등 화를 낸다면 저쪽 직원들이 판단하기에는 이미 자네 말이 틀린 것으로 인식할 밖에 없지. 어쩌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직장분위기에 흙탕물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화가 났을 때, 무차별로 상대의 인격을 깔아뭉개던 말들이 그대로 내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잘났다고 착각하는 동안 저들은 나를 미꾸라지로 보았을 터. 그걸 모르고 나 잘난 것만 알았던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이었던 것일까.
“자네 소신을 관철시키려면 화를 내기 전에 우선 저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게 순서야. 비록 전문성이 부족하고 현실감이 없는 판단일지언정 그들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기에 경청부터 하라는 거지. 상대를 모욕하는 태도로는 상대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가 없는 거지. 상대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찌 상대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날이후 일을 풀어 나가는 내 태도가 현저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조심을 하였음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실수를 저질러 놓고는 반성할 수 있어진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였고 반성을 함과 동시에 상대에게 나의 과격한 언변을 사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주위 상황을 보다 부드럽게 끌고 갈 수 있었다.
선배가 참으로 핵심을 찌르는 충고를 해주었음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었다.
비록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상대의 생각을 경청하고 그의 의견을 충분하게 이해한 다음, 내 생각을 이야기 하면 상대 역시 내 생각을 진솔하게 들어주더라는 거다. 내가 상대의 생각을 듣지 않으면서 상대가 내 생각을 들어주기를 바란 사람이 다름 아닌 나였다는 것이다.
내가 간부가 되었을 때, 결혼하고 자식이 생겼을 때, 부하직원들과 딸아이에게 선배가 나에게 해주었듯 충분히 들어주기부터 했었다.
글쎄, 친구들이 ‘젊었을 때의 너는 지금의 네가 야냐.’ 라고 말할 만큼 변해버렸다지만 나이 육십을 넘긴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시시때때로 감정부터 앞서는 나를 발견하곤 쓴 웃음을 짓기도 하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요즘 문재인 정권이 하는 짓을 보노라면 선배에게 충고를 듣고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기 이전의 독선적인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실소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