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집단은 '정의'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의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한 권력 집단일 수록 결국은 '불의'와 '악'을 독점하고 국민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다. 정의를 신봉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집단이 1917년에 러시아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바 있고, 이에 대항하는 이른바 보수주의 정치집단도 닮은 꼴이 되어 '정의'를 독점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20세기는 극단의 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정치색체상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의'를 독점하려는 무리들이 판치는 곳이 됐다. 요즈음은 정치권을 넘어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정의와 도덕을 독점하려는 무리들이 발호하고 있다. 이렇게 정의와 도덕을 독점하려는 자들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충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무리들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일수록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기 보다는 타는 목마름으로 정의를 갈망하는 사회가 된다.
특정한 성과를 전적으로 자신들만의 공훈으로 여기고 그렇게 선전하는 것이 정의를 독점하려는 권력집단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그런 권력집단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채무의식을 갖고 봉사하려는 자세를 취하기 보다 채권의식을 갖고 보상을 받으려는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군사투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이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것을 의식해서인지 몰라도 한국사회에 대해 채무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박정희 정권의 채무의식이 채권의식에 밀려나게 됐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12.12 쿠테타 집단은 처음부터 채권의식과 보상심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뒤로 집권에 성공해 여야가 바뀌는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고 자부한 '민주화 세력'에게도 채권의식과 보상심리가 많았다. 이런 점에서 집권기간중에 국민이 보기에 오만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박정희와 그의 정권을 평가하는 경우에는 우선 그와 경쟁을 벌였던 다른 정치집단들과 비교해봐야 한다. 국정수행능력과 도덕성이 비교의 기준이 돼야겠지만, 이와함께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받는 처지였고 수백년 동안 쌓였던 부정적인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점 등의 시대적 제약조건들을 고려해서 그러한 비교를 해야한다. 다시말해 비교의 전제조건과 기준에서 먼저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1948년 이후 오랜기간 집권한 보수세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권력만능의 미신에 빠져있음을 자백하는 꼴 밖에 안된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있는 모든 병폐를 박정희 정권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장하면서 그 책임을 과거로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내는 태도이다. 모든 성과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다음 세대는 그 그림자를 제거하는 책무를 담당해야할 사람들이다. 그런 책무를 가진 자들이 그 책무를 성공적으로 이행하지는 못한 채 그 그림자를 드리운 과거 탓만 하는 것은 책임전가의 비겁한 태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교통지옥의 현실에 대한 책임을 자동차의 대중화를 구현한 헨리포드에게 돌려야 하겠는가?
출처 : 이윤섭. 박정희 정권의 역사. 필맥. 2011.06 p434~436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이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은 참담한 것이었다. 새로 수립된 국가는 그 직전에 존재했던 국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데, 조선 왕조는 과거로 부터 내려오던 역사와 문화를 단절한 폐쇄적인 국가였다.
조선왕조가 국가경영의 기본원리로 내세운 성리학은 학국의 기존 역사,문화와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한국인은 고대로 부터 외래문화에 대해 뛰어난 포용력을 갖고 있었고 다원적인 가치관의 병존을 허용하는 관용적인 민족이었다. 그래서 고래 이래 한국은 열린사회였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내세운 성리학은 볼셰비즘 이상으로 독선적이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사고체계였다. 이로인해 외국과의 교역이 억제되어 경제가 자급자족으로 후퇴했고, 정치와 사회의 자정(自靜)기능이 소멸했으며, 국가안보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못했다.
더구나 조선은 국시(國是)다운 국시, 즉 국가전략이 없는 나라였다. 조선 500년간의 국시를 굳이 꼽는다면 사대교린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현상유지'와 같은 것이다. 현상유지가 국가전략이 될 수 있겠는가? 기업의 경우에 매출액이나 이익의 증가가 아니라 전년 수준 유지를 불변의 목표로 정해놓고 있다면 그 기업을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국시라고 내걸었던 '반공'도 현상유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승공'이나 '멸공', 또는 통일이라면 국시가 될 수 있겠다.
신생 대한민국에게, 국가가 해야할 책무는 제대로 못하고 백성들에게 의무만 부과하다가 일본제 합병된 조선왕조와 혹독한 착취를 일삼은 일본제국주의가 남겨준 것, 그것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경쟁, 그로 인해 체질화된 짧은 안목, 무기력증, 집단적인 열등감, 권력과 물질적인 부에만 가치를 두는 풍조, 부패에 대한 불감증, 외세에 대한 의존 등이었다.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려면 버려야할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 중에서 한국처럼 많은 난제를 가진 국가도 드믈었다. 게다가 그 마이너스 유산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인구의 상당수가 굶어죽을 수 밖에 없게된 대한민국에서 절대절명의 과제는 그런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한민족은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팽배한 상황에서 조국근대화라는 가치를 내건 박정희 정권은 그 집권과정과 집권후의 행태에서 법률적, 도덕적 하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커다란 설득력을 발휘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와 사회운영의 이데올로기로 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민주냐 독재냐 하는 것만을 가지고 박정희와 그의 정권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신생대한민국은 일정기간동안 명분보다는 실질을 추구해야하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시대적 요구는 민주주의라는 외피가 아니라 경제성장이라는 내실이었다. 박정희의 장기집권은 어찌 보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제성장과 안보를 정권의 존재이유로 내걸었던 박정희 정권은 그 두가지 목표만큼은 달성했다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한다.
출처 : 이윤섭. 박정희 정권의 역사. 필맥. 2011.06 p43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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