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평론가가 서부영화의 3대 요소는 권총, 말, 민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고전적인 서부극은 살인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정의의 사나이가 악당과 결투하는 장면도 비겁하게 뒤에서 숨어서 총을 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옛날에는 서부극이 청소년들의 정의감 고취와 당당한 성품형성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설파했던 사람도 있다.
그런 서부극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상 사람들이 사악하게 변질되었기에 서부극도 변화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소위 마카로니웨스턴macaroni-western이 나오면서 서정적 정취가 넘치던 서부극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126 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영화 ‘황야의 7인’은 마카로니웨스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가 제작된 1964년에 앞선 1960년에 명장 ‘존 스터지스John Sturges’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지만, 일본 센고쿠 시대(15~17세기)를 무대로 7인의 낭인들이 마을을 구하는 일본 영화 ‘7인의 사무라이(1954)’를 리메이크해서인지 전통서부극으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황야의 7인’은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특출한 개성이 흥미를 더해주는 영화다.
그 독특한 개성들을 무리 없이 소화한 배우들 모두가 이후 명배우로 성장한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될 만큼 이 영화가 지닌 맛을 더해주었다고 할 만큼 캐스팅에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 매년 ‘칼베라(엘리 월라치Eli Wallach 분)’가 두목으로 있는 도적떼가 나타나 양식을 강탈한다.
‘칼베라’의 횡포에 견딜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들과 싸워 줄 총잡이를 구하러 도시로 나온다.
대가도 보잘 것 없는데다가 승산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농민들을 딱하게 여긴 ‘크리스(율 브리너Yul Brynner 분)’는 다섯 명의 일류 총잡이들을 설득한다.
결국 끝까지 따라붙은 젊은 청년 ‘치코(호스트 브흐홀즈Horst Buchholz 분)’까지 포함하여 7인의 총잡이가 모인다.
마을에 도착한 7인은 ‘칼베라’와 싸울 준비를 갖춘다.
첫 전투에서 후퇴한 ‘칼베라’ 일당이 끝까지 싸울 계획임을 알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항복하자는 패와 끝까지 싸우자는 패로 나뉜다.
결국 항복을 주장하던 마을 사람 하나가 ‘칼베라’를 마을에 몰래 끌어들여 7인의 총잡이들이 잡히게 만든다.
하지만 7인의 총잡이들에게는 자존심이 있었기에 마을로 되돌아가 마을 사람들도 합세하여 ‘칼베라’ 일당을 모조리 죽인다.
일곱 명 중 세 사람만 살아남는 치열한 전투였지만 ‘치코’는 사랑하는 마을 처녀 옆에 남기로 하고 ‘크리스’와 ‘빈(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분)’ 둘만이 마을을 떠나 다시 황야로 돌아간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영화는 산적 ‘칼베라’ 일당이 가난한 마을에 들이닥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농민들이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남겨놓고 약탈하는 산적들에게 힘없는 마을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당할 뿐이다.
그나마 여자들을 숨겨놓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칼베라’는 자신이 행하는 약탈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
닭이며 곡식들을 마치 자기들 것인 양 약탈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다름이다.
“세상은 쉼 없이 변하고 있어. 자기 상황에 만족들을 못하지. 종교조차 진실하지 못하니까 문제지. 지난달에 산주앙이란 곳에 갔었지. 부자 동네였어. 부자동네라 신의 은총도 컸고 교회도 컸지. 그래서 금 촛대 같은 걸 기대했는데 놋 촛대에 자선함도 거의 빈 상자더라고. 사람들이 신에게 불경해.”
교회 재기들을 강탈한 자가 하는 말이 이렇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당연한 거다.
“좋은 성직자가 베풀듯이 우린 음식이 필요해. 총과 탄약.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해? 좋은 날도 다 갔어. 옛날엔 말과 가축, 금과 과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어. 요즘은 내 머리를 내놓고 사냥을 다닌다고.”
자신들의 약탈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농민들의 잘못이다.
약탈을 많이 하려면 총과 탄약이 필요함에도 이를 모르는 농민들이 무식하고 답답한 ‘칼베라’다.
그는 참다못해 낫을 들고 달려드는 농민을 쏴 죽이고도 덤벼든 자가 어리석다고 생각할 뿐이다.
“멍청하긴, 멍청한 것!”
이기적인 사람은 객관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칼베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기적이기는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보잘 것 없는 동네주민들의 금품이나마 모아서 모셔온 총잡이들을 배신하는 것이다.
총을 구하러 도시로 나온 농민 대표들에게 ‘크리스’가 했던 말이 있다.
“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게요?”
“우리도 싸울 거요. 우리 모두가 말이요. ‘칼베라’가 오면 교회의 종을 울려 알릴 겁니다. 총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걸 들고 싸울 겁니다. 구할 수 없다면 농기구라도 이용해야죠.”
“일이 시작되면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설령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희생이라도.”
이런 각오를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희생이 두려운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약탈을 당해 늘 배가고프더라도 죽지 않을 만큼은 남겨놓으니 희생당하기보다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총을 지닌 사람들은 ‘칼베라’와 다름없이 두려운 존재다.
‘크리스’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도 모두 숨고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마을 원로가 이렇게 말한다.
“이해해주게. 두려워서 그래. 비가 오든 안 오든, 여름이 너무 덥든, 겨울이 너무 춥든, 돼지가 임신을 못할까, 농부는 늘 굶을까봐 걱정하지.”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성대한 환영식을 기대한 건 아니니까요.”
숨어있는 마을사람들에게 비상종을 울려 모이게 만든 ‘치코’가 한마디 연설을 늘어놓는다.
“정말 다들 겁쟁이들이군요. 목숨 걸고 도우러 왔는데 숨어요? 이건 위험할 때 숨는 거와 다른 거요. 농사일에 손해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왔어요. 우리는 여기에서 싸울 거요. 당신들도 싸울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줘요. 이제 일터로 돌아가시오. 언제 어떻게 싸워야할지 알려 주겠소.”
‘치코’의 용기를 바라보고서야 ‘크리스’는 인정한다.
“이제 일곱이군.”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총을 지닌 ‘크리스’ 일행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축제에서도 여인들만큼은 숨겨놓고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 축제도중에 마을을 정탐하는 ‘칼베라’의 부하 3명을 발견하고 사살해버리지만 마을 사람들은 당장 습격할까 두려움에 떤다.
심지어는 ‘치코’가 발견하기까지 마을 여인들을 뒷산에 숨겨놓을 정도다.
여인들이 마을에 돌아오고 자신들에게 대접하는 음식과 농민들이 먹는 음식의 질이 천양지차라는 걸 알아차린 ‘크리스’ 일행이 ‘베르나르도’의 제안으로 맛있는 음식들을 마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들은 농민들과 동일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음에도 경계심만 풀었을 뿐,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식구로 받아들인 건 아니다.
그만큼 배타성이 강한 사람들이 농민들이라는 걸까.
‘크리스' 일행이 와있음을 모르고 진입한 ’칼베라‘ 일당은 농민들과 힘을 합친 이들에게 큰 희생을 당하고 도주한다.
하지만 ’칼베라‘는 완전히 퇴각하지 않고 뒷산에 숨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
이를 알게 된 농민들 중 일부가 ’칼베라‘를 불러들여 ’크리스‘ 일행 전원이 붙잡히고 만다.
농민들 중에도 이기적인 사람인 있게 마련이다.
의협심이 있는 자들은 많지 않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한 마을.
이런 마을에도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인디언의 시체를 백인들의 공동묘지에 매장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죽은 인디언을 매장시키라며 거금 20불을 기탁한 지나던 장사꾼과 목숨 걸고 매장할 수 없다는 장의사의 다툼에 ‘크리스’가 나선다.
시체를 놓고서도 백인 외에는 매장할 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인종차별에 ‘빈’도 따라 나선다.
돈 한 푼 안 되는 일에 목숨을 건 것이다.
‘크리스’와 ’빈‘은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방랑자들로써 서로 간에는 생명부지의 사나이들이다.
이들의 영웅적인 의협행각을 바라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총을 구입하러 나온 가난한 마을 농민들의 대표들과 시골출신 젊은 청년 ‘치코’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농민들과 ‘치코’는 공동묘지까지 영구마차靈柩馬車를 몰아가는 ‘크리스’와 빈의 뒤를 따른다.
반대자들의 총격을 물리치고 결국 인디언을 매장하는 데 성공한 ‘크리스’에게 농민대표들이 접근한다. 믿을만한 그에게 의뢰하여 총을 사고자 하지만 ‘크리스’의 의견은 다르다.
“총도 사야해요. 하지만 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요. 좀 도와주시겠소?”
“총은 매우 비싼데다가 구하기도 매우 어려워요. 차라리 사람을 사는 게 어때요? 총잡이들 말이요. 요즘은 그게 더 싸게 먹혀요.”
마을 사람들이 내놓은 귀중품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다.
하지만 ‘크리스’는 사례를 받고 일하지만 모두 돈을 위해 싸우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때로는 정의를 위해 나서는 총잡이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농민들은 총을 가진 사람은 모두 용사들인 것으로 안다. 총잡이들을 모아보겠다는 ‘크리스’에게 농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여긴 모두 총을 가지고 있잖소.”
“그렇죠. 바지 입 듯 총을 차고 있죠. 하지만 쓸 만한 사람이라면 뭔가가 다를 겁니다.”
‘크리스’가 말한 쓸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총 솜씨도 중요하지만 보잘 것 없는 보수에도 목숨 걸만한 의협심이 있는 자인가를 말함이다. 총을 찬 사람은 넘치지만 의협심을 지닌 자는 많지 않은 것이다.
6명의 총잡이들을 모아 멕시코 국경마을로 향하는 ‘크리스’일행의 뒤를 ‘치코’가 외롭게 따라온다.
영웅이 되고 싶은 ‘치코’로서는 비록 손뼉을 쳐보라며 모욕했던 ‘크리스’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젊은 청년이 지닌 의협심의 발로다.
결국 ‘크리스’는 ‘치코’를 일행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크리스’ 일행은 농민들에게 ‘칼베라’의 부하들에게 노획한 권총과 소총으로 사격연습을 시키지만 농민들의 감각이 총잡이들과 같을 수는 없다. 농민들 중에서도 ‘칼베라’와 싸워 마을을 지키겠다는 용기를 지닌 자들과 이대로 명줄이나마 유지하며 살자는 비겁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크리스’ 일행도 마찬가지다.
‘해리’는 끝내 ‘크리스’가 생기는 것 없이 위험한 일에 끼어들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칼베라’를 막기 위한 공사를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농민들에게 금광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질문을 거듭한다.
잘나가던 총잡이 ‘리’는 수없이 많은 적을 피해 ‘크리스’를 따라 왔으나 용기를 되살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멕시코 시골마을로 원정 갈 총잡이를 구하는 ‘크리스’에게 가장 먼저 자원한 자는 ‘치코’다.
그러나 ‘크리스’는 손뼉 치는 손 사이로 총구를 끼워 넣는 빠르기의 시험으로 ‘크리스’를 돌려보낸다.
실력이 따르지 않는 용기는 만용인 것이다.
‘치코’를 돌려보낸 ‘크리스’에게 아쉽다는 듯 농민대표가 말한다.
“젊고 자신만만한 젊은이로군.”
“무덤엔 저렇게 자신만만한 젊은이들 투성이죠.”
두 번째로 찾아온 총잡이가 ‘해리(바드 덱스터 Bard Dexter 분)’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그만큼 비싼 자다.
경험 있는 자들은 ‘치코’처럼 애송이들과는 다르다.
노크를 해놓고 문을 열어주었음에도 먼저 들어오지 않는다.
실내 상황을 확인하기 전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해리’를 아는 ‘크리스’는 보수가 보잘 것 없는 일에 끼어 넣기 어렵다는 걸 안다.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 크리스!”
“여기서 뭘 하는가?”
“뭔가 일을 꾸민다고 들었는데?”
“자네처럼 비싼 인재에게는 적용이 안 되지.”
“1불이라도 언제나 내게는 큰돈이지.”
‘크리스’는 애써 사실대로 실상을 말해주지만 ‘해리’는 믿지 않는다. 뭔가 큰돈이 되는 일이기에 ‘크리스’가 끼어들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일방적으로 큰돈이 개입되어 있을 거라 집작한 ‘해리’는 일에 끼어들고 만다.
‘해리’ 다음으로 참여한 총잡이가 ‘빈’이다.
마을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려던 ‘빈’은 ‘크리스’의 계획을 듣는 즉시 망설일 것도 없이 참여를 결정한다.
물론, 6주 정도의 일에 보수 20불, 총알 값도 나오지 않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의협심이 있기에 참여한 셈이다.
‘크리스’와 ‘빈’은 파산하고 남의 집 식객으로 나무나 패주며 세월을 보내는 ‘베르나르도(찰슨 브론슨Charles Bronson)’를 찾아 간다.
그는 왕년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영웅이다.
‘베르나르도’ 역시 20불로 6주간 30여명의 ‘칼베라’ 일당과 싸워야 한다는 말에 해괴한 생각을 한다면서도 설득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크리스’에게 말한다.
“20불? 지금은 그것도 크죠.”
말도 안 되는 보수지만 ‘베르나르도’의 의협심이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브릿(제임스 코번James Coburn 분)’은 비수던지기의 달인이다.
권총보다 빠르다는 비수 솜씨를 의심한 도전자의 욕설을 참다못해 처치할 만큼 인내심도 있는 총잡이다.
‘크리스’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놀고 있느니 그 일이라도 하겠다며 결국 참여하고 만다.
그 역시 의협심이 없었으면 그런 보수로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가 원하는 6명을 모으기가 원활치 못한 상황이다.
보수가 적어서 사람 모으기가 어려운지 묻는 농민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돈에 관심이 없어요?”
“다 같은 사람은 아니요. 위험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소.”
‘크리스’에게 모욕당했다고 생각하여 술에 취해 다시 찾아온 ‘치코’ 역시 돈을 바라고 끼어들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난 당신을 존경해서 찾아갔어. 헌데 당신은 나를 싸구려취급을 했어. 박수치라고? 붙어 보자고 박수나 치는 게 아니라고!”
영웅이 되고 싶은 시골출신 청년이다.
잘나가다가 용기를 잃은 총잡이 ‘리(로버트 본Robert Vaughn 분)’가 마지막으로 참여한다.
원수를 찾아 복수한 후, 수 없이 많은 적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멕시코 국경마을을 선택한 셈일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려지는 솜씨에 두려움이 가산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돈만은 아닌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크리스’를 배신함으로써 그들 일행을 잡고서도 미국 국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총잡이들이 부담스러워 돌려보낸 ‘칼베라’는 이들이 지닌 자존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 총잡이들을 움직이는 건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다.
자존심인 것이다.
이 싸움에서 ‘크리스’ 일행은 네 명을 잃고 ‘크리스’와 ‘빈’, 그리고 ‘치코’가 살아남는다.
‘치코’는 소녀 페트라(로젠다 몬테로스Rosenda Monteros 분)를 사랑하게 되어 마을에 남게 되고 떠나는 두 사람에게 마을 원로가 하는 말이 이렇다.
“싸움은 끝났네. 자네 일은 끝났지. 우리에겐 우리 일이 있지. 농부들만이 이긴 걸세. 끝까지 살아남지. 마치 땅과도 같아. 자네들은 칼베라를 이겼네. 강한 바람이 메뚜기 떼를 쫒듯 칼베라에게 자네들은 강한 바람과 같았네.”
어떤 사람이든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이 영화에는 몇 가지 특이한 개성이 있다.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주연급 배우들 대부분이 미남 미녀였다.
하지만 ‘황야의 7인’에 등장하는 연기자들 중 ‘율 브린너’를 제외하면 미남과는 거리가 먼 배우들이었다는 거다.
거칠고 강한 인상을 풍기는 ‘찰슨 브론슨’과 ‘제임스 코반’은 아주 과묵하고 투박한 남성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소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모습의 ‘스티브 맥퀸’ 역시 다소 와일드하지만 정의롭고 인간적인 면모를 우수하게 창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 국경마을과 멕시코 마을 장면들은 멕시코시티 남쪽 약 70km 거리의 경사지에 위치한 도시 쿠에르나바카Cuernavaca에 세트를 설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황야의 7인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세편의 후속편이 추가로 제작되며 시리즈 영화화 되었으나 후속편들은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후속편들의 내용이나 출연자들의 연기력 등, 인기를 얻기 어려웠다는 것이 내 시각이었었다.
특히 황야의 7인에서 보여준 밀도 높은 구성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마치 전편의 흥행 덕을 보자는 듯 성의 없이 대충 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야의 7인에 출연한 연기자들의 개성은 후속편들과는 달랐다.
‘치코’역의 ‘호스트 브흐홀즈’는 이미 잘 알려진 독일 출신 배우였으며 나중에 치코의 연인이 되는 소녀 ‘페트라’ 역을 맡은 멕시코 베라크루즈 출신의 ‘로젠다 몬테로스’는 최근 까지 멕시코 TV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호화캐스팅이라는 평가를 얻은 영화답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