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전쟁을 하자는 거냐!”
비열하고 더러운 비겁자의 거짓된 말이다.
원시시대로부터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 인유역사에 단 하루라도 전쟁이 없었던 날은 없었다. 그렇다고 전쟁을 찬양하자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전쟁만큼은 없는 것이 좋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는 왜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을까.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으나 그 어떤 이유라도 인간이 지닌 욕심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와 자기 것을 지키려는 자의 투쟁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빼앗고 지키려는 것은 여러 가지다.
재산이 되었든, 삶의 방식이 되었든, 이념이 되었든 빼앗고자 하는 자는 상대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요, 지키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근세사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여 자신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도록 강요했던 것이나 해방 후 공산주의 이념대로 살라며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이나 그 원리는 같다는 것이다.
해방 후 북쪽에는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를 앞세우고 들어온 김일성이 있었고 남쪽에는 자유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공부한 이승만이 있었다.
공산주의 이념으로 살고자 했던 김일성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살고자 했던 이승만이 서로 화합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그러면 전쟁을 하자는 거냐!’ 라며 김정은에게 읍소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은 이외로 간단하다. 어느 한쪽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면 된다. 상대의 삶의 방식을 다르겠다고 맹세하면 된다. 즉 자신을 버리고 상대의 노예가 되면 전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정말 그리 간단한 일일까?
문재인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김정은에게 모든 것을 넘기기로 한 것일까? 남한 국민 삼천만 명을 생지옥으로 알려진 북한의 김정은 아가리에 밀어 넣기로 한 것일까?
문재인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손쉽게 버릴 만큼 그토록 보잘 것 없었더란 말인가? 오늘날 그가 공산주의자로서 살아남은 것도 자유민주주의 덕분인데? 김일성 일가 치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했다면?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재에서 살았기에, 자유대한민국이 내 나라기에 무조건 북한에 오체복지하는 문재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이미 시래했으며 아직도 사회주의체재를 유지하는 국가들조차도 경제부분에서는 시장경제로 돌아선 지 오래됐기 때문에 한국을 북한에 넘기는 듯 보이는 문재인을 비판하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의 공산사회주의라는 것은 김일성 일가의 세습정권유지를 위해 왜곡된 봉건사회주의가 아니던가. 김일성 일가의 정권을 세습하기 위해 얼마나 불합리한 처형이 있어왔던가.
그런 체재를 지닌 북한에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라며 은근슬쩍 우리를 넘겨버린다? 이건 문재인의 비겁함 이전의 사상적 문제다.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김정은 독재체채에 넙기는 것이 어찌 비겁하고 더러운 작태가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들도 선택해야 한다.
비겁하게 문재인을 따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김정은에게 넘길 것인지,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지킬 것인지를.
나로서도 제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과거와는 달리 신뢰할 수 있는 회담이 되기를 바란다. 나 역시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일 뿐, 굳이 전쟁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라서 문재인도 내가 의심하듯 한국을 김정은에게 헌상할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기를 빈다. 가령 종전협정에 따라 붙을 주한미군철수와 이어지는 북한의 기습남침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과연 김정은이 심기일전하여 사람다운 면모를 보여줄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신뢰할 수 없어서 탈이다.